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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주일예배

도대체 뭘 봤길래 ㅣ 박희규 ㅣ 2026-01-18

by 이민하 posted Jan 21, 2026 Views 14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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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1-18

“ 도대체 뭘 봤길래 

(사 49:1-7, 고전 1:1-9, 요 1:29-42)

 

박희규 목사

 

 

 

요한복음에서는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본 다음에 알아보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요한복음의 전제는 참 빛으로 오신 말씀을 세상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빛을 증언하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셨을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그가 한 말도 “보아라”입니다. 나다나엘도 예수님이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거을 내가 보았다”고 하시니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보는 것이 이리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하나님과 동격임을 알아보길 원하시는  마음을 자주 표현하시고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실 때 누가 예수님을 알아보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그래서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신 기적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중요하고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요한복음에서 오늘 읽은 말씀의 후반부에 보면 세례 요한의 제자 두 사람에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이 예수님께 갑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묻습니다. 선생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라”고 답하시고 세 남자가 예수님이 묵고 계신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더니 그 둘이 갑자기 예수님의 덕후가 되어 다음날 자기 형제 까지 데려와 예수님을 따르게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제자들의 질문에 집중하여 하늘뜻펴기를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뭘 하고 뭘 봤길래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내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인지요? 도대체 뭘 봐야 내 인생을 통째로 한 인간에게 쏟기로 하는 결정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이 장면은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다른 제자들의 모습과 겹쳐서 읽혀 집니다. 마태복음 8장과 누가 복음 9장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이 하시는 대화가 나옵니다. 마태복음에서 율법학자 한 사람이 선생님,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대답하십니다. 머리 둘 곳이 없으셨던 상황은 요한복음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현재 세례 요한이 있던 요단강가에 와 계셨던 상황이고, 요단강의 동쪽에 있는 베다니라는 동네에 잠시 머무르고 계셨으니,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이 계속 유랑하고 계셨다는 말씀이었다면 그 상황이나 이 상황이나 마찬가지겠지요. 여우굴만도 못하고 새의 보금자리만도 못하다는 예수님의 머리 둘 곳에 와 본 요한의 두 제자는 무언가를 보고 경험하고 알아보아 세례 요한 대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정을 합니다. 

도대체 뭘 봤길래? 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제 나름의 답을 해보기 위해 여러분을 15년전에 고민했던 제 사역의 현장으로 잠시 초대합니다. 

2009년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National Council of Korean Presbyterian Church, PCUSA)에서 한인교회에 여성 장로와 목사가 상대적으로 너무 수가 적다는 관찰이 나왔고, 이에 대해 미장로교한인여선교회(National Korean Presbyterian Women) 총회는 10년간 여성리더십을 형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합의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미장로교여선교회 (Presbyterian Women)에서 리더십 계발 분야에서 사역을 하고 계셨던 이은주 목사님께서 저보고 영성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셔서 얼른 제가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래서 이은주 목사님과 제가 함께 한인여성평신도 리더십을 위한 교재 계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에 콜롬비아 신학대학의 평신도계속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가 결국 한인여선교회(NKPW) 안에 교육위원회를 형성하여 그 안에서 이 프로그램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미장로교에서는 개교회를 아우르는 노회가 있고 노회를 아우르는 대회, 그리고 그 대회들이 모여서 총회를 이루는데, 저희가 만들어낸 커리큘럼으로 미국 전역의 대회 내에 있는 여선교회 회원들을 모아 리트릿 형태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까지 한 7년간 여선교회 리더십 교육의 현장에서 사역을 했었습니다. 얼마전 감동적인 설교를 해주셨던 이영라 박사님은 제가 귀국하기 직전에 이 프로그램의 강사진을 새로 세우면서 마지막으로 제가 진행한 워크샵에 참여해주신 이 프로그램의 차세대 강사님이시기도 했답니다. 

소개가 좀 길었습니다만, 제가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은 현장은 바로 이 프로그램을 태동했던 순간 이은주 목사님과 제가 머리를 싸매고 프로그램의 방향을 정할 때 했던 고민의 자리입니다. 왜 너무너무 멋진 커리어를 가지고 계시고 사회에서는 좋은 리더십을 가지신 훌륭한 여성들이 한인교회에 많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장로라는 리더십의 자리로 나서질 못하시는 걸까? 여러가지 이유를 분석해 나가다가 이은주 목사님께서 들려 주셨던 이야기가 우리 커리큘럼의 방향을 잡아주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잠시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은주 목사님의 할아버지이신 노재헌 장로님은 한경직 목사님이 담임하셨던 신의주제2장로교회에서 장로로 세우심을 받고 함께 사역을 하다가 남한으로 내려오신 후 다시 한경직 목사님이 서울로 내려오신 후에 동역하자고 부르셔서 함께 영락교회를 세우셨던 두 분 장로님 중 한 분이셨습니다. 교회를 처음 개척하고 나면 사실 교회 안에서 세워진 리더들이 굵직굵직한 역할을 하시게 마련입니다. 아마 영락교회가 전쟁 이후 성장하는 과정에는 장로님의 공헌이 크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손주인 이은주 목사님이 기억하는 모습은 따로 있었습니다. 종로 어느 메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셨던 노재헌 장로님은 주중에 정오가 되면 파고다 공원에 가셔서 전도를 하셨다고 해요. 원래 한학자이셨기 때문에 동서의 고전들을 넘나 들면서 만나는 분들과 깊이 토론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시면서 지내셨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인기 좋은 선생님이셨는데, 매주 그 주에 가르치시는 말씀의 한 장면을 도장으로 새겨 오셔서 학생들에게 그림을 종이에 찍어 주셨기에 주일학교 학생들이 엄청 좋아했다고 합니다. 노 장로님의 리더십은 학문적인 지식과 식견이 합쳐진 사려 깊은 리더십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이은주 목사님의 할머님이신 정재숙 권사님은 매우 다른 모양의 리더십으로 교회를 섬기셨다고 해요. 전쟁이후 쑥대밭이었던 서울에서 영락교회는 여러 구조 물자가 모이는 곳이었고, 정재숙 권사님은 옷이면 옷, 식품이면 식품을 교인들에게 나눠주는 중심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의료제도가 열악했던 시절 정재숙 권사님은 이웃들 중에 애를 낳으시는 분이 계시면 산파가 되어 아기를 받으시고 병이 나신 분이 계시면 간병을 하시고  돌아가신 분이 계시면 염을 해주시며 교인들을 돌보시는 리더십으로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의사가 되신 따님, 즉 이은주 목사님 어머님이 의사가 되고 나서 권사님께서 애를 받던 모습을 회상해 보니, 기가 막히게 현대 산부인과의 전문성과 닮았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당시 교회에서 전도왕을 뽑아 상을 주면 자주 꼽히셨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정재숙 권사님의 손길을 거쳤던 분들이 결국 교회에 나오시게 되는 경우가 많아 딱히 전도를 하지 않았어도 슬금슬금 교회에 찾아 오셨던 것 같아요. 

이 두 분 중에 누가 영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으신가요? 여성 장로가 나오지 않는 미장로교의 이민교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양의 리더십을 지향해야 했을까요? 영락교회는 노재헌 장로님이 돌아가신 이후 그분의 리더십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했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정재숙 권사님이 노 장로님의 감사패를 대신 받아 오십니다. 그러나 정작 정재숙 권사님의 리더십은 리더십으로 따로 인정을 받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이은주 목사님이 두 분을 회상하시면서 관찰하신 점은 남성과 여성의 리더십이 발현되던 모습과 그 리더십이 인지되는 패턴이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남성은 글을 대하고 가르치고 토론을 하는 장소에서 여성은 몸과 몸이 만나는 곳에서 몸을 사용하여 하는 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남성이 하고 있는 사역은 영적 리더십으로 여겨지고 여성이 하고 있는 사역은 육적이고 보조적인 일로 여겨지고 있지 않나 하는 관찰이었습니다. 실제 여성 사역자들은 어린이부와 청소년부를 맡아 양육에 집중하거나 심방 등의 구체적인 돌봄에 집중하게 하고 남성 사역자들이 설교와 성경 공부와 리더십 양성에 집중하는 현상 사이에 있는 벽은 현장에서 사역을 했던 저와 같은 여성사역자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구분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애를 낳고 키우고 먹이고 가르치는 일이 여성의 일이며 이는 영성의 문제이기 보다는 육의 영역으로 보는 영과 육을 이분화하는 사고가 한인 여성들의 사고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놓고 저희 둘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분법을 깨는 것이 우리가 계발해낸 커리큘럼의 중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깨야 할까요? 이런 이분법을 깨는 지혜를 찾는 저의 여정 중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해드리면 여러분이 저를 정말 밥맛 떨어지는 인간으로 보실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참 큰 깨달음의 순간이었길래 제 체면을 잠시 내려 놓고 말씀을 드려보려고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박사 과정 코스워크를 하는 중에 일어난 일인데요. 제 지도교수님이 가르치시던 박사 세미나에 한국 학생이 유난히 많았던 해가 있었습니다. 박사 세미나이니 토론을 많이 해야 하는 수업인데, 백인 학생 한 명, 흑인 학생 한 명, 그리고 나머지 예닐곱명이 모두 한국인인 상황에서 저는 말이 없을 한국 학생들을 대신해 열심히 토론에 참여해서 교수님의 수업이 어색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참 얄밉게 교만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토론할 주제들을 찾아가서 정말 진지하게 토론에 참여하곤 했는데, 제 지도교수님은 저와 아주 다른 생각을 하고 계셨더군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분이 제 건너편에 앉아 있는 미진이 언니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이름은 가명을 사용합니다. 미진이 언니는 영어권에서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로 말하는 것이 아직 서툴었습니다. “미진, what do you think about this?” 그러나 아시다시피 한국 학생들은 교수님께서 질문하시면 어떻게든 대답을 합니다. 언니가 한 대답은 제가 듣기에 시원치 않았습니다. 발음도 서툴고 문장구조도 맞지 않고…저는 서둘러 언니가 한 말을 못 알아 들은 말로 간주하고 제 머리 속에서 치워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교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순위를 메깁니다. 영어 잘하는 순으로. 본토인들을 맨 위에 놓고 나를 그 다음에 놓고 둘러 앉아 있는 한국인 유학생들의 영어 실력에 따라 순위를 메기고 언니의 순위는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1, 2, 3, 4, ….제가 이런 비위 상할 짓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 교수님은 계속 질문을 이어 나가십니다. “미진,  are you saying, this and this?” 그 말을 듣고 미진이 언니가 대답을 합니다. “No, I’m trying to say this and this…” “I see, you are saying this and this….” “Yes, but I also mean this and this….” 이런 식으로 질문이 대여섯번 오갑니다. 그러더니, 교수님이 마침내, “Ah, you are saying….” 하고 정리를 해주시니 미진 언니 얼굴이 빛납니다. “Yes, that’s what I am saying.” 그 때 교수님이 정리해주신 언니의 생각은 정말 깊은 통찰이 담긴 주옥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언어화 된 순간, 그 생각의 아름다움이, 그 생각의 깊이가, 심지어는 그 생각의 성스러움이 한 알 한 알 진주알처럼 꿰어져 제 앞에 멋진 작품으로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저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미진 언니는 늘 저를 챙겨주고 아껴주던 동료였는데, 영어로 순위를 메기던 그 못생긴 순간에 저는 언니가 통찰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마저 지워 버렸던 것이 쥐구멍을 찾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하셨던 교수님을 바라봅니다. 박사 과정에서 얻어 갈 것은 저거다. 교수님의 반만 따라가면 내 박사과정은 성공이다. 

그리고 나중에 여기서 일어난 일의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성스러운 호기심. 

성스러운 호기심은 내 앞에 있는 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을 갖고 그 하나님이 어떻게 움직이고 계실까 궁금해 하는 호기심입니다. 미진 언니 안에 좋은 뭔 가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성스러운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셨던 교수님의 질문들은 결국 주옥같은 생각을 만났잖아요? 그리고 그것을 만났을 때 그것이 성스러운 것임을 알아보는 거죠. 그거였어 하고 말이지요. 

이 성스러운 호기심은 결국 제가 정의하는 목회상담의 중심 패러다임이 되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자원이 없어 보이는 너무도 취약한 분들의 삶 속에서, 혹은 망가질 데로 망가진 삶을 살아온 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성스러운 호기심은 놀라운 만남들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미국에서 목회상담사역을 하던 때 제 내담자들은 살인, 그 밖의 여러 범죄, 중독, 마약거래, 노숙 등으로 그 사회의 바닥에서 살고 계신 분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지식과 통찰력, 성격과 정서적 혹은 정치적 성향 등과 상관없이 성스러운 호기심을 유지하며 탐색하는 대화 속에서 어느 순간 성스러움을 발견하는 순간이 옵니다. 내담자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며 인간 안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형상은 내 앞에 있는 이의 삶의 여정, 성격, 인지력, 병력유무, 성향과 상관없이 어느 순간 나타나 제 무릎을 꿇립니다.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만나면 그 자리는 예배가 됩니다.  

이 성스러운 호기심을 통해 영과 육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앞에 살과 뼈와 피로 구성되어 서있는 사람 안에는 그 사람에 대해 판단을 하는 나의 여러 기준과 상관없이 성스러운 하나님의 임재가 어디엔가 있다는 깨달음과 그 임재를 알아보게 되는 경험은 영과 육의 구분을 넘어서게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제가 만들어낸 영성리더십 교육 커리큘럼은 이런 알아봄의 영성을 여러 컨텍스트에서 연습하며 다져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되었지요. 

요한복음이 끝없이 이야기하는 보았느냐, 알아 보았느냐고 하는 질문은 이러한 알아봄의 영성을 지향합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았는가? 그것이 영성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도대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묵고 계신 곳에서 무얼 보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건 사실 약간의 곁다리이긴 합니다만, 전 그들이 남성이라는 것도 살짝 재미있습니다. 남자 분들 두 명이 우루루 예수님 묵고 계신 곳으로 가서 뭔가를 보고 왔다는 것이 말이지요. 여러분은 남의 집에 가면 뭘 보시나요? 저는 남의 집에 가면 많은게 보이던데, 같이 간 우리 남편은 그랬었나며 별로 보고 온 것이 없을 때가 많더라고요. 이런 것도 있지 않나요? 코 앞에 물건을 두고 “하니 그거 못 봤어요?” 라고 묻는 남편을 보며 혹시 남자들의 눈에는 뭐가 좀 덜 보이나 하는 생각도 해보거든요. 이런 저의 편견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이 둘 다 남자 분들이어서 그들이 예수님이 묵고 있는 곳에 가서 뭘 보고 왔는지는 정말 궁금합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정말 예수님이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성스러운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좇아 갔고, 성스러운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님과 함께 지내다 와서는 뭔가를 알아보았습니다. 성스러움을 만났습니다. 요한복음을 계속 읽어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고 이해하는 과정은 좀 더 험난했습니다만, 무언가를 알아보고 그 무언가의 무게와 특별함을 체감했기에 그들이 예수님과 동행을 할 여정에 대해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제자도는 그렇게 시작하고 그렇게 진행됩니다. 영적인 리더십도 그렇게 시작하고 그렇게 진행됩니다. 

우리 교회는 여성의 리더십이 한국 교회안에서는 모범적으로 두드러지는 교회입니다. 사실, 15년 전 우리가 미국 한인 교회 안에서 형성하고 싶었던 모습들이 우리 교회에서는 여기저기 보이기에 가슴 벅차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르치고, 설교하는 일에서는 알게 모르게 제가 고민했던 이분법적인 사고가 작동하고 있지 않나 의심을 해봅니다. 저번에 제가 여기 섰을 때도 말씀드렸지만, 여전히 저는 평신도 설교를 신학교육 받지 않은 평신도 여신도께서 해 주실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녀의 역할을 가르지 말고, 실력의 순위를 메기지 말고, 그냥 성스러운 호기심을 가지고 주님의 임재를 찾기 시작하면 그것이 제자도입니다. 그것이 리더십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것이 영성의 기초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 볼만한 길이지 않습니까? 함께 가봅시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고린도전서 1장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보내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또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우리가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튼튼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깨를 피고 우리 주님 제자의 길을 함께 걸어 나갑시다. 

성스러운 호기심을 가지고 형제자매 가운데 계신 주님의 임재를 알아봅시다. 

 

다함께 축복기도를 드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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