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9. 28.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뭔가에 바쳐져야 한다. 그것은 신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인간의 실존에 새겨진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 생존하는 일이지만, 가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이기도 하다. 오직 생존을 위한 삶에 몰두하다 보면 삶은 무의미하고 지루해진다. 대다수 사람이 생존을 위한 일상의 회로를 맴돌지만, 그와 달리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창조적인 삶을 사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발견하고 발명하고 창조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창조적 개인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오직 한 번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고유한 작품으로 만들려는 ‘삶의 예술가’들이다. 물론 그런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곳곳에 창조적 삶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장애물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 개인을 어느 집단의 구성원으로 환원시키는 집단주의 정신이야말로 개인주의자의 탄생을 저지하는 강력한 장애물이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여러 집단의 구성원이 된다. 우리는 누구누구의 자식이고, 어느 나라의 국민이며, 어느 지역, 어느 학교 출신이며, 누구의 배우자이며, 어느 직장에 다닌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나만의 특성이 존재한다.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과 목소리가 다르고 얼굴이 다르듯이 서로 다르게 태어난다. 우리들 각자는 교환 불가능한 고유한 인간이다. 개인주의자는 세상에서 부여받은 여러 집단의 구성원됨을 부인하지 않지만,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자기만의 특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다. 주어진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만의 고유한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개인주의자는 두 번 탄생한다. 어머니의 배 속에 있다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첫 번째 탄생이라면, 스스로 고유한 나를 발명하는 것이 두 번째 탄생이다.
정수복 지음, <이타적 개인주의자>(파람북, 2024. 6. 12.) 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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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적 삶에 대한 비전과 꿈들이 있지만,
단단한 개인이 아닌 경우에 공동체적 삶 또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을 공동체로 부르시지만,
키르케고어 말대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훈련이 정말 필요하다.
자기 삶을 고유한 작품으로 만들려는 삶의 예술을 펼치면서
동시에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길에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 바쳐져야 하는 것이라면 정말 멋진 것을 창조하는데 드려져야 한다.
정수복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창조적 개인주의자’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 향린 목회 694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