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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길과 하늘의 복 ㅣ2026-08-02ㅣ 한문덕

by phobbi posted Aug 02, 2026 View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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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8-02

의인의 길과 하늘의 복

(1:1-6, 1:3-11, 6:20-26)

 

한문덕 목사

 

[새해에 받았던 복을 지금도 누리는가?]

 

  벌써 8월입니다. 교육부서의 여름 행사들과 각 신도회 부서의 수련회를 마치고 무더운 여름 지나 9월 추석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 갈 것입니다. 한 해의 중반을 보내시면서 다시 한번 올해 초에 세웠던 다짐들과 기도 제목들을 떠올려 보시지요! 생각했던 대로 잘 진행되는 분도 계시고, 조금 미진하다 싶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무더위에 지치고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이럴수록 더욱 힘내야 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새해 인사를 하지요. 미국 사람들은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중국 사람들은 新年快乐(신니엔콰일러), “새해도 즐겁게라고 인사하고, 일본 사람들은 新年 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신넨 아케마시데 오메데토 고자이마스), 새해가 밝은 것을 축하드립니다.”라고 하지요. 우리는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이런 인사말들은 역사와 삶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밤새 평안하셨습니까?”라고 하는 인사말 속에는 밤에 도적 떼나 산짐승들에게 해를 입었던 경험에서 나온 말이지요. 특히 저 남도에서는 밤마다 왜구들이 출몰하여 약탈을 일삼았지요. “진지 드셨나요?”라는 인사말은 배고프던 시절의 이야기이고요. 헤어질 때 건너가세요!” 또는 넘어가세요!”라는 말은 이 마을과 저 마을이 냇물이나 고개 또는 산으로 경계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고, 숟가락이나, 항아리, 다식판에 복()이라는 한자를 가득 써 놓은 것은 그만큼 우리 삶이 팍팍했기에 늘 복 받기를 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삶이 진짜 복 받은 삶일까요? 유교가 일상의 삶에 녹아 있는 이 땅에서는 오복(五福)이라고 해서, 오래 살고(),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집안에 큰일 없이 몸 성히 지내고(康寧), 덕을 좋아하여 즐기다가(攸好德) 편안하게 잘 죽는 것(考終命)을 복으로 여겼습니다. 사회적 명예를 얻는 것(), 자손이 많은 것(子孫衆多)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아마 현대인들도 대체로 이런 복을 바랄 것입니다.

 

[교황의 행복 지침]

 

  그러나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복이 다를 수 있습니다. 20147,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주간지 비바(Viva)와의 인터뷰에서 더 큰 기쁨을 위한 10가지 팁을 말했습니다.

  ①자신의 삶을 살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게 내버려두라. Live and let live. 다른 사람에게 당신을 내어주라. Be giving of yourself to others. 조용히 나아가라. Proceed calmly in life. 건강한 여가 감각을 가져라. A healthy sense of leisure! 예술, 문학을 즐기고 아이들과 가까이하라. 소비중심주의가 불안을 낳는다. 일요일이 진정한 휴일이 되도록 하자.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Sundays should be holidays. Workers should have Sundays off because “Sunday is for family.” 젊은이들을 위해 가치 있는 일자리를 창조할 혁신적 방법을 찾자. Find innovative ways to create dignified jobs for young people.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라. Respect and take care of nature. 부정적 태도를 버려라. Stop being negative. 남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고 남의 신념을 존중하라. Don’t proselytize; respect others’ beliefs. 평화를 위해 행동하라. Work for peace!

 

[하늘의 복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라]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언제 행복을 누리십니까?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할 때, 행복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도 행복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

  제1성서에서 복과 관련된 단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크(ברך)이고, 다른 하나는 아쉐르(אשׁר)입니다. 바라크는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시고 능동적으로 베푸시는 생명력과 번성의 힘으로서의 복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베푸신 축복,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복이 바라크입니다. 그런데 바라크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뜻은 무릎을 꿇다(kneel down)”입니다. 이 단어는 놀랍게도 복을 받는 이의 자세만을 가리킬 뿐 무엇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바라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주실까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자세로있는가 하는 것에 관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엎드린다는 사실 자체가 복이라고 성서는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 아쉐르는 기본 의미가 곧게 나아가다, 똑바로 걷다, 앞으로 나아가다입니다. 이 단어는 독립적으로 서술어 자리에 오지 못하고 반드시 뒤따르는 명사와 함께 쓰입니다. 즉 문자적으로는 누구누구의 곧은 걸음들, 무엇의 형통함에 가까운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쉐르는 구약에 약 45회 등장하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26)가 시편에 집중되어 있고,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1절의 첫 단어입니다. 아쉐르는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부어지는 축복이라기보다,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이러저러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성서가 말하는 복은 개인적인 심리상태가 아닙니다. 복이란 삶에서 얻어야 할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오늘 시편의 가르침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으뜸은 하나님의 가르침인 율법을 묵상하여 주님이 주시는 지혜를 통해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여전히 의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말씀 묵상을 하였는데, 우리 또한 각자의 방법대로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이 복 있는 사람은 이러이러하다라고 말할 때 먼저 악이 다스리는 영역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주변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 죄악의 유혹이 가득하다는 것이지요.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가 등장하고 있는데, 사실 악과 죄와 오만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악은 죄가 쌓여서 들러붙은 것이며, 죄는 바로 오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찾아보려는 자세 없이 제가 스스로 세상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 그 교만으로부터 다른 생명체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는 죄가 발생합니다. 이 죄를 서슴지 않고 행하여 부끄러움도 모르고 마치 당연하게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악이 됩니다.

  우리가 악인의 꾀에 넘어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사람이 되지 않은 첫째 길은 바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는 것입니다.

 

[하늘의 복은 세상의 복을 뒤집는다]

 

  6세기 로마의 철학자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년경)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로마 최후의 고전 철학자로 불리는 인물로, 집정관까지 지낸 최고의 지위에 있었으나 모함을 받아 반역죄로 몰려 처형을 기다리며 옥에 갇히게 됩니다. 어제까지 로마 제일의 권세와 명예와 학식을 누리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형수가 되어 감옥의 어둠 속에 앉은 것입니다. 그가 그 옥중에서 쓴 책이 <철학의 위안(De Consolatione Philosophiae)>입니다.

  처형을 앞둔 그 밤, 철학의 여신이 그에게 나타나 위로하며 들려주는 말이 있습니다. 포르투나(Fortuna), 즉 운명의 여신 이야기입니다. 포르투나에게는 수레바퀴가 하나 있는데, 그 바퀴는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바퀴의 꼭대기에 앉아 부와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자가, 내일이면 바퀴가 돌아 바닥에 깔리게 됩니다. 보에티우스 자신이 바로 그 증거였습니다. 철학의 여신은 그에게 말합니다.

 

네가 잃은 것은 애초에 네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포르투나의 바퀴 위에 잠시 놓여 있던 것일 뿐이다. 참된 복(vera beatitudo)은 그 바퀴 위에 있지 않다. 바퀴가 아무리 돌아도 흔들리지 않는 자리, 바퀴 바깥에 있다.”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오복, 곧 오래 살고, 부유하고, 몸 성하고, 귀하게 되고, 편안히 죽는 것, 이것은 정확히 포르투나의 수레바퀴 위의 자리들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고, 오늘의 건강과 안녕(康寧)이 내일의 병상이 되며, 오늘의 곳간이 내일의 빈손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운수(運數), 운명의 수레바퀴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서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수레바퀴 자체를 걷어치우신다는 선언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누가복음서 6장은 예수님의 평지 설교입니다. 마태복음서의 산상수훈이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하여 다소 영적인 표현을 쓰는 것과 달리, 누가복음서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직설적입니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오복, 즉 오래 살고, 부유하고, 몸 성하고, 덕을 즐기고, 편안히 죽는 것을 정확히 뒤집는 선언입니다. 세상은 부유함과 배부름과 웃음과 칭찬을 복이라 부르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 자리에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이 결핍이요 저주라고 여기는 가난과 주림과 눈물의 자리에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팔복이라는 시에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이나 반복하고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는 말로 시를 맺기도 했지요.

  시편이 우리에게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 자세를 말해 주었다면, 누가복음서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란 실제로 누구의 편에, 어느 자리에 서는가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의인의 길, 지난주 우리가 걸었던 길]

 

  지난주 서른 명이 넘는 우리 교우들이 완주 들녘교회로 농활을 다녀왔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33도 무더위 속에서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교우들 중에는 생전 처음으로 논에 들어가 보신 분도 계셨습니다. 저도 20년만에 피사리를 했는데, 우렁농법이 잘 되어 피가 별로 없었음에도 정말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피사리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곧바로 이어서 뙤약볕 콩밭에서 김을 맸습니다. 농삿일을 하다보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여실하게 느낍니다. 해마다 태양볕의 따가운 강도가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농사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교우들은 연신 땀을 흘리며 정말로 고생을 사서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교우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행복, 보람으로 가득 찼고, 이세우 목사님이 따로 시키지 않은 일도 서슴지 않고 나서서 하기도 했습니다.

  35년 넘게 농촌교회를 지켜온 이세우 목사님과 안성숙 사모님에 대한 존경심도 생기고, 들녘교회와 함께 일군 도농선교협력의 지난 세월에 대한 자부심도 생깁니다. 저는 이런 것이 바로 하늘의 복이지 않나, 우리가 함께 이렇게 걸어온 길이 의인의 길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은 피하는 자리, 몸이 고단하고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는 그 자리, 애써도 별 유익이 없다는 그 자리, 무던히 땀만 흘려야 하는 그 자리에 오히려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복을 누리려면 말씀 자체이신 예수를 따라 살라]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그런 자리에 설 힘이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 자신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그 길을 걸어왔던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에베소서의 말씀은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창조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높고 크신 뜻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번 들녘 농활에는 청년들과 새교우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향린교회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서로 모를 사람들입니다. 어디선가 제각기 각자의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으시고, 우리를 농촌 한복판에, 고난의 현장에, 무지를 깨우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자리에, 외로운 이들, 슬피 울고 있는 이들 곁에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잠시 뒤에 새교우 가입식을 통해 우리는 또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결국 그분이 서신 자리, 그분이 계셨던 자리에 우리도 있는 것이고, 그분의 친구였던 사람들을 친구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깊이 알아야 하고, 그분을 닮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예수님이 진정 나에게 누구이신지, 예수님이 왜 나의 구주가 되시는지, 어떤 면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복음서와 제2성서, 또 제2성서를 낳게 한 제1성서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배워야 합니다. 또 그렇게 배워서 내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정말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향린교우 여러분! 우리 솔직하게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섭시다. 지금 우리는 하늘의 복을 누리길 원할까요? 아니면 땅의 복에 목마른 것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함께 나누며 사는 것에서 기쁨을 찾습니까? 아니면 자기 맘대로 제 뜻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까? 우리 향린교회의 미래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진실함이 하나님을 향하고, 그것이 삶에서 드러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행복은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 항복할 때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땅에 항복하지 말고 하늘에 항복하여 하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여러분 손에 일거리가 항상 있기를

여러분의 지갑에 언제나 돈이 좀 남아 있기를

여러분의 창가에 햇살이 늘 비치기를

비가 온 후에는 꼭 무지개가 뜨기를

친구들의 손길이 늘 여러분 가까이에 있기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여러분 마음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May there always be work for your hands to do

May your purse always hold a coin or two

May the sun always shine upon your window pane

May a rainbow be certain to follow each rain

May the hand of a friend always be near to you

May God fill your heart with gladness to chee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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