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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기도회

평화의 사도들 ㅣ 2025-10-15 ㅣ 한문덕

by phobbi posted Jun 11, 2026 Views 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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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0-15

수요평화거리기도회

평화의 사도들

(스가랴서 9:9-10, 5:1-12)

 

한문덕 목사

 

 

[평화를 바라지만]

 

  평화는 히브리말로 샬롬입니다. 샬롬은 안녕처럼 서로 만났을 때 나누는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유다-로마 전쟁 이후 하루하루의 삶이 진정으로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도 옛날에 진지 드셨냐?”는 말로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밥 한끼 먹는 것이, 하루의 안녕을 상징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산상설교의 말씀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에게 내리는 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최고의 보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과 더불어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마태 5:43-45)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 모두는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길, 그래서 평화를 이루는 길은 바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잇는 길이고,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이어가는 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화를 이루는 길은 위대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고, 또 사람은 누구나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지만, 놀랍게도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얼룩져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 눈물까지 흘리시며 탄식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누가복음서 1941-44a>

 

  예수님도 전쟁에 휩싸인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 욕망을 채우고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일으키고, 또 그것을 대단한 업적으로까지 칭송하기도 합니다. 춘추전국시대의 평화 사상가였던 묵자는 이런 현실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한 사람을 죽이면 옳지 않다고 하며 반드시 한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죄를 묻는다. 이처럼 말해 나간다면 열 사람을 죽이면 열배의 옳지 않음이 있고, 반드시 열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죄를 묻는다. 백사람을 죽이면 백배의 옳지 않음이 있고, 반드시 백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죄를 묻는다. 이런 것은 천하의 군자들이 모두 알기에 그것을 비난하며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크게 옳지 않은 짓을 행하며 나라를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할 줄 모르며 그런 상황을 좇아 칭송을 하며 옳다고 말한다. (이것은) 진실로 옳지 않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알지 못하기에 그 말을 적어 후세에 남기기까지 한다. 만약 옳지 못함을 알았다면, 도대체 무슨 말로 그 옳지 못한 것을 적어 후세에 남기겠는가? (殺一人, 謂之不義, 必有一死罪矣. 若以此說往, 殺十, 十重不義, 必有十死罪矣. 殺百人, 百重不義, 必有百死罪矣. 當此, 天下之君子皆知而非之, 謂之不義. 今至大爲不義攻國則弗知非, 從而譽之, 謂之義. 情不知其不義也. 故書其言, 以遺后世. 若知其不義也, 夫奚說書其不義. 以遺后世哉.) <비공, >

 

[전쟁이란 무엇이며 왜 일어나는가?]

 

  우리도 전쟁을 겪었는데 과연 전쟁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조직을 갖추고 목적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전쟁에서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온갖 기술이 발달하고, 전쟁에 참여한 사람 즉 군인들은 전문적인 살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규모의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죽이기를 하는 것이 전쟁이기에 내가 살기 위해선 남을 죽여야 합니다. 따라서 전쟁터에선 우선 살아남아야 하고, 타인을 생각할 자리가 생겨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는 온정보다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는데, 그러나 놀랍게도 전쟁터에 참가한 이들은 이성을 잃게 됩니다.

  보통 전쟁은 여러 나라의 정부와 정치인들이 더 이상 대화를 통해 평화로운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전쟁 당사국인 나라들은 무기와 군대를 동원해 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6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념, 사람, 무기, 자금, 정보, 조직(네트워크)입니다. 민족을 수호하고 나라를 지킨다든지, 국제 평화를 위해서라든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든지,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라든지, 가난에서 해방되고 싶어서라든지 확실한 신념이 없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전투 능력이 뛰어난 젊은 사람무기가 있어야 하고, 각종 정보가 필요하며 전쟁을 수행할 자금이 필요합니다. 생산력의 발달이 전쟁을 위한 자금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자금의 마련을 위해 인신매매, 마약 판매, 무기 밀매 등의 각종 범죄가 연결되기도 합니다. 무기 개발을 위한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되기도 하고, 전쟁 수행을 위한 군인들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이 모두를 통솔할 신호와 명령 전달 체계, 무기의 질, 군사들의 훈련 정도와 전투력, 전술 이해 능력 등을 원활하게 활용하기 위한 규격화된 표준과 기준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 조직이 함께 움직여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전쟁의 상황은 늘 변하기 때문에 상황에 유연한 대응력이 요구되며,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위장과 은폐, 의도된 노출 기술이 발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전쟁 결과로 인류 문명이 발전하기도 했지만, 오스트리아 작가인 카를 크라우스가 말한 대로 결국은 모두 망합니다. “전쟁은 한쪽이 예전보다 더 좋아지게 될 거라는 희망과 다른 쪽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하지만, 그 다음에는 복수심으로 인해 처음의 상대도 더 좋아지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양쪽 다 더 나빠지는 충격적인 결과에 이르는 놀음이 됩니다. 전쟁은 이기는 쪽이든, 지는 쪽이든 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는 삶의 근거지가 황폐화되는 참혹한 결과를 내게 되고, 전쟁과 직접 관련 없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심각한 해를 입히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한 이들은 평생을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정복이나 권력 경쟁, 자원을 침탈하거나 자민족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식민지 확대, 맹목적인 신앙이나 헤게모니 쟁탈전과 세계관의 확대 등을 이유로 전쟁은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전쟁에 이르는 폭력은 대개 강대국 대 강대국 사이에서, 강대국 대 약소국 사이에서, 약소국 대 약소국 사이에서, 한 국가 내의 다수파와 소수파의 대립으로, 또는 풍요로운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대립으로 발생합니다.

  강대국 대 강대국의 경우는 전쟁을 할 경우 전쟁이 대규모로 확장할 가능성 때문에 전쟁을 회피하는 노력을 지속하게 되고 긴장 상태만 유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냉전 시대가 대표적 예이다. 강대국 대 약소국의 경우는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정복과 징벌 차원의 전쟁이 벌어집니다. 제국주의에 따른 식민지 건설이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약소국 대 약소국 사이의 전쟁은 강대국에 의해서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한 지역들에서 분쟁이 나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아프리카의 경우가 매우 심합니다. 또는 한 국가 내에서도 다수파와 소수파의 대립으로 또는 이념적 갈등 등으로 내전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지금 미국이 미치광이 트럼프에 의해서 내전 위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

 

  그럼 여지껏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흔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무력 충돌은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한 문제라고들 하고, 최근 벌어진 2년의 전쟁은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2023107일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볼 수 없습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점령하면서 팔레스타인 민중은 지속적으로 영토 점령, 통행 제한, 인권 침해에 시달려왔습니다. 특히 2007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는 사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몰살시키려는 긴 탐욕과 학살의 시작이었습니다. 58년째 군사 점령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립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 생각하고, 세상에서 가장 큰 지붕 없는 감옥을 만들었던 것이고, 주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살인적인 사냥을 해 왔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결국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유대 극우 세력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정부의 보복은 너무나도 참혹한 집단학살일 뿐이었습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915일 유엔(UN) 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집단학살(genocide)’을 자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2023년 하마스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 정부와 군이 국제법이 규정한 5가지 집단살해 행위 중 4가지를 저질렀다고 볼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 지구 내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소 64905명이 숨졌습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대부분이 여러 차례 강제 이주를 겪었으며, 주택의 90% 이상이 파괴되거나 파손되었습니다. 가자 지구의 의료, 상하수도, 위생 및 보건 시스템은 붕괴했으며, UN이 지원하는 식량안보 전문가들은 가자시티에서 식량 위기 최고 단계인 기근’(가장 최악의 굶주림 인구 5명 중 4명이 가자 지구 사람들)이 발생했다고 공식 진단했습니다.

  위원회가 이번에 공개한 72페이지 분량의 이번 보고서는 이번 전쟁에 관해 현재까지 나온 가장 강력하고 권위 있는 UN의 조사 결과라고 설명했는데, 이스라엘 당국과 군은 집단 구성원 살해 행위”(보호 대상 시설에 대한 공격, 민간인 및 기타 보호 대상자에 대한 공격, 사망을 초래할 조건을 의도적으로 조성)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민간인과 보호 대상 시설에 대한 직접적 공격, 가혹한 구금 대우, 강제 이주, 환경 파괴)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의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행위”(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필수적인 시설과 토지 파괴, 의료 서비스의 파괴 및 접근 차단, 강제 이주, 필수 구호품··전기·연료의 차단, 생식 폭력,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특정 조건 조성), “집단 내 출생을 막는 행위”(202312월 가자지구 내 최대의 불임 치료 클리닉에 대한 공격으로 배아 약 4000개와 정자 및 미수정 난자 1000개가 파괴된 것으로 보고됨) 등을 저질렀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전쟁 양상과 전쟁을 끝내려면~]

 

  오늘날의 전쟁은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와 가난하기에 위험한 사회의 대립 속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오늘날도 전쟁이 끝나지 않고 연쇄적인 폭력으로 왜 이어지는 걸까요? 그것은 가난하기 때문에 위험한 사회의 부정적인 결과들이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에 영향을 주고,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는 자신들의 보호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를 이용해 먹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이 가장 문제입니다.

  냉전 시대가 끝난 이후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라 불릴 수 있는 미국의 정치 외교 군사적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전쟁이 발생하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규탄하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전쟁 학살도 사실은 미국과 연결되어 있고, 9.11과 그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그 이전에 이라크 침공 등 수많은 전쟁은 사실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인 미국에 의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 제1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최근까지 세계의 경찰관 노릇을 하며 세계의 각종 분쟁에 개입하였고, 이것이 또 다른 전쟁의 빌미가 되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은 자신의 을 봉쇄하기 위해 자신을 대신하여 전쟁을 벌일 국가나 무장세력을 지원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은 국가의 군대나 무장 조직이 성장합니다. 이들이 벌이는 전쟁이나 내전이 장기간 지속되고, 많은 무기가 유입되자 현지 사회는 폭력화됩니다. ‘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미국은 동맹국에 대한 지원을 멈추고 손을 뗍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분쟁지역에서 평화를 만드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지원을 멈춘 후, 전쟁과 내전 상태로 방치되어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미국은 선거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사전략이나 외교정책이 바뀌게 되는데,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대국인 미국은 다른 나라와의 약속을 제 맘대로 지키지 않고, 자국의 상황에 따라 외교정책을 바꿉니다. 결국 세계 각지의 운명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따라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을 예로 들었지만, 전 세계에 계속되고 있는 연쇄적인 폭력의 고리를 끊고 좀 더 평화로운 세계로 바꾸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습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는 다양한 요인이 겹쳐서 수년 아니 수십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 풍부한 지혜, 인내, 사람들 사이의 협력,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폭력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크게 세 가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강한 폭력을 써서 폭력을 없애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심각한 증상에 대해 서둘러 치료 방법을 마련할 때 적합할지 모르지만 그 피해 또한 매우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최소한도의 폭력을 이용하여 폭력을 줄여 나가는 방법인데, 이것은 유엔이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우선적으로 폭력을 막고 중재하는 방법과 같은 것으로 첫 번째 방법보다는 더 신중한 것이지만, 평화유지군의 활동의 정당성 문제가 늘 제기됩니다. 세 번째는 폭력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비폭력의 힘을 이용하여 평화를 만들어 가는 방법입니다. 강대국에서는 스스로 무기를 없애는 군축을 시행하고, 가난하고 위험한 세계에서는 만성적인 폭력사회를 주민들의 일상적인 노력으로 바꾸어 가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만이 가장 이상적인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현대세계의 폭력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보다는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나 두 세계의 접점에서 일어납니다. 결국 풍요로운 선진국 사이나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나 내전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의 주민들에게 폭력은 외부 즉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에서 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는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오는 폭력을 어떤 방법으로 저지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방법으로 첫째,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몇 겹의 자물쇠를 채우는 것. 둘째, 위험한 을 공격하여 상대의 힘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법. 셋째,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를 위협하는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를 개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 세 가지 정책을 조합한 것이 바로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폭력으로 폭력을 통제하는 방법은 그 성과가 바로 눈앞에 보이지만, 오히려 폭력을 확대시켜 새로운 연쇄적인 폭력의 고리를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독으로 독을 제압하려다가 결국은 대량의 독을 유포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세계의 정세를 살펴보면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의 시민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위험하고 더러운 것들이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에 전가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대도시의 슬럼가, 가난한 변경이나 분쟁지역, 이런 지역을 안고 있는 가난한 나라들이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폭력을 멈추는 방법이란 평화와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면서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에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인데, 그 지역의 부흥을 제대로 지원하려면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에서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로 보내는 물자를 현지에서 책임지고 분배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에게 신뢰를 받는 행정기관이나 사회조직, 예를 들면 정당, 종교조직, 학교, 노동조합, 회사, NGO 등이 서로 손을 잡고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부흥을 지원하는 주역은 역시 현지인들이어야 합니다.

  전쟁과 같은 폭력이 수행되기 위해서 필요한 6가지 요소를 위에서 살폈지만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도 6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사람, 신념, 네트워크, 자금, 정보, 비폭력의 무기입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가난하고 위험한 세계의 폭력 세력이나,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의 유지를 위해 폭력을 쓰는 사람들의 영향력보다 평화를 원하는 이들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수 있고, 그러한 국제 여론은 국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평화를 위한 지금의 나의 선택이 폭력적인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다시 한번 바라보면서 빈곤이나 폭력에 노출된 것이 당사자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 인간적인 자부심을 갖는 것. 상황은 바뀌며 자신에게는 상황을 바꿀 힘이 있다는 것. 도움을 요청해도 좋고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결정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동료가 있어 자신은 항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가난하고 위태로운 사회를 위한 지원과 원조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의 사도들이 되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더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평화의 힘으로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종식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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