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보았고 들었고 안다.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출애 3:6-7)
=====================
인간이 살면서 얻는 거의 모든 정보는 보는 것과 듣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물론 맛보고, 몸에 닿아 느끼고, 냄새를 맡아 어느 정도 세계의 사물을 파악하기도 하지만, 우선적으로는 보고 듣는 일이 가장 먼저 일어나고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 있는 자기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보고 듣는 것을 선택합니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大學>) 지금 하나님의 마음은 바로 고통당하는 이들,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이들에게 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을 향한 추구 즉 앎의 갈망과 열망은 바로 고통당하는 이들,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객관적 사실과 정보의 습득은 고통당하는 생명체를 구원하기 위해 반드시 윤리적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편리한 삶을 위해 매우 화려한 물질문명을 창조하고서도, 고통의 울부짖음이 계속되는 이유는 앎의 목표가 고통당하는 이들을 향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았고 들었기에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을 키우거나 이웃을 볼 때에도 잘 보고 듣는다면 무엇이 그들에게 필요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보았고, 들었고 알게 된 하나님은 이 땅으로 내려오십니다(8절). 제대로 안 사람은 바로 행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 내려오시는 하나님은 자기를 소개할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늘 소수자로, 약자로 떠돌던 이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바로 이런 이들에게 공감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대 제국의 고된 노동과 핍박에 시달리는 백성에게 귀를 기울이고, 똑똑히 살피고, 그들과 함께하시려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을 듣고, 보아야 할 것을 보고, 고통의 현장을 알아 거기로 나아가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