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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내면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며

by phobbi posted Sep 23, 2026 View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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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9-23

2026. 09. 23.

 

나는 시인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들의 무심한 태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미국에서만 이렇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독자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글을 쓰는 법을 익힌다는 의미도 있다. 시가 읽히기를 바라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를 창조하는 영감의 소리를 오롯이 받들려면, 그래서 시가 진정한 시가 되려면, 시인은 외골수 수도자처럼 창조의 원천에 철저히 몰두하면서 전혀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 원천이 말을 트도록 내면의 고요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이는 아무리 세속적인 시인이라 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 우리나라에는 오늘날의 종교 언어와 형식에 실망한, 그러나 사려 깊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 역시 자기를 자신 밖으로 밀어내는, 영혼을 불태우는 존재의 열기를 느낀다. 그들은 여전히 집요하게 끌어당기는 신이라는 유령의 중력에 이끌린다. 나는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걸고 싶었다. 나처럼 삶과 의식의 원천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확신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쓰고 싶었다.

 

크리스천 와이면 지음/손승우 옮김, <나의 찬란한 심연>(룩스문디, 2026. 09. 28. 초판 발행),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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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시인처럼 아직도 초월적 존재의 신비함에 이끌리면서도,

제도 종교의 언어와 형식에는 실망한 사람들,

초월의 감각에 대한 중력으로부터 자기 영혼을 불태우고픈 심정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함께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게 하려면,

이내 사그라들 것같이 희미한 그 불꽃을 다시 살려내려면,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언어를 들어야 한다.

 

또 그렇게 하려면,

창조의 원천에 골몰하여 마냥 기다리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진정으로 고요 속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목회는 갈수록 요청이 늘어나고,

머물러 기다릴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올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할 것은 하고, 덜 중요한 것은 과감하게 내려놓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 향린 목회 68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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