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향린의 문서

향린교회 신앙고백 선언과 교회갱신 선언

by 관리자 posted Jul 15, 2018 Views 526 Replies 0
Extra Form
문서작성일 1993-05-09

우리 향린교회는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의 소용돌이가 채 가시기 전인 1953년 5월에 폐허로 변해 버린 서울 한복판에서 창립되었다. 이 시기는 우리 민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시련을 겪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들은 민족의 고난을 외면한 채 교파 분열과 교권 싸움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향린교회의 창립은 기성 교회의 이같은 나태한 모습에 대한 고백적인 결단이었다. 향린교회의 창립자들은 생활 공동체, 입체적 선교 공동체, 평신도 교회, 그리고 독립 교회라는 네가지를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삼았다. 그들은 이러한 교회가 민족의 현실과 미래와 운명을 외면한 채 바리새주의에 빠져 있던 기성 교회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고 희망이라고 믿었다. 향린의 창립 정신은 이런 의미에서 신앙고백적인 의미가 있었으며, 동시에 새로운 상황에서 교회가 거듭 새롭게 갱신되어야 한다는 개혁교회의 신앙 전통에 확고히 서는 것이었다.

 

40년 전 향린의 창립자들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향린의 2세 교인들은 향린교회를 포함한 오늘의 한국교회가 40년 전에 못지 않게 많은 문제와 병폐를 안고 있다고 판단한다. 교회는 끊임 없이 스스로를 개혁하고 갱신해야 한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이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교회는 뼈를 깎고 살을 베는 근본적인 개혁과 갱신을 통해 거듭나지 않으면 희망이 없는 교회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부족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자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을 믿고 그의 이끄심을 신뢰할 뿐이다. 우리 향린 공동체는 교회 창립 40주년을 맞아 우리가 걸어 왔던 발자취를 되돌아 보고 반성하며, 오늘 우리가 처한 자리와 모습을 살피고, 우리가 가야 할 앞 길을 내다 보면서 겸허한 자세로 이 신앙을 고백한다.

 

하느님께 영광을! 아멘.

 

 

향린교회 신앙고백 선언

 

우리는 하느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피조세계의 완전한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온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거듭 창조해 가시는 분이심을 고백한다. 그는 인간 개개인을 그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또한 인간을 역사와 문화를 함께 하는 민족 공동체로 부르시고 통치하시는 역사의 주이시다. 그는 각 민족을 부르시어, 자주적으로 살고 번영을 누리게 하시며 각기 독특한 사명을 부여하신다. 하느님께서는 각 민족과 나라의 역사와 고유한 문화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이시므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해 주신다. 그는 특히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민족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셔서 그들의 수난에 함께 하시며, 마침내 그들을 해방하시고 그들에게 선교적 사명을 부여하신다. 노예민이었던 히브리 민족을 에집트 제국의 압제에서 해방하여 자주적(自主的)인 민족을 이루어 살도록 축복하신 하느님은 우리의 민족사를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시어 주변 강대국에 의해 억압받던 우리 민족을 해방해 내셨다. 하느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주·자유·자치 민족으로 살게 하시고, 그의 세계 구원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르신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가 우리의 해방자요 우리의 주이심을 고백한다. 그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으로서, 죄와 죽음의 세력 아래 속박당한 채 신음하던 인간들과 같은 운명을 나누시고, 그들을 해방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살고, 선교하셨다. 그는 특히 육체나 정신이 병들어 고난당하고 소외된 사람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억압받고 갇혀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해방의 기쁜 소식인 자유, 평등, 평화의 희년을 선포하셨다(누가 4:18-19). 뿐만 아니라 그는 억압과 차별로 인해 소외된 민중의 운명을 스스로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심으로서 우리의 벗이 되고 우리의 해방자가 되셨다. 그는 하느님의 선교인 인간 해방의 선교를 수행하다가 반생명(反生命), 반평화(反平和) 세력에 의해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으나, 역설적으로 그의 십자가 사건은 민족들을 분단시키는 장벽을 허물어 하나로 통일시키고, 원수된 것을 서로 화해하게 하시고 평화가 실현되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에베소 2:14). 하느님께서는 죽음에 눌려있던 그를 일으켜 세우심으로 반생명·반평화 세력이 생명과 평화의 세력을 꺾지 못한다는 것과 하느님의 정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우리는 영이신 하느님을 믿는다(고린도후서 3:17). 그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예수가 가르쳐 주신 해방의 진리를 깨우쳐 주신다. 그는 또한 우리를 위로하고 믿음과 희망을 고취시키며, 우리에게 능력을 주어 예수의 뒤를 따라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그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 임재하실 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진리와 자유와 변혁의 영으로 임재하면서 우리가 세상과 역사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이상을 구현하고, 세상과 역사를 변혁하도록 의지와 용기와 힘을 주신다. 불의하고 악한 사탄의 세력에 의해 억압과 착취가 자행되는 곳에서 하느님의 영은 변혁의 영으로 운동한다.

 

우리는 예수의 교회를 믿는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마태 1:23, 요한 1:14)을 의미하는 성육신 사건의 내용이었다면, 교회 역시 하나의 성육신 사건이다. 교회는 예수와 그의 인격, 그리고 그의 메시야 선교활동의 계승자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예수의 성육신이고 예수의 몸이다. 교회는 또한 예수의 복음에 의해 해방된 사람들의 해방공동체이고, 공동체 내의 모든 구성원이 자유하고 평등한 삶을 누리는 민주 공동체요 정의로운 평화 공동체이다. 부활한 예수의 몸인 교회 안에는 몸이 활동하도록 하기 위한 여러 지체들이 존재한다. 이 모든 지체들의 직무와 기능은 각기 다르지만, 각 지체들 간의 관계는 그 지위에 있어 우열이 있지도 않고, 어느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 예속되지도 않는다. 또한 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구성원들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평등하고 서로 함께 조화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며, 함께 하느님을 예배하고, 서로를 위하고 봉사하며,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예수의 몸인 교회는 예수의 사건, 곧 그의 인격과 그의 삶, 그의 교훈과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이 세상에서 구체적인 행동과 삶으로 증언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다. 교회는 아직도 죄와 죽음의 세력 아래 신음하고 있는 이웃을 해방해야 할 메시야적 선교의 사명을 부여 받았다. 교회는 그 주인인 예수 처럼 이웃과 세계를 위한 존재이다. 교회는 받고 쌓아 놓는 단체가 아니고, 나누어 주면서 서로 섬기며 함께 누리는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이다.

 

한국교회는 한민족의 구원과 섬김을 위해 부름 받고 보냄 받은 민족교회임을 자각해야 한다. 민족교회로서 한국교회는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이 다른 어떤 것 보다 앞서는 선교 과제임을 자각해야 한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느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로마서 12:2)라는 명령은 예수의 공동체에게 이중적 변혁의 사명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자기 변혁과 세계 변혁이다. 예수의 몸인 교회 공동체가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어야 하고(마태 5:13-14), 또한 누룩이어야 한다(마태 13:33)는 것은 교회가 세계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교회가 세계 변혁의 사명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갱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믿고 희망한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주권이 정치·경제·사회적 현실로 실현된 세상을 가리킨다. 우리는 또 하느님의 나라가 이 지상 위에, 이 역사 안에 "새 하늘과 새 땅"(계시록 21:1)으로 실현될 것을 믿는다. 우리는 악하고 불의한 세력에 대항하여 투쟁함으로써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오늘의 현상질서(Status Quo)를 하느님 나라에 가까운 질서가 되도록 변혁하는 일에 힘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이러한 믿음과 희망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않으며, 마지막 날이 올 때까지 오로지 "예수께서 당한 수치를 걸머지고 영문 밖에 계신 그에게로 나아가는"(히브리 13:13) 일을 계속할 따름이다.

 

 

 

교회 갱신을 위한 제안

 

예수는 세상에 대한 우리 기독교인들(교회)의 관계를 "산 위에 있는 동네"(마태 5:14)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산 위에 있는 동네로서 교회는 산 아래 있는 모든 동네들인 세계가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럴 때에만 교회는 사회변혁의 주체로 당당히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교회는 산 위에 세워진 동네로서 부끄러움이 없는가?

 

우리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역사를 섭리하시고 세계 구원을 위하여 지금도 활동하시는 하느님 앞에 책임있는 자세로 거듭나고 개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교회의 개혁을 제안함에 있어서 우리 향린교회는 "남을 심판하는"(마태 7:1-2) 태도가 아니고 우리 자신도 개혁의 대상에 포함됨을 자인한다. 우리는 위의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의 해방의 은총에 믿음으로 응답하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겸허한 자세로 아래와 같이 한국교회가 스스로 갱신할 것을 제안한다.

 

 

1. 한국교회의 예배와 문화는 민족 정서를 담아 낼 수 있도록 갱신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예배와 문화 양식은 서양 선교사들이 심어 준 서구 문화의 유산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선교사들로부터 받은 복음과 그들의 문화를 혼동하여 이를 고수하려는 것은 ''종교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를 통해서 주체적으로 하느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예배의식과 문화는 갱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안한다:

 

1) 찬송가와 성가를 비롯하여 예배에 사용되는 문화적 표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담아 낼 수 있도록 내용과 형식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구 문화의 영향이 지나치게 강한 찬송가와 성가 및 다른 예술적 표현들은 우리의 고유한 정서와 가락이 담긴 민족음악 형식의 찬송가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산출된 민중 찬송가 및 그와 같은 문화·예술적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배에 사용되는 악기도 우리 것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예배시에 목사를 비롯한 예배순서 참여자들(기도자, 성가대원, 헌금위원 등)이 입는 예복은 서구식의 까운 보다도 전통적인 예복이나 개량된 한복이 바람직하다. 또한 각종 예식에 사용되는 그릇이나 그림, 상징물 등도 우리 정서와 문화가 표현된 것을 사용함이 바람직하다.

 

3) 성찬예식에는 우리 고유의 음식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떡과 술은 우리 민족 고유의 대동 정신이 깃들어 있는 음식이므로 이를 성례에 사용하는 것이 더욱 뜻이 깊다.

 

4) 교회의 건축 양식과 각종 기물은 민족 정서와 우리 문화에 맞도록 가꾸고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5) 우리 조상 전래의 미풍양속인 제사는 기독교적인 의식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제사는 선교사들에 의해 우상숭배로 단정되었으나 사실은 우상숭배가 아니다. 이는 서양사람들의 추도예배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서, 단순히 문화 양식의 차이일 뿐이다.

 

6) 교회력은 서양 교회사를 통해 형성된 절기만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사를 반영한 절기를 수용하여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설, 추석절, 한식, 동지 등과 같은 민속적 축제일과 3·1절, 4·19, 8·15 등 민족사적 기념일을 교회력에 반영할 수 있다.

 

 

2. 교회는 민주적 공동체로 갱신되어야 한다.

 

해방되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마땅히 구성원들이 서로 조화와 평등, 평화를 이루는 평등 공동체, 민주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은 교인들의 다양한 의사를 민주적으로 반영하는 제도와 구조를 갖지 못한 채, 소수의 남성 지도자들에 의해 구성된 당회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이로 말미암아 교인의 다수를 구성하는 여성과 청년은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어, 민주적이어야 할 교회공동체의 삶이 목사와 소수의 장로로 구성된 당회에 의해 사실상 지배되고 있다. 이는 해방된 하느님의 백성들의 민주·평등공동체의 원리에 명백히 어긋나는 잘못된 관행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내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없게 하며, 교인들의 다양한 선교 역량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의사 결정 구조가 민주적으로 갱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7) 공동의회는 명실상부한 교인들의 총회이므로 그 의제를 제한하거나 그 권한을 축소하고 있는 교회의 헌법적 제한과 일반적 관례는 비민주적이므로 철폐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일정수 이상의 교인들의 소집 요구가 있으면 당회의 결의와 관계 없이 당회장은 공동의회를 소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8) 당회의 구성과 운영은 민주적이어야 하며, 당회의 결의 내용은 교인들에게 그때 그때 공개되어야 한다. 연령, 남여 등 각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당회를 구성하고 장로는 임기 6년제로 시무하고 신임투표를 통하여 중임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장로의 임기와 계속 시무투표 실시 여부, 중임 회수 제한 여부 등의 문제는 개 교회의 사정에 따라 융통성 있게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중임의 경우 일정 기간마다 안식년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9) 당회의 민주화와 병행하여 당회와 별도로 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일반 교인들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조직을 두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 내의 각 기관과 부서(당회 포함)의 장(長)이나 대표로 구성되는 ''목회위원회''(가칭)를 두어 인사, 행정, 재정, 교육과 선교 등과 같은 교회생활에서의 일반적인 문제들을 관장하게 할 수 있다. 이 때 당회의 책무는 성례 주관, 교리 해석, 각 기관의 지도·감독, 권징과 해벌, 선교와 목회정책의 기획과 입안 등의 사항에 제한될 수 있다. 이 경우 교회는 당회와 목회위원회라는 이원구조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10) 목회자는 임기제에 의해 시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목사의 임기, 시무투표, 중임 제한 등의 문제는 장로에 대한 규정에 준한다. 다만 목사는 중임하는 경우 매 7년마다 1년간 유급 안식년을 가지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교역자의 임기는 3년 이상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안식년 제도는 담임목사에 준하도록 한다.

 

11) 평신도도 목회적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는 목회자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직책상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교회의 모든 생활에서 목회자와 평신도간의 차별은 철폐되어야 한다. 예배에 있어서도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와 예배자가 구분되어 목사가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고 평신도는 따라가는 형식에서, 공동체 구성원 전원이 참여하는 예배의 형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12) 교회 내의 남여 차별은 실질적으로, 완전히 철폐되어야 한다. 여성 장로 제도와 여성 목사 제도는 하루 빨리 정착되어야 한다. 여성 장로의 숫자는 교인들의 남여 비율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교회는 선교지향적 공동체로 갱신되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섬기고 봉사하는 존재이므로 교회의 모든 역량을 선교에 주력할 수 있도록 목회와 선교의 구조를 갱신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교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교회의 대형화와 내부적 필요만을 위해 사용해 왔다. 세계를 섬기고 봉사하는 본래의 존재 의의에 부합하도록 교회를 선교지향적 공동체로 갱신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3) 한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세계적 교회이면서, 동시에 한국민족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부름받았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교회는 분단된 남북 동족간에 화해, 평화, 통일의 실현을 최우선적인 선교과제로 가진다. 한국교회는 1995년 통일과 평화의 희년 구현을 가장 우선적인 선교 사명으로 인식하고 이의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 안에 "평화와 통일을 위한 희년위원회"(가칭)를 설치하여 통일을 위한 지속적인 선교활동을 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14) 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선교공동체로서 적어도 교회의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의 30 % 이상을 사회선교를 위해 할당하고 사용해야 한다. 목회자의 목회 시간과 교인들의 신앙 생활 등 인적 자원도 이에 포함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건물과 시설은 지역 사회를 위해 개방되어야 한다.

 

15) 교회와 목회자는 필요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지 말고 이를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고 사회를 위한 선교사업에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와 목회자는 책임적인 청지기 역할을 하기 위하여 부동산과 동산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공개하고 매년 노회와 총회에 신고해야 한다. 목회자는 검소한 생활을 통하여 예수의 청빈의 교훈을 실천하는 데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교회가 교인들로부터 거둔 헌금으로 부동산 투기등을 일삼거나, 목회자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은 비성서적일 뿐 아니라 비도덕적이기도 하다.

 

16) 교회는 교회당 건물과 부속 시설을 화려하게 치장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외형적인 데 있지 않고, 예배와 선교에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종각과 십자가 네온사인 등의 시설은 철거되어야 한다.

 

17) 교회의 크기를 성인 교인 500명을 최대 인원으로 하는 ''교인 정원제''를 실시하고, 그 이상의 인원이 되면 분가선교를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 교회가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대형교회가 되는 것은 선교적, 목회적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대형교회는 교인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교회당을 증축하거나 멀쩡한 교회당을 헐고 신축함으로써 예산 낭비가 심할 뿐 아니라, 사회선교에 쓸 예산을 교회 자체를 유지하는 데 쓰게 되는 등 그 병폐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는 불가피하게 경영자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18)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폐단 중 하나인 ''개 교회 중심주의'', 또는 ''교회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하나의 교회''를 위해서나, 교회 본연의 선교와 목회의 사명 수행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모든 교회들은 다른 교회와 ''선교 동역자 협약'', 또는 ''자매 관계'' 등의 연대관계를 맺고 함께 선교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도시 교회는 농어촌 교회와, 중산층 교회는 민중 교회와, 부유한 교회는 가난한 교회와, 큰 교회는 작은 교회와, 자립 교회는 미자립 교회와 연대하여 선교를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서로 교류하고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19) 기독교가 생활 종교, 실천적 종교가 되기 위하여 교회는 ''모이는 교회'' 보다는 ''흩어지는 교회''로, 교회 집회 중심의 종교보다는 생활 중심의 종교가 되도록 목회와 선교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집회의 횟수가 지나치게 많다. 이것은 교역자와 교인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므로 이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는 빈번한 집회를 통해 교인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는 데만 관심하지 말고 목회자와 교인이 세상에 흩어져서 책임있는 기독교인으로서 선교와 봉사에 헌신하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매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금요 철야기도회, 기도원에서 매주 개최되는 집회, 계절적으로 혹은 정기적으로 가지는 심령부흥성회 등의 각종 집회들은 사회적으로도 여러가지 폐단이 있으므로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독교 신앙은 모이기에만 힘쓰고 입으로만 믿는 종교, 행동 없는 종교가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는 생활 종교가 되어야 한다.

 

20) 영성과 방언, 신유의 은사를 받는 방법을 강습하는 기도원의 난립은 현재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 있으므로, 이를 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는 마치 흥행사와 같은 작태를 보여 사회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직업적 부흥강사들을 교회 안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각성제 주사를 맞듯이 정기적인 부흥회에 의존하는, 기복적이고 미신적인 종교가 되어서는 안된다. 소종파적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성령운동을 내세운 광신적 신앙 행태들은 성서에도, 건전한 기독교신앙에도 어긋나는 것임은 물론이고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반사회적 관행으로 지탄을 받아오고 있으므로 교회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권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21) 목회자의 사례비는 표준화하여야 한다. 어떤 목회자도 생계에 위협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도시 교회 목회자와 농어촌·빈민지역·민중 교회 목회자 간에 존재하는 현격한 사례비 격차는 좁혀져야 하고, 모든 목회자들의 사례비가 평준화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교단 총회는 목회자의 목회 경력을 고려하여 호봉제를 실시하되, 자녀 수에 따른 교육비, 도시와 농어촌의 지역적 특수성에 따른 생활비의 차이, 그리고 그 외의 각종 수당 등을 고려하여 ''표준 생활비 규정''(가칭)을 제정하고, 전국 목회자의 사례비를 표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2) 목회자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모든 기독교인은 하느님 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이 지상 국가의 시민이다. 시민으로서 기독교인은 비기독교인들과 꼭 같이 나라의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목회자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특히 기독교 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목회자가 세금을 면제 받아야 할 근거나 이유가 없다고 본다.

 

개혁은 교회를 거듭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활동하심에 대한 고백적인 참여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의 상태를 고수하고자 더 이상 개혁하기를 멈추었을 때, 세상에 대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세인들의 지탄의 대상이 될 뿐임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갖추어야 할 경건의 미덕은 자기 개혁의 채찍을 놓은 보수주의나, 세상에 대하여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탈정치적 도피주의가 아니다. 경건은 성령을 통해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며, 동시에 세상을 향해 책임있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 향린교회는 개혁교회의 전통에 확고히 서고자 노력하는 많은 교회들과 함께, 오늘의 한국교회가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예수의 교회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충정과 겸허한 자세로, 교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때에, 우리 주님의 부활 이후 다섯째 주일에 이 <교회갱신선언>을 제안하는 바이다.

 

한국교회에 하느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1993년

민족 통일 염원49년

5월 9일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