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0 수요평화거리
“전쟁연습을 단호히 반대합니다”
겔 37:15-17
하나님은 예언자에게 막대기 두 개를 한 손에 쥐게 하십니다. 내부 분열과 외세의 침략으로 완전히 파멸된 요셉의 자손들을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분단된 요셉의 자손들, 곧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나라는, 야훼 하나님의 사상을 저버리고, 맘몬과 권력을 추종했습니다. 생명 정의 평화의 사상을 구현하기보다 돈과 권력을 탐했고 강자를 추종했습니다. 야만과 힘의 논리로 세상을 지배하려 했습니다. 사랑과 나눔이 아니라 반목과 약탈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한 민족 안에 증오와 혐오가 팽배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뿌리에서 난 한 민족이, 한 가족이 서로 적대하며 원수가 되었습니다. 극에 달한 증오는 외세를 끌어들여 민족 멸망을 재촉했습니다. 증오는 혐오가 되었고, 서로 대적하는 적개심으로 말미암아 두 나라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강대국의 제국주의 야망에 먹혀버렸습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분열과 파멸의 역사를 평가하며 야훼 하나님의 사상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훼사상은 평화이고 이스라엘은 야훼를 따르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나라는 서로 반목하다가 외세의 힘에 완전히 파멸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역사적 평가입니다. 에스겔은 이같은 부정적인 평가에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며, 야훼 하나님은 파멸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분이심을 역설합니다. 해골 골짜기 마른뼈 무더기와 같이 황량한 이스라엘에 다시 생명을 공급해주시고 되살아나고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시는 야훼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도록 증언합니다. 이것은 야훼사상의 복원을 주문하는 것입니다. 증오하지 말고, 적대하지 말고, 원수로 삼지 말고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라는 선언입니다. 이러한 선언이 종교적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전수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생명 정의 평화의 사상을 종교적 가르침으로 승화시켜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과제이자 숙명입니다.
증오와 적대, 혐오와 폭력은 남과 북이 서로 파멸하는 길입니다. 외세는 우리가 분열하여 국력이 소모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그들의 제국주의적 목표입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길은 남과 북의 평화입니다. 우리의 종교적 소명이 평화인 것처럼 우리의 주권행사도 평화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대륙침략과 태평양방어, 한반도에서 벌이고 있는 강대국들의 전쟁놀음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그 어떤 외세라도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한반도가 자주적으로 통일된다면 외세의 입지가 줄어들고 그만큼 침략의 야욕을 발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반도 근현대사만을 보더라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땅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세는 바로 평화입니다. 에스겔의 한 손에서 두 막대기가 결합되는 평화! 그와 같은 평화를 한반도에서 이루는 것! 우리 그리스도인의 숙명이 되어야 합니다.
한미연합 전쟁연습을 단호히 반대합니다. 남과 북이 물리적으로 전쟁을 한다면 남북공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1950년 6.25한국전쟁 3년 동안 남과 북은 완전히 피폐해졌습니다. 다시 회복하는 데 수 세기가 걸릴 것이라고 진단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단 며칠만 전쟁해도 한반도는 영원히 회복불구의 땅이 돼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 전쟁을 모의하는 군사훈련을 하다니요? 대북선제공격을 훈련하다니요? 당장 그쳐야 합니다.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을 상회한 것은 꽤 오래전 일입니다. 그런 남한이 군사 최강국 미국과 연합군사훈련을 한다고 하면 북한의 국민들은 얼마나 공포스럽겠습니까? 북한 자국민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북한 정권은 한미군사훈련에 버금가는 실력행사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한미군사훈련이 계속되는 한, 북한은 남한과 미국에 반격이 될 만한 실력행사를 끊임없이 개발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사일 발사, 새로운 무기시험으로 한반도 긴장상태는 또다시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입니다. 공존과 상생의 남북공동선언, 그 값진 결실들이 휴지조각이 되고 말 것입니다.
평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전쟁연습이 아니라 평화연습을 해야합니다. 교류와 만남, 경제협력과 같은, 남과 북은 그런 평화를 연습해가야 합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도 다시 열려서 남북민이 서로 만나면서 한반도 평화를 연습해야 합니다. 남북이 공존 상생할 수 있는 교류협력도 적극적으로 시도하면 평화연습을 해야 합니다. 민간교류, 이를테면 남과 북의 교회가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교류협력사업이 과감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평화연습입니다. 전쟁연습이라니요? 절대로 안 됩니다. 한반도는 평화연습으로 과감하게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한반도 평화연습을 혁명적으로 시작하셨던 문익환 목사님이 다시 생각납니다.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면서 삶으로 평화를 연습하시던 문익환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인도의 간디는, 인생을 일컬어 진리를 향한 실험이라고 했는데, 문 목사님처럼,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평화를 위한 연습장이 되기를 빕니다. 일상의 평화, 한반도 평화,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밑거름을 주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되기를 빕니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 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 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한마음
그래 그 한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 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면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