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폭력의 자중지란(自中之亂)
이튿날 그가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오?” 그러자 그 사람은 대들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 당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이제는 나도 죽일 작정이오?” 모세는 일이 탄로 난 것을 알고 두려워하였다. 바로가 이 일을 전하여 듣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다. 모세는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쳐서, 거기에서 머물렀다. (출애 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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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필라성(Kapilavastu)의 왕자는 부모의 극진한 돌봄 아래 매우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성(王城)의 동문 밖으로 산책을 갔다가 허리가 굽은 백발의 노인을 보고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에 크게 놀랍니다. 남문에서는 병자를, 서문에서는 상여행렬을 만나게 되는데, 이로써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깨닫고, 북문 밖에서 본 출가 수행자를 통해 황태자의 길을 떠나 고통의 해결에 자신의 인생을 걸게 됩니다. 바로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이야기입니다.
이집트의 왕자로 성장한 모세가 왕궁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세 가지를 보게 됩니다. 첫째 자기 동족이 애굽의 구조적 폭력 앞에서 고생하는 것, 둘째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을 때리는 것, 셋째 자기 동족인 히브리인들끼리 서로 치고 받으며 싸우는 것을 봅니다.
성인이 되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모세가 목도한 것은 거대한 구조적 폭력 아래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수직 폭력과 수평 폭력의 양상이었습니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제국의 강제 노동 아래 신음하는 피식민지 백성의 구도는 한 개인이 극복하기 어려운 불의한 사회 체제가 양산해 내는 구조적 폭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체제에서 최고 권력자는 죄 없는 아이들을 살해하고, 소수 지배자들은 다수의 평민들을 마음대로 부릴 권리를 누립니다.
이런 구조적 폭력은 이제 지배자와 지배받는 사람 사이에서, 또 지배를 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매우 일상적인 것이 됩니다. 모세는 이런 현실을 보고 정의감이 솟구쳐 올랐고, 모든 것을 바로잡고자 했으나, 그가 배운 것 또한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불러왔고, 모세는 순식간에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됩니다.
인류가 진보하려면 이 폭력의 자중지란의 사태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 안의 평안으로부터 모든 깨어진 관계의 치유와 세상의 평화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는 힘이 아니라 사랑,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차분한 사유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기도 : 하나님, 자신도 모르게 물드는 것을 깨어 있는 맘으로 살피게 하여 주소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오늘을 고쳐 나가게 하여 주소서. 더 나은 방식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