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벽을 넘으려면
그러자 바로가 대답하였다. “이 게을러 터진 놈들아, 너희가 일하기가 싫으니까, 주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떠드는 것이 아니냐! 썩 물러가서 일이나 하여라. 너희에게 짚을 대주지 않겠다. 그러나 너희는 벽돌을, 맡은 수량대로 어김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반장들은 매일 만들어야 하는 벽돌의 수를 줄일 수 없다는 말을 듣고서, 자기들이 곤경에 빠졌음을 알았다. 그들은 바로 앞에서 나오다가, 자기들을 만나려고 서 있는 모세와 아론과 마주쳤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 보시고 벌을 내리시면 좋겠소. 당신들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소. 당신들은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셈이오.” (출애 5: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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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는 계획은 큰 장벽에 부딪힙니다. 바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광야로 가서 제사를 드리겠다는 아론과 모세의 말에 대한 바로의 반응은 짚도 대주지 않으면서 이전과 똑같이 벽돌을 만들라는 맑은 하늘에 날벼락 같은 명령이었습니다. 이제 히브리 노동자들은 스스로 짚을 구해서 이전과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어야 하기에, 두세 배 힘든 노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강자는 약자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게을러터진 놈들로 낙인을 찍고, 일하기 싫기에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윽박지릅니다. 이스라엘 출신 관리자들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힘만이 작동하는 세계에서 힘없는 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어떤 저항도 할 수 없고, 꼼짝 없이 하루아침에 이전보다 훨씬 고된 노동을 하게 된 이들은 이제 만만한 모세와 아론에게 비난의 화살을 쏩니다. 수평 폭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언제나 개혁과 혁신의 꿈은 물거품이 됩니다.
힘센 주인을 위해 노동하면서 종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던 이들은, 종을 부리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습관만큼이나 자발적 노예 생활에 익숙한 터라, 근원적 개혁의 힘이 부족합니다. 깨인 사람들이 바꾸려고 하면, 노예근성이 불쑥 튀어나와서 제풀에 스스로 포기합니다. 개혁의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노력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실제로는 더 위험한 일이라고, 그것도 아니면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개혁의 의지를 꺾어 놓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바로 그런 어려움들을 뚫어내야 가능한 것이고, 그만큼 혼신의 힘으로 몸을 불살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참 자유를 찾던 이들은 외쳤습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죽기로 마음먹어야 오히려 사는 것입니다.(必死則生)
기도 : 하나님! 진정한 변화는 과거의 습관을 완전히 소멸해야만 가능하다는 만고의 진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온몸을 바칠 용기를 주시고, 때를 아는 지혜를 주소서. 설익은 믿음이 아니라, 존재를 거는 신앙이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