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고집
마술사들도 이와 같이 하여, 자기들의 술법으로 이가 생기게 하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가 사람과 짐승에게 계속하여 번져 나갔다. 마술사들이 바로에게 그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출애 8: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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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 재앙을 내리는 장면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점점 더 그 강도가 더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재앙들은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해낼 수 있던 것들입니다. 바로는 자기 왕국의 마술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신의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따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직접 나서서 이것은 신의 권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고집을 부립니다.
고집이 얼마나 맹목적이며, 얼마나 굳세고 강한 것인지 우리는 배웁니다. 황소고집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이 옳다고 여기며 굳게 붙잡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여 고치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본인이 느끼고 깨닫기 전까지는 남의 틀린 말일 뿐입니다. 귀가 닫히고, 눈이 멉니다.
알면 알수록 모름 또한 커진다는 것, 앎이 삶을 충분히 녹여 낼 수 없다는 사실, 존재 그 자체가 신비라는 것을 위대한 종교 전통은 끊임없이 말해 왔습니다. 그래서 참된 종교인은 알면서도 모른 체 합니다. 일부러 그렇게 합니다. 앎이 착각이고 부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종교인은 몸으로 살아내려고 애씁니다. 겪고 나서야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압니다.
바로는 세상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보이는 것만을 믿다가, 보여줘도 자기 고집대로 하는 경향성을 드러냅니다. 결국 자신 안에 빠져 맴돌면서 타자의 타자성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코로나 19 사태로 전 세계가 혼란을 겪었을 때, 고집을 부리는 종교인들이 감염의 진원지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이 자기들의 고집을 믿음으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적 믿음은 확실함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불확실 속에서도 열린 자세로 견디며 하나님의 가능성 속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가 신앙의 열정과 고집을 구별하는 지혜를 갖게 하여 주소서. 높은 자리, 부유한 삶, 인생의 경험이 고착된 사유로 이어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늘 야들야들한 마음을 지니게 하여 주소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누구나 쉽게 찾아오는 가슴이 되게 하여 주소서. 신념이 눈을 가리고, 믿음이 편견이 되지 않도록 더 넓은 세계, 낯설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