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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주일예배

삶과 숨결이 녹아있는 ㅣ 김지목 ㅣ 2025-11-16

by 김지목 posted Nov 16, 2025 Views 17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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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1-16

하늘뜻펴기 창조절11 20251116

삶과 숨결이 녹아있는

22:19-28, 12:9-21, 15:32-39

 

올해(2025) 국악선교회 예향 30주년을 맞이하여, 저는 부족하지만 올 한 해 동안 이를 기념하면서 하늘뜻을 펴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다섯 차례 하늘뜻펴기를 준비하면서 매번 마음에 둔 설교의 기조는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향린교인 생활실천 다짐의 세 번째 항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숨결이 녹아있는 우리 가락과 정서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더욱 뜻깊은 예배가 된다고 믿으며, 우리 가락이나 우리 악기를 배우기 위해 힘쓴다.”

 

우리 향린은 우리의 삶과 숨결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뜻깊은 예배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생각 없이 교조적으로 반복하는 형식적인 예배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숨결이 우리네 가락과 정서에 녹아있음을 전제로, 우리에게 전래된 우리 음악, 우리 문화의 정신과 혼, 우리의 얼을 예배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 의지가 향린의 예배신학이고 국악예배는 그 실천입니다.

 

그리스도교 예배는 하나님과 친교하는 코이노니아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예배에서 사용하는 음악은 기도를 돕는 기제입니다. 침묵과 묵상기도는 정적으로 예배자의 마음을 비움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한편, 노래와 음악으로 이루어진 찬양은 동적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찬양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중요한 방편이 되는 것이므로 예배에서 음악은 신중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동북아시아에서도 구별되는, 우리 한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민족적 정서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민족의 혼이라 하고, 우리를 우리 되게 하는 근원적인 생명력으로서 얼이라 말합니다. 오랜 우리 역사의 물결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얼은 어떤 것일까요? 함석헌 선생님은 우리 역사의 등뼈로서 우리의 얼을 씨ᄋᆞᆯ정신으로 요약했습니다. 작고 낮은 이들 곧 씨ᄋᆞᆯ 민중들이 역사 속에서 보여준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말합니다. 일제강점기와 6.25동란, 그리고 독재시대에 씨ᄋᆞᆯ 민중에게 나타난 도덕적 양심과 영적인 각성, 그리고 희생을 동반한 대의적이고 결연한 실천을 일컬어 씨ᄋᆞᆯ정신이라고 정의하였는데, 저는 이것이 우리의 얼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얼이 오늘날에도 우리 생명력의 근원이 되어서 소위 말하는 K-컬처, K-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얼은 문화적으로 어떤 그릇에 담겨 전래되었을까요? 다양한 접근과 분석이 있을 것입니다만 저는 이 시간 풍물굿”(굿문화)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네 농경문화의 소산인 풍물굿은 풍물이라는 악기를 치면서 행했던 마을공동체의 축제 문화입니다. 풍물굿은, 마을공동체의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였고, 마을 구성원이 서로 화합하는 유희였으며, 마을에 닥친 재난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 행했던 공동체문화였습니다. 중국의 오랜 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 한국의 고대 국가들의 제천의례에 대해 묘사한 것은, 풍물굿의 오랜 역사성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한편 풍물굿에 대해 말씀드릴 때 간혹 굿이라는 말 때문에 불편해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무당굿의 굿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국어사전에서도 굿이란 무당굿을 뜻하는 고유명사로서 설명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굿이라는 우리말은 보통명사로서 많은 용례가 있습니다. 굿이란, “하늘과 땅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집단적인 춤과 의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관계의 회복에 방점이 있다는 데에 주목하게 됩니다.

일찍이 민중신학자들은 굿의 의미를 잘 차용했습니다. 안병무 선생님은, “예수의 복음은 억눌린 민중의 을 푸는 굿과 닮았다고 하였고, 서남동 선생님은, “굿은 인간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불러내는 몸짓이라고 설명했고, 문익환 목사님은, “굿은 슬픔의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부활의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관계의 회복을 지향하는 집단적 의례라는, 이 굿의 의미를 잘 살려서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굿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禮拜)라는 글자에는 유교와 불교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만, 하나님굿이라고 한다면 하나님 아래 평등한 공동체의 신명난 축제가 연상됩니다. 우리의 예배를 구원의 축제로 만들고자 한다면 하나님굿의 이미지를 더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시 풍물굿으로 돌아와서 풍물굿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풍물굿은 제의적인 속성을 지닙니다. 신을 초청하고(청신請神), 신과 함께 놀고(오신娛神), 다시 신을 보내는(송신送神)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과 함께 놀면서 어긋난 것을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제의였습니다. 내 안에 모신 신과 한바탕 춤을 추면서 무아지경의 엑스타시를 경험합니다.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고 신과 함께하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이때 내 안의 신이 밝아진다는 신명(神明)의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신명이 풍물굿의 목표입니다.

 

풍물굿에서 전개되는 연희와 놀이의 특징은 대동(大同)에 있습니다. 크게 하나가 되는 공동체성을 추구합니다. 구성원이 저마다 소외되지 않게, 서로 평등하게, 그리고 좋은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며 굿을 쳤습니다. 해학과 풍자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묘미입니다. 하나의 리듬으로 같은 굴신을 동작하면서 마음을 하나로 하고 서로 더욱 깊이 이해하는 잔치판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로 빚어진 대동의 공동체는 마을에 공동작업이 필요할 때마다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했던 품앗이, 울력과 같은 부조문화에 풍물굿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렇게 풍물굿은 공동체를 평화롭게 유지하고 구성원 모두를 회복시켜 공동체에 책임 있는 주체가 되도록 기능하였습니다.

 

풍물굿은 가()()()()라는 문화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노래입니다.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비나리, 한을 풀어내는 노래들이 있고 또 지방마다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노동의 고됨을 달래준 민요가 아주 많습니다. 민요의 지역적 특색을 구분하는 어법을 토리라고 합니다. 경기도와 평안도를 아우르는 경토리, 남도지방의 육자배기토리, 동부지방의 메나리토리로 크게 구분합니다. 사투리처럼 노래에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토리가 있다는 사실은 민요에 민중의 삶과 숨결이 진솔하게 담겨있음을 알게 합니다.

 

(), 춤에 대해서는 현대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춤들과 좀 구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풍물굿에서의 춤은 하늘과 땅을 잇는 몸짓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관계를 회복하는 화해와 평화의 제스처가 춤입니다. 지금의 내 형편이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일지라도 신명을 내기 위해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신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춤을 통해 어둠에 휩싸인 나를 변화시키고 하늘의 신명을 밝히려는 몸짓이었습니다. 춤은 단순한 리듬 안에서 각자 자유롭게 추는 춤입니다. 마당판의 춤으로 민중은 일상에서 해방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은 음악입니다. 우리 음악은 신명과 대동을 지향하는 것이고 또 풍류의 음악입니다. 성량이 풍성하고 힘찬 리듬의 풍물소리는 일상의 고됨으로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풀어줍니다. 가야금의 뜯는 소리, 해금의 긁는 소리에 묵은 한이 풀어집니다. 이따금씩 비일상의 세계를 경험케 하는 죽관악기의 공명 소리는 자연을 벗 삼아 노니는 풍류객이 되게 합니다.

 

(). 신명과 해원, 평등과 대동, 안녕과 평화, 관계와 본래성의 회복 등 풍물굿은 일관되면서 유기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풍물굿의 이러한 서사는 민중의 삶을 기반으로 엮어진 것들입니다. 해원상생 하지 않고는, 평등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민중의 삶의 이야기가 풍물굿에 녹아있습니다.

 

이처럼 풍물굿의 가무악희에 민중의 삶과 숨결이 녹아있습니다. 풍물굿은 우리 선조의 삶과 숨결을 면면히 전승한 우리의 얼이며, 풍물굿(굿문화) 안에 씨ᄋᆞᆯ의 주인의식과 책임의식과 같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국악예배에서 풍물굿의 가무악희가 보다 더 잘 나타나고 보다 더 의미있게 경험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음악과 고유한 정서에 대해서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 예배에서 보다 깊이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예향 30주년을 맞는 우리의, 국악예배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오늘 시편의 본문 26, “가난한 사람들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유쾌하길 빕니다!’ 하면서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이 축복과 기원은 지금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차별당하고 굶주리는 상황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은 풍물굿에 참여한 우리네 민중들의 삶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풍물굿을 통해 염원하고자 하는 우리네 소망과도 상통합니다.

 

우리의 삶과 숨결이 녹아있는 우리 가락과 정서로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국악예배는, 누구나 차별당함 없이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을 소망하는 예배여야 합니다. 우리 예배의 음악은, 가난한 사람들이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는 세상을 노래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차별없는 세상,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연주하는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의 국악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서 15장의 본문은 사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설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4장에서 이미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군중, 가난한 오클로스에게 하루의 일용한 양식은 참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시대에 굶주린 이들이 많았고, 그만큼 로마와 산헤드린의 세금 착취가 극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4장과 15장에서 예수님이 각각 오천 명,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설화가 두 차례나 실린 것은, 당시 가난한 이들에게 절박했던 것을 예수께서 충족시켜 주셨으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났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만 14장에서 오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였고, 15장에서는 사천 명을 먹이셨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오천 명과 열두 광주리는 각각 모세오경과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합니다. 14장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이스라엘 유대민족이 대상이었고, 15장에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이방인이 대상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마태공동체의 신앙고백이 두 개의 급식 기적 설화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설화를 통해 당시 오클로스 민중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의 오늘 본문에서는, 로마의 교회에 전하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우리 신앙인이 지녀야 할 올바른 성품에 관한 것이고, 우리 신앙공동체가 보여주어야 할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서와 로마서의 본문에서 우리는 오클로스 민중의 삶과 신앙인의 숨결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과 숨결이 녹아있는 국악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이, 우리는 국악으로 성서 속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과 숨결을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또한 예향 30주년을 맞으면서 기억해야 할 우리의 책임감입니다.

 

우리의 삶과 숨결이 녹아있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민중의 삶과 숨결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여러분의 삶과 숨결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살피시는 이 시대의 민중들과 여러분의 삶과 숨결을 나누십시오. 그렇게 우리 향린의 가무악희를 세상에 펼쳐내기를 다짐하면서, 서로를 위한 축복의 기도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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