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의 이름이 무엇인가?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출애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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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백성이 울부짖는 것을 보고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려고 하실 때, 모세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아마도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라는 말 한 마디에 녹아 있는 복잡한 심경을 우리는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역사의 소명 앞에서 한 개인이 겪어야 하는 실존적 고뇌는 당사자가 아니고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모세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사명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걱정이 생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과연 자신을 인정할까 하는 것입니다. 민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정부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모세가 과거에 이집트의 궁중에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정의감 때문에 이집트 사람까지 쳐 죽인 일도 있었지만, 그 모두가 지나간 옛 이야기일 뿐! 이제 모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나아갈 또 다른 근거가 필요했습니다.
“조상의 하나님께서 보냈다.”라는 말 정도로 백성들을 설득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면 ‘조상들의 하나님’은 고대 동방에서 흔하게 부르던 일반적인 신의 통칭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누가 자신을 백성에게 보냈는지 말할 수 있어야, 나름 자기가 설 자리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름을 묻게 되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름은 곧 존재 전체를 통째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물음 속에는 과연 모세가 말한 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강력한 의심의 눈초리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절박한 물음입니다.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물음이고, 그렇게 깊이 물어야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뢰하려는 현대에 과연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자연과학의 문명 시대에 하나님의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어라 말해야 할까요? 신앙인인 우리들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우리 삶의 밑동으로 삼을 때, 그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철저히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을 만났지만 주님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게 하여 주소서. 섣부르게 답을 내리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더 크고 넓고 깊은 물음을 추구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