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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린 거리좁히기 아이디어 공모

향린 거리 좁히기는 향린 교인들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자는 것이고, 그것은 서로간 원활한 대화와 소통, 존중과 친근함, 화평과 화합 등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한 거리 좁히기는 교회 운영상, 모든 교회 구성원간 '공명정대한 원칙, 종합적 합리적 사고와 소통'만이 답이라 말하면, 쉽게 동의 하지 못할 것입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에 불과 하고 실천 방법이 될 수 없다거나, 실현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근본적으로 이러한 원칙과 노력이 진지하게 지향되지 않으면 다른 거리 좁히기는 피상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다른 소소하고 소중한 거리좁히기 방법도 없는 것보다 낫고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한 구체적 방법이, 그 문제 해결책을 공모할 정도에 이른 교회의 갈등 상황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고의 공명정대한 원칙의 기준은 주님의 삶과 가르침에 있습니다만, 그것을 좀 더 현실적이고 사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스티븐코비의 '원칙중심의 리더쉽'을 참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원칙이란, 자연의 법칙이나 원리 뿐 아니라, 공정성과 형평성, 정의, 성실, 정직, 신뢰 등 사회적 기본 원칙들을 철저하게 중심 삼는 것입니다. 그 원칙을 얼마나 중시하느냐에 따라 국가나 사회, 교회도 평화와 발전, 공존과 안정이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반대로 분열과 불화, 지체, 후퇴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큰 방향이나 원칙은 정관으로 거의 정리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가장 중시 해야 하는 기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율법주의의 폐해가 크고 문제가 많이 지적 되지만, 그 율법주의의 율법은 기득권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져 인간의 생할과 삶을 저해하고 파괴하는 악법과 같은 법을 말하는 것이지, 향린의 정관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향린의 정관은 고정 불변이 아니고, 수정 보완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원칙과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정관이 기준이나 원칙이 될 때에도 그것은 단편적 표현이나 부분적 적용이 아닌, 종합적 합리적 이해와 해석에 최선을 다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의 거리 좁히기는 '종합적 합리적 사고와 소통' 노력과 실제의 정도에 달려 있다 봅니다. 교회에서 벌어지는 쟁점이나 분쟁, 제소와 같은 문제가 있을 때 최대한 종합적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소통하며 향린 교회 정신에 맞는 바람직한 해결점,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련 법과 정관을 중시하되 일방의 유권해석과 같은 법리와 소피스트적 논리를 경계하고, 객관적 사실 또는 진실을 정확하게 가리되, 감성이나 정서적 요소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원론적 이야기는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여겨져서 도무지 도움이 안된다고 치부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원칙을 비현실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대원칙을 가지고 교회의 구체적 사안들을 화평의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그 사안 관련 공명정대한 원칙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또 그 사안 관련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통찰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면으로 이치에 합당한지를 숙고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기 나름 최선을 다한 공명정대한 원칙, 종합적 합리적 사고를 가지고, 대화하고 소통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간 입장차이가 크고,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어느 쪽 주장이 자기 중심이 아니라, 공명정대한 원칙에 맞는지, 종합적 합리적 사고인지를 성찰하고, 편향되거나 잘못 된 것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결론은 공명정대한 원칙, 종합적 합리적 사고에 더 가까운 것으로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제가 그동안 교인간 갈라지고 거리가 멀어진 사안들과 관련하여 이 지면을 통해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구체적 사안들 관련 저는 나름 공명정대한 원칙에 따라 종합적 합리적 사고와 소통을 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 노력이 좋은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서로간 지성스럽게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어 교회 구성원간 거리가 멀어지지 않고 가까워 지리라고 봅니다.

 

이러한 바람직한 해결을 위한 제안이나 의견, 대화는 권장되고 존중 되어야 합니다. 내부적으로는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갈등하며 분열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 하는 것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것입니다. 긁어 부스럼 내거나 갈등과 분열, 거리의 확대가 아닌 치유와 화합, 통합, 거리 좁히기를 위한 의견과 소통, 대화는 차단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만, 중구난방으로 그러한 발언과 주장이 이루어지면 부작용이 있고, 역효과와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우리 교회의 종합적 합리적 대의 기관인 목회운영위원회에서 그러한 문제에 대한 협의와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직회, 목회실, 당회, 공동의회 등이 모두 나름 민주적으로 구성되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거의 모든 단위와 부서, 신도회 등을 대표하는 분들로 구성되는 것이 목운위인 만큼 그 위상과 역할은 중대하다 할 것입니다.

 

물론 목운위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공명정대한 원칙, 종합적 합리적 사고와 소통을 통해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소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대신 목운위는 각 신도회와 부서를 대표하여 역할할 분들을 선출하고, 선출이 어려운 신도회나 부서는 다른 신도회나 부서에서 대의를 겸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구성원들은 그 분들께 제안이나 의견, 여론을 전달하며, 목운위원은 각 단위의 대표자로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목운위가 결정이나 집행 단위는 아니지만, 바람직한 방향성을 합의하거나 결정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향린교회의 거리 좁히기는 모든 구성원들이 공명정대한 원칙을 중심으로 종합적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소통하는 노력의 정도에 따라 성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근본적 거리 좁히기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 모든 단위와 부서가 중요하지만, 목운위의 적극적 능동적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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