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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신앙 | 희년남신도회수련회 예배 | 정승우 목사

by 관리자 posted Aug 04, 2026 Views 10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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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7-18

길 위의 신앙

(시편 39:12, 요한 14:6)

 

 

어제 이명권 박사님이 노자를 강연하셨습니다. 노자 사상의 핵심 키워드는 ‘道’이며, 이를 영어로 옮기면 the way, 곧 ‘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자신을 길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1세기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그리스와 소아시아를 관통하는 수많은 군사도로를 건설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도로는 두 지점 사이의 거리와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기에 언제나 직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굴곡진 길에 가깝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도로 대신 갈릴리 촌락의 굽이진 길을 택하셨습니다. 로마의 도로는 정복과 폭력으로 점철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걸으신 길은 일방통행의 군사도로가 아니라, 사연 많은 민중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걸었던 굴곡진 인생길이었습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주된 이미지는 끊임없이 길을 가시는 분입니다. 어제는 가버나움에, 오늘은 벳새다에, 내일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 계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한 곳에 안주하거나 정착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그리심 산과 예루살렘 중 어느 곳이 참된 예배 장소인지 물었을 때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특정 장소에 한정하려는 그 생각을 바로잡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공간이나 관념 속에 가둘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신약성서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의 가장 오래된 사본은 16장 8절, 곧 여인들이 두려워 떠는 장면에서 결말 없이 끝납니다. 지금 우리 성경에 나오는 그 이후의 부활 이야기는 2세기에 덧붙여진 삽입 단락입니다. 저는 이 열린 결말이 의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가는 자신의 이야기의 바통을 우리에게 넘긴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 이야기는 2천 년 전에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가운데서 진행 중인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중세인들은 이 여백을 순례로 채우고자 했습니다. 예루살렘이나 로마, 산티아고 같은 성지를 찾아가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표현이었고, 순례의 진정한 의미는 목적지 자체보다 그곳에 이르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움직이는 과녁과 같은 분이어서 우리의 생각이나 이미지 속에 포획되지 않으십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한 순례 속에서, 야곱은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헤매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예측하고 기대하는 안락한 장소가 아니라 낯선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작가 브루스 채트윈은 길 되신 하나님이 이동하는 언약궤에 거하시며, 그 집은 장막이고 제단은 거친 돌무더기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유월절에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잡은 채 서둘러 먹으라고 명령하신 것도 움직임에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뜻이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은 안주를 허락하지 않는 ‘움직이는 신’입니다. 타락은 언제나 안주에서 시작됩니다. 출애굽한 히브리 사람들도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길(hodos)’은 제자도를 의미하는 핵심 상징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길을 오해하여 승리와 영광의 길로 착각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너희가 길에서 서로 무엇을 토론했느냐” 물으셨을 때, 제자들이 아무 말도 못한 것은 서로 누가 크냐고 쟁론했기 때문입니다(막 9:33-34). 예수님의 길은 버림과 비움의 길이지 쟁취와 채움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역시 30년을 로마제국의 길 위에서 살며 자신의 길을 결코 완성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미 얻은 것도,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빌 3:12). 사도행전은 예수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기 전에 ‘도(the way)’를 믿는 사람이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시편 기자도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라고 고백하고(시 39:12), 히브리서와 베드로전서도 그리스도인을 나그네요 본향을 찾는 순례자라 부릅니다.

 

예수님은 선교 여정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10:9-10). 배낭을 가볍게 하고, 타인의 환대를 정중히 수용하며, 순례 중에 뜻밖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라는 뜻입니다. 야고보와 그의 형제들은 그물과 생업, 심지어 아버지까지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지만, 한 젊은 부자는 재산을 포기하지 못해 결국 생명의 길을 포기했습니다(막 10:23).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순례의 여정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소유입니다. 물질적 소유뿐 아니라 지위와 명예 같은 정신적 소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순례의 길을 걸으려면 발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발은 우리의 무거운 체중을 싣고 다니는 소중한 지체이면서도 가장 소홀히 다뤄지는 부분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합니다(사 52:7). 물집 잡히고 상처투성이인 발이지만, 그 발이 우리의 진실한 삶을 말없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7장의 한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향유를 부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신 것도 상처 난 두 손과 두 발이었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신앙보다 발로 실천하는 신앙이 더욱 중요한 시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우화를 들려 드리고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중세 시대 신앙인들에게는 성자들의 유품과 유골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것이 대단한 신앙적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가문 좋고 돈 많은 이탈리아의 한 젊은 기사가 이 유행에 이끌려 성자의 무덤을 찾아 나섰습니다. 전 재산을 팔아 여행 경비를 마련하고 하인들을 대동한 채 정처 없이 길을 떠났지만, 수많은 세월을 길 위에서 보내고도 무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머리는 어느덧 백발이 되었고 재산도 종들도 모두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걸인과 같은 모습으로 기다시피 길을 걸으며 성자의 무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무덤을 찾지 못한 채, 이름 없는 어느 길가에서 조용히 마지막 순간을 맞았습니다. 그의 시신을 거둔 마을 사람들은 초라한 무덤 앞에 이렇게 묘비명을 적었다고 합니다.

 

“성자의 무덤”

 

우리는 순례를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례는 유희가 아니라,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찾는 영적 모험이며 신앙의 도전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천상을 향한 순례자들입니다. 산티아고나 예루살렘으로 떠날 여력은 지금 없더라도, 일상의 작은 순례를 통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훈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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