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능력주의의 문제
너희는 곡식을 거두거나 포도주를 빚거나 올리브 기름을 짠 다음에는, 거기에서 얼마를 나에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 너희는 맏아들들을 나에게 바쳐야 한다. 너희 소나 양도 처음 난 것은 나에게 바쳐야 한다. 처음 난 것들은, 이레 동안은 어미와 함께 있게 하고, 여드렛날에는 나에게 바쳐야 한다.(출애 22: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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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왕국(Christendom) 시절이었던 중세를 지나 자연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근대가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신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자신 삶의 주체로 내세웁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점점 낯선 것이 되고, 인간은 자신의 이성으로 우주 만물의 원리를 찾아가며 세상 만물을 이해하고 사용하게 됩니다. 인간은 주체가 되고 모든 만물은 대상이 됩니다. 인간은 자신감을 얻고, 모든 것을 해 낼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오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능력에 대한 과도한 낙관은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첨단 과학 기술의 끝은 핵폭탄 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를 이어 온 다수 현대인은 여전히 자기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황당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얼마를 투자해서 더 많은 이익을 남긴다는 보장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도 제물을 바칠 것이고, 또 실제로 타락한 교회와 성직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헌금을 강요하기도 합니다만, 능력주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신께 제물을 바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식물이든 간에 하나님께 그 첫 소산물과 첫 태생을 바치는 행위는 모든 것이 나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신앙고백이자 삶의 태도입니다. 살아온 과거의 앎에 근거하여,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능력에만 기반하여 살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미래와 우리를 둘러싼 모름의 차원까지도 고려하며,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이 모두 선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삶이 선물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할 때, 우리의 삶은 감사가 넘치고, 내가 받은 그 선물을 남에게도 나눠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줄 모르고 움켜쥐는 사람들, 제힘만으로 살아가려는 이들로 가득할 때, 세상은 각박해지고 메마르고 삭막해지는 것입니다.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지만, 주님의 은혜로 이 땅의 삶을 유지합니다. 생명이 붙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드립니다. 능력을 외치는 세상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그 선물을 서로 나누는 세상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