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로 살아가기”
(출 16:11-15, 고전 15:48-49, 마 6:9-13)
이동훈 전도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늘 뜻 펴기에 앞서 우리 서로 옆에 온 친구들, 푸른이들, 교우분들과 서로 환영하며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하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서로 인사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좋습니다. 지난 토요일, 처서를 지나며 이제는 가을로 들어섰습니다. 오늘 하늘 뜻 펴기를 준비하며 지난 교회교육주일 영상을 찾아보았는데 23년 교회교육주일에는 이민하 목사님께서 처서가 지나며 날씨가 확 풀렸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은, 여전히 뜨거운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망가지는 기후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렇게 뜨거운 날씨에도 교육부는 지난 7월 20일부터 8월 3일 동안 유아유치부부터 청소년부까지 한 주 한 주 여름 들살이로 시간을 보냈고 무사히 마쳤습니다. 혹시 이번 들살이의 제목을 아시는 교우분이 계실까요??
제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기억하고 계시다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교육부 친구들은 기억을 할까요?? 바로 “야! 너도 영어할 수 있어!” 야나두! 광고를 패러디한 “아! 너도 멘날 기도할 수 있어!” 아멘! 이었습니다. 제목은 “아멘”이었지만 그 안에 담겼던 내용은 “기도”였는데요. “기도”를 나누기 위해 선정된 들살이의 주제 본문은 함께 복음서 읽기로 나누었던 마태복음서 6장 9-13절, 바로 주기도문이었습니다. 먼저 영상으로 각 부서의 여름들살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어 보이죠? 이번 들살이는 모두가 외부로 나가지 않고 교회에서 진행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많은 교우님들께서 함께해 주셔서 더 풍성한 들살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 날씨에 빠질 수 없는 물놀이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기도 했습니다. 들살이를 준비하며 저에게 제일 고민이었던 지점은 바로 교육부 친구들이 주기도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또 주기도문을 자기들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을까? 였습니다. 하지만 제 고민이 무색하게도 유아유치부, 어린이부, 청소년부 친구들은 아주 멋있게 주기도문을 자기의 언어로 바꿔나갔습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내용은 유아유치부에서 만들어낸 주기도문 노래 가사와 그림입니다. 너무 대단하지 않나요? 글과 말에 서투른 유아유치부 친구들은 주기도문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저 하트로 가득 차 있는 그림은 아이들이 주기도문을 사랑이 가득한 기도로 이해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주기도문 노래 가사 중 저에게 제일 좋았던 부분은 “밥과 간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들과 나눠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입니다. 작은 고사리 손들이 자신의 음식들을 나누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어린이부와 청소년부도 역시 주기도문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어린이부는 예배와 임유진 전도사님의 하늘 뜻 펴기를 바탕으로 주기도문에 담긴 내용을 살폈고, 청소년부는 주기도문의 배경과 각각 구절을 뜯어보며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후 각각 자기의 언어로 기도문을 적어보았는데요.

지금 보여드리는 두 기도문은 어린이와 푸른이가 쓴 기도문입니다. 잘 보이지 않으실 것 같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먼저 어린이가 작성한 기도문입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오며, 평화롭고 사랑 가득한 하나님 나라가 펼쳐지게 하시고, 서로 존중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오늘 우리에게 건강한 음식을 주시고, 행복 기쁨 재미 희망 하나님처럼 친구들과 이웃들과 함께해요.”
이어서 청소년의 기도문도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그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시며, 우리 곁에 함께 동행하시며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매일매일 기쁘게 하루를 보내고 걱정 근심 없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부디 기쁘게 이 기도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외에도 기상천외한 기도문도 있었는데요. 어떤 푸른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시작하기보다는 지하에 계신 하나님으로 기도문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건강한 음식을 달라고 하는 어린이의 기도, 걱정 근심 없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푸른이의 기도에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세상을 건네주어야 할까?하는 큰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묵상했던 주기도문은 어렸을적 저에겐 그저 외우면 칭찬스티커를 받을 수 있는 짧은 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교육부 친구들의 기도문을 보니 사실은 주기도문이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글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뜻이 가득한 기도문에 찾아볼 수 없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너”와 “나”입니다. 주기도문과 아이들의 기도문에는 “너”와 “나”보다는 “우리”를 위한 기도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누었던 제 1성서 출애굽기의 말씀에도 이와 같은 맥락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며 하루 먹을 양을 주십니다. 이 만나와 메추라기에는 중요한 규칙이 있는데요. 다들 아시다시피. “하루치만 거두고, 각 가정은 자기 가족의 수 대로만 거두어야 한다.”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고 더 많이 거두어서 보관하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은 썩어 없어지고 맙니다. 출애굽기의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은 이웃의 것을 빼앗아 나의 것을 더 쌓아놓는 것보다는 주어진 것 안에서 우리로 살아가는 공동체적 나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세요”라는 기도는 사람들에게 욕심내지 말아라! 라고 말합니다. 왜 욕심부리지 않는 것을 이토록 강조했을까요? 바로 우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욕심이 제일 위험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로 살아가기를 포기하고 자기 곳간만 가득 채운다면 내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문을 걸어 잠구고 결국에는 공동체와는 거리가 먼 혼자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실 이미 오늘날의 생활양식만 보더라도 함께보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줍니다. 대문을 걸어 잠구지 않고 이웃집 수저 개수도 알았다던 시절에서 겨우 “복도”라는 좁은 공간에서만 이웃을 만났던 제가 어렸을적 살았던 복도형 아파트, 이제는 그 조차 사라지고 이웃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교육부 친구들의 공간을 보면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닌 우리로 살아가기 위해 욕심부리지 않는 것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감을 잡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들살이를 통해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흔쾌히 내주고 신나게 노는 푸른이의 모습에서, 투덜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친구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유아유치부의 모습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 공동체와 함께한다는 것을 너무나 크고 어렵게 느끼고 있지 않았나 반성해봅니다. 차근차근 내 친구를 위해,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내주고, 내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마음이라도 함께하는 것이, 주기도문과 아이들의 기도문에서 드러나는 “우리로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와 “너”보다는 우리로 살아가는 향린이 되기를 소망하며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이제 “나”와 “너”로 살아가지 않으렵니다.
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의 뜻으로 살겠습니다.
너무나 어렵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이제 “우리”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님, 지금 여기 함께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