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8. 05.
교회는 매우 거대한 개념입니다. 교회를 단순히 제도라는 틀이나 관습, 규칙, 규정, 교인 명부, 세례 등록부, 헌금 봉투 위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동아리가 아니며 서로 의심하고 경쟁하는 패거리들의 집합은 더더욱 아니지요. 애초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라는 말을 그리 자주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길’은 예수의 길, 십자가의 길, 즉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의미했습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자신이 ‘길 위에’ 서 있다는, 여정 중이라는 이야기는 자신이 아직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떳떳하게 시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목적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들은 그 목적지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통치,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영원한 생명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 곧 ‘교회’를 그 나라와 동일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만에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뿐만 아니라 바울 역시 히브리 예언 전통을 계승해 자신이 세운 작은 교회 공동체에 상기시키곤 했습니다. 아직 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열매를 거둘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지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0장에서 바울은 “우리 조상들”(유대 민족)이 이집트에서 빠져나오는 놀라운 해방을 맛보았지만 정작 그들 중 약속의 땅을 밟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교회’ 개념은 ‘제도’(institution)와는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제도라는 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하나의 운동이었지요. 물론 어떤 운동이든 조직은 필요합니다. 오늘날 평화 운동, 생태 운동, 여성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운동이 마주하게 되는 가장 큰 위험은 조직화를 너무 잘한 나머지 운동이 제도로 고착되는 일이라고 말할 겁니다. 제도화는 운동에 필요했던 제도, 조직의 형태나 그 일 부 모습이 굳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은 쉽게, 그리고 (흔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슬그머니 일어납니다.
더글라스 존 홀 지음/조윤 옮김, <왜 그리스도인인가?>(룩스문디, 2026. 6. 20. 초판 1쇄), 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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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으로 교회에 속했을 때 깨달아야 하는 첫 번째는
바로 교회가 지닌 복잡성이다.
그 복잡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기까지는 꽤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는 기다리고 배울 줄 알아야 한다.
여느 공동체, 여느 사회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교회가 제도나 조직, 관습 이전에
예수를 따르는 운동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다.
십자가는 죽음을 각오하는 길이고,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죄 없는 자의 공적인 역할로 억울하게 당한 죽음이었다.
예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사적 욕망과 이익에 맞서는 일이며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것이며
그러다가 박해를 당하고 모욕을 당해도
그 억울함을 몸소 견디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동시에 교회가 하나의 길이라면
저자의 말대로 교회는 언제나 여정 중에 있다는 것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완벽한 교회란 없다.
더 나은, 어제와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다른 길을 끊임없이 모색할 뿐이다.
- 향린 목회 64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