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9. 01.
데카르트와 헤겔 같은 서구의 큰 철학자들 아니면 공자나 주자(朱子) 같은 중국의 큰 철학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패권 국가들의 사상 전통에 다만 편승해서 기생하는 주변국의 철학자들은 무엇을 공부하며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편승해서 기생하는 자도 철학자가 될 수 있을까? 패권 국가들의 사상 전통에 소속해서 각기 자기 언어와 삶의 토양을 대변하는 저 큰 철학자들은, 진리의 판단과 운명의 전략에서 그들의 것과 다른 언어와 다른 삶을 토양으로 하는 주변국 사람들, 주변국 철학자들의 처지를 대신하여 대변해 줄 수 있을까?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의 영토에서 조상 대대로 밀려나 살아온 주변 지대의 사람들과 철학자들은 그들이 놓인 결여한 처지에서 그들의 고유한 개체성 x를 가지고 그들이 걸어갈 운명의 진로를 향해 의문을 던지고 탐색하는 데 어떤 패턴의 역사관, 어떤 패턴의 전략을 동원할 수 있 는가?
그들은 그들이 겪은 역사와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외래의 철학을 가지고, 아니 모두 그런 것들을 학습해서 공상에 사로잡힌 전통 가운데서, 서로 극단으로 대립하는 이념 또는 이해(利害)의 싸움에 매몰되어 밖으로부터 다가오는 위기 이를테면 임진란, 병자란 같은 피해와 굴욕, 아니면 625 전쟁 같은 재난을 반복해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이념이라는 공상에 잡힌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투쟁이, 역사와 현실을 이탈하여 우연한 곳에 박혀있는 허수아비들의 이른바 ‘대리전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조차 잊은 지 오래다.
박동환 지음, <진리의 패권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사월의책, 2019년 8월 10일 1판 1쇄 발행),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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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에서 보편과 특수의 문제는 늘 과제다.
세계화가 이뤄지고 지구가 한 마을처럼 된 이 마당에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낡은 또는 어리석은 외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자신들이 겪은 역사와 현실이 무시되고,
고유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매번 남의 다리나 긁고 앉아 있는 꼴이라 영 시원하지가 않다.
우리 언어와 삶의 토양을 대변하는 학문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뒤늦게 신학의 길에 들어서서 했던 첫 고민이었다.
30년 묵은 질문을 새삼스레 다시 꺼내 본다.
- 향린 목회 66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