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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포용과 공명

by phobbi posted Aug 29, 2026 Views 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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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8-29

2026. 08. 29.

 

나는 예술이라는 것은 좀 더 인간적인 좌절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작품은 아무리 자연을 가장해도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투명한 것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의 풍족하고 지고한 공간을 구가한다 하더라도 뭔가 필요 없는 것이 섞이기도 하고, 어딘가가 빠져 있기도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커다란 통일 속에도 군데군데 파탄의 냄새는 떠돌 것이다. 오히려 매끈한 음조 속에 숨겨진 방해 요소의 작용이 포함되어야지만 그것이 살아 숨 쉬는 것이 된다. 예술가는 덮쳐오는 듯한 힘에 겨운 것의 존재를 앎으로써 진정한 신념과 회의의 겸허함을 배우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을 갖가지 만남의 세계로 이끈다. 갖가지 협잡물의 도움이 없으면 이 까다로운 것의 결합체인 인간을 한결같이 떨리게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거절을 내포하지 않고 겉치레만 반지르르하게 조화된 작품은 살아 있는 인간과 관계를 갖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거짓 같고 얄팍하고 시시하다. 예술가의 재능은 신들린 완벽함이나 배제의 논리에 의해 발휘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어떻게 모호함과 모순을 껴안고, 어떻게 인간과 공명해가는 세계를 짜나갈 수 있는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이우환 지음/서인태 옮김, <시간의 여울>(디자인하우스, 1994. 9. 27. 12쇄 펴낸날), 2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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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 완성은 죽은 것이다.

살아 있는 것에는 언제나 거친 마찰이 있기 마련이다.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이다.

 

화이트헤드는 관념의 모험에서

아름다움()조화의 완성”(perfection of Harmony)이라 정의하면서도,

그 안에 두 가지 층위를 둔다.

하나는 상호 억제가 없는 상태 즉, 각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상태다.

다른 하나는 각각의 불협화음들이 각 부분의 개별성을 살려내면서도 오히려 전체를 고양시키는 상태이다. 이때 어느 정도의 불협화음은 문명과 아름다움의 갱신을 가져오게 된다.

 

아름다운 예술의 세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우환 화백의 말대로

인생의 예술은 어떻게 모호함과 모순을 껴안고, 어떻게 인간과 공명해가는 세계를 짜나갈 수 있는가의 역량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66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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