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23.
나이를 먹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이만 먹어서는 인간은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말이 나이가 들어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변한다. 자꾸자꾸 변한다. 체형도 바뀌고 체모도 빠지고 배도 나오고 이도 빠진다. 기억력이 나빠지고 눈이 침침해지면서 성욕도 식욕도 점점 약해진다. 그것은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이가 드는 것일 뿐이다. 노화와 성숙은 전혀 다른 것이다. 노화를 성숙으로 바꾸려면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노화와 성숙을 단번에 가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 자신이 거쳐 온 모든 시간을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해 두면 된다.
나에게도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있고,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이 있고, 중학생이었던 시절이 있고……(이하 생략). 58년에 걸쳐 58년 치의 나이를 경험해 온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세월 속에는 랜드마크를 찍은 여러 경험이 들어 있다. 그 경험들은 그때의 신체 감각 또는 뇌를 둘러싸고 있던 망상이나 초조감, 불안감으로 기억된다.
나는 지금도 어린이집에 다니던 다섯 살 때 첫 반항심이 싹튼 순간을, 열여섯 살에 교실 창문으로 뛰쳐나와 운동장을 내달리다 농구대를 향해 점프할 때 활시위처럼 쭉 당겨지던 근육의 욱신거림을, 마흔한 살 여름날에 지중해 바닷가를 걷는데 나를 돌아보며 손 흔드는 아기의 웃는 얼굴과 솜털이 금빛으로 빛나던 모습을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그 순간의 ‘생생함’을 간직한 채 내 안에 냉동 보존되어 있기에 나는 그것들을 수시로 꺼내 ‘해동’하고 ‘재생’할 수 있다.
나이를 먹어 가장 기쁜 점은, 이 저장품이 해마다 늘면서 차츰 ‘기억 아카이브’의 구색이 갖춰져 간다는 사실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내 안에 ‘여러 개의 나’가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나는 ‘6세의 나’ 또는 ‘16세의 나’와 가끔 대화를 나눈다. 아니, ‘대화’보다는, ‘6세의 나’나 ‘16세의 나’가 불시에 58세의 남자의 피부를 뚫고 나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지금도 격렬한 분노에 사로잡히면 나는 소년 시절처럼 사나워질 때가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모습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철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내가 있고, 그걸 어이없다는 듯이 보고 있는 내가 있고, 두 ‘나’를 화해시키려는 내가 있다. 그들은 나이 차이를 동반한 각기 다른 ‘나’다.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그들이 내 안에 혼재하고 공존한다. 일종의 다중인격이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목표는 천하무적: 심신단련으로 깨우친 인생의 기본기 수업>(도서출판 유유, 2025. 6. 4. 초판1쇄 발행),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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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나이만 먹는 것인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가?
우치다 다쓰루 선생 말대로 인생의 길을 차곡차곡 기억해 내면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살펴보면 내가 성숙했는지 퇴화했는지를 알 것이다.
그러나 굳이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수많은 인생의 여러 기억들과 추억들이 좋다.
가끔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식의 수다가 지금의 나를 여러모로 살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되겠지.
그 추억들이 인생을 풍요하게 만들 것이다.
- 향린 목회 56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