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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지곡서당

by phobbi posted Oct 11, 2026 View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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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10-11

2026. 10. 11.

 

공부를 하겠다고 덜컥 대학원에 등록하긴 했으나, 대학원에서도 한문을 깊이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개설된 여러 수업 중 한문으로 쓰인 자료를 독해하는 것이 없지 않았으나, 새파란 내가 보기에도 학기 중의 수업만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태동고전연구소라는 곳에서 한문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1인1실의 기숙사에 장학금까지 준다고 하지 않은가. 3년 과정 내내 집을 떠나 반드시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야 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당시 나는 가세가 기울어 몹시 좁은 집에 거처했기 때문이다.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장학생 선발을 위한 소정의 시험을 거친 후, 2003년 3월에 드디어 3년의 한문 연수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태동고전연구소는 지곡서당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지곡(芝谷)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소재한 작은 마을인 지둔리를 아름답게 표현한 말이다. 한학자로 유명했던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1914~1999) 선생이 건립하고 ‘지곡서당’이라는 현판을 직접 쓴 한옥 건물이 지금도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청량한 날엔 이동식 칠판을 놓고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던 그 대청마루에 앉으면, 서당이 자리한 너르고 완만한 비탈 아래로 흐르는 수동천(구운천) 냇물 소리가 들리고, 축령산 높은 봉우리와 산 중턱의 벼랑바위가 건너다보인다. 군부 독재와 맞서느라 고단한 삶을 사셨고 한학자이면서도 한글 전용을 주창하는 등 범상치 않은 이력을 지녔던 선생이 말년의 열정을 쏟은 공간이 바로 지곡서당이다. 옛 학문인 금석학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는 등 한국학 방면에서 선생이 남긴 족적이 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은 역시 후학 양성을 꼽아야 할 것이다. 선생이 길러낸 제자들은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오직 사람만을 세상에 남기고, 선생은 전 재산을 희사하여 청명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입소하여 배웠을 때는 청명 선생은 돌아가신 후였고 제자들 즉 나의 선배들이 강의를 맡고 있었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 한편 열과 성을 다해 강의를 진행한 훌륭한 선생님들이었다. 존경스러운 설립자가 만들고 선배들이 어렵사리 지켜온 전통 위에 선 태동고전연구소의 한학 연수 과정은 무척 혹독했다. 1학년 과정 1년 동안 사서(四書) 즉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암송해야 하며, 2·3학년에는 삼경(三經, 『시경』, 『서경』, 『주역』)의 필수 과목에 『사기(史記) 등 역사서나 한국 문집과 초서 등 선택 과목도 이수해야 했다. 그중 압권은 1학년의 사서 배송이다. 배송(背誦)은 배운 것을 보지 않고 소리 내어 외운다는 뜻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있는 수업에선 해당 수업 시작과 동시에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전 시간에 배운 대목을 모두 외워 읊어야 했고, 한 책이 끝나면 그 책을 모두 암송해야 했다. 『논어」도 만만치 않지만 특히 분량이 상당한 『맹자』 전체를 암송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총 35,000여 자에 달하는 『맹자』는 입으로 죽 읊는 데만 두서너 시간 넘게 걸린다. 체력적으로도 꽤나 고된 일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편에 제자인 공도자(公都子)가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께서 말이 많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맹자가 “내가 무슨 말이 많다고 그래. 다 어쩔 수 없어서지”라며 자기가 남들과 논쟁을 일삼는 이유를 죽 늘어놓는 구절이 나온다. 이 장을 호변장(好辯章)이라 부르는데, 이 부분을 외우고 있자면 맹자를 한대 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힘겨웠던 사서 배송을 제외한다면, 지곡서당 생활은 매우 행복했다. 수업 잘 듣고 과제 충실히 이행하면, 나머지는 온전한 자율에 맡겨져 아무 제약이 없었다. 생계 걱정 없이 오로지 한문 고전에 침잠했던 3년의 시간. 그토록 행복한 몰입의 시간을 이제 다시는 얻을 길이 없다. 한문 경전을 암송한다며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사실 암송은 연구소 공부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암송이라는 시험 형식보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실용적 가치도 없는 오래된 책을 이런 주석 저런 주석 찾아보며 열심히 들여다보았다는 사실 자체 가 더 놀라운 일이다. 조그만 지식이라도 얻으면 곧장 자기계발에 활용하고, 서둘러 논문 편수 쌓아올려 어딘가 강사 자리라도 얻을 생각을 하며, 학교든 사회든 숨 쉴 틈도 없이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사람을 몰아붙이는 요즘 현실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이 지곡서당이다. 태동고전연구소 3년 과정을 수료한다고 곧장 한문을 잘하게 되었던 것도 아니다. 한문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그곳의 진정한 가치는, 딱 필요한 만큼의 자료와 정보만 섭취하여 활용하기 바쁜 요즘 같은 시대에, 다른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좋을 만큼 고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면서 사람을 기다려준 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윤성훈 지음, <한자, 문명의 무늬>(교유당, 2026. 05. 06. 초판 1쇄 발행),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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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곡서당에서 함께 공부했던 후배의 글이다.

옛날 생각이 나게 하는, 아주 잘 요약된 글이다.

 

가끔 서당이 그립다.

나 또한 가난한 학생이었기에,

먹여주고 재워주며 실컷 공부할 수 있던 3년의 시간은 참으로 행복하고 소중했다.

특히 신학도가 동양고전이라니!

한 선배와는 함께 마가복음도 읽었고, 그 선배는 나에게 당시(唐詩)를 들려주었지.

같은 동기랑 요한복음도 얘기하고,

철학도와 역사학도, 예술을 전공한 친구,

한 후배는 만화의 대가였기도 했고,

서예가도 있었다.

 

각자 다른 전공의 30대 청년들이 모여

선생님들과 함께 마치 한 식구처럼 마음껏 공부하고 토론하고

마시고 놀고 그렇게 보낼 수 있던 그 시간은 실제로 천국이었다.

 

성훈아! 시간 되면, 향린교회 놀러 와라!

밥 한번 먹자^^

 

- 향린 목회 70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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