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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사람은 말씀을 사르고 사뢰는 존재

by phobbi posted Oct 07, 2026 View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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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10-07

2026. 10. 07.

 

다석에게 생각은 인간의 인식적 활동을 넘어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다석은 생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존재론적 변화를 불과 불꽃의 은유로 설명했다. 생각은 인간 존재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인간 존재를 생성한다. 다석은 이렇게 말했다. “생각은 불입니다. 생각은 불꽃입니다.… 생각에 불이 붙어서 개개인의 나가 나옵니다.”(류영모, 2017: 227) 생각의 불꽃을 통해 인간 존재가 변화하고 생성되는 것은 그 불꽃이 인간 중심에서 신의 말씀을 태우기 때문 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석은 사람이란 ‘사르는’ 존재이며, 그 안에는 “말씀을 사뢰는 중심”(류영모, 2002: 78)이 있다고 보았다. 사람은 생각을 통해 그 중심에서 말씀을 태워 나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생성하고 변화시킨다.

 

다석의 생각은 이처럼 인간의 인식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진리로 자신의 주체를 변형하는 수행적 차원으로 나아간다. 다석은 생각이야말로 곧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 본성이자 인간이 수행적으로 ‘받아서 할’ 대상인 바탈(性)을 태우는 것이라고, 생각의 불꽃을 태우는 것은 바탈을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바탈을 태워 존재론적 변화와 생성을 가져오는 생각은 다음과 같은 차원을 갖는다. 첫째, 종교, 예술, 학문 등 인간의 문화적 차원이다. 인간은 문화적 활동을 통해 바탈을 태울 수 있다. 둘째, 몸으로부터 생각을 ‘캐내는’ “몸과 맘과 얼의 통합적 차원”이다. 인간은 몸을 통해 체험하고 그 체험을 마음으로 해석함으로써 이를 의미로 전환해 얼의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셋째, 바른 수행과 바른 깨달음을 상호 연결하는 불교의 팔정도(八正道)에 기초한 수행적 차원이다. 바른 삶의 수행에서 바른 생각이 나오며, 그 바른 생각은 다시 바른 수행을 낳는다. 바른 수행과 바른 생각, 이 둘은 나누어지지 않고 순환적이다. 다석은 영원한 얼의 생명을 위한 길은 팔정도와 같이 오직 바르게 생각하는 수행에 있다고 주장했다(안규식, 2024: 485-487).

 

다석은 성경은 물론 여러 동양 종교의 경전들을 읽고 깊이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다석의 내면에서 생각의 불꽃이 되어 말씀과 본성을 불사르며 다석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으로 경험되었다. 다석은 생각의 불꽃이 인간을 온전한 존재로 곧 신을 닮은 존재로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을 깨달았고, 생각을 통한 초월적 만남과 존재론적 변화를 상승으로 경험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은 하늘로 오르는 기도(祈禱)였다. “생각하는 것은 기쁜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올라가는 거야. 생각이 기도야. 기도는 하늘에 올라가는 거야. 정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라간다는 것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다.”(류영모, 2002: 90)

 

안규식 지음, <유영모>(커뮤니케이션북스, 2024. 10. 18. 초판 1쇄 펴낸날),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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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생각에만 머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존재가 바뀌고 삶이 바뀔 때 비로소 생각이다.

그러니 생각은 머리의 일이 아니라, 몸의 일이다.

 

기도도 그렇다.

기도는 단순한 청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나를 살펴 내가 변하는 일이다.

 

다석은 말한다.

사람은 사르는 존재요,

그 안에 말씀을 사뢰는 중심이 있다고.

 

무엇을 태워 하늘에 올릴 것인가?

제나다.

제나가 타야 얼나가 솟는다.

그 불의 땔감은 말씀이다.

여러 성현의 말씀을 내 안에서

곱씹으며, 살아내며,

그렇게 사르고, 사뢴다.

 

오늘 내 안에서는 무엇이 타고 있는가?

 

- 향린 목회 70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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