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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여백

by phobbi posted Sep 02, 2026 Views 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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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9-02

2026. 09. 02.

 

: 그러면 여백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양화의 여백과는 비슷합니까?

: 동양화의 가운데나 윗부분이 비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비어 있다 해서 모두 여백은 아닙니다. 태반의 공백 있는 그림이 사실상 여백이 아닙니다. 그냥 비어 있는 거예요. 동양화에서도 잘된 그림에는 여백이 있습니다. 동양화이기에 여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그림이기에 여백이 있는 것입니다. 잘된 그림에는 힘이 있어서 그려진 것들 사이(예를 들어 산과 산 사이)에 바이브레이션(울림)을 일으키기 때문에 여백이 생기는 것입니다. 명말 청초의 팔대산인 같은 화가의 그림에서 고도의 여백 현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려지지 않은 부분이 여백이 아니고, 그려진 것과 공간(그려지지 않은 것), 그 전체를 포함하고 그 주변까지 포함한 것의 상호작용에 의한 바이브레이션이 여백 현상입니다. 내가 해석하는 여백은 현상학적인 여백의 현상입니다. 일본 여관에 가면 휑뎅그렁한 다다미방의 귀퉁이에 꽃 한 송이만 꽂아놓거든요. 그 꽃이 잘 꽂혔을 때, 아무렇게나가 아니고 잘 꽂혔을 때에 그 꽃은 방 안을 환하게 비추고 울림이 있습니다. 그렇게 여백이 열리고 생성되는 겁니다. 여백은 존재의 개념이 아니고 생성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동양화에는 여백이 있다’, 나는 그것 인정 안 합니다.

 

심은록 엮음,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5. 2. 초판 1쇄 펴낸날),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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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다고 모두가 다 여백은 아니다.

여백은 존재의 개념이 아니라 생성의 개념이며

여백 현상은 그려진 것들 사이에서 울림을 준다.

그렇다.

 

이우환 화백이 말하는 여백은

창조의 완성으로서의 안식과 매우 닮은 데가 있다.

여백은 공백이지만 존재의 힘이 녹아 있고,

살아있어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생성의 개념이라고 한 것이다.

안식은 그저 쉬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수다스럽게 설쳐도 존재감이 별로 없는 이들도 있지만,

가만히 있어도 여백의 미가 넘치는 이들이 있다.

고요히 머물러 듣고 있는 그 사람 덕에

모두가 모일 수 있고, 모두가 즐겁다.

그런 여백의 사람이 되고 싶다.

 

- 향린 목회 66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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