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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서남동 선생님의 성령론적 입장

by phobbi posted Apr 12, 2026 Views 12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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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4-12

2026. 04. 12.

 

* 선생님의 신학의 두 번째 전제는 무엇인가요?

 

- 좀 당돌한 이야기겠습니다만, 나는 두 번째 전제를 성령론적 입장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종래의 기독론적 입장에 대한 의식적인 대립입니다. 사실 이 입장은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래서 지금 싹트고 있는 생각이라 할 수 있는데, 기독론적이라는 것은 타력적인 것이고, 성령론적이라는 것은 자력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대신 십자가에 죽었다고 할 때 그는 어디까지나 입니다. 남이 딴 장소에서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을 받았다는 것인데, 이것을 무시한 것은 아니나, 이것이 마치 기독교의 본질인 양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고 자력적이라면 자주 휴머니즘과 결부시키는데 이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 사건 곧 구원의 사건은 나의 선택, 나의 결단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단순히 2천 년 전에 일어난 그 사건에 내가 동의하고 그것이 그대로 진리라고 고백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한 나의 결단은 성령의 역사(役事)에 의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니까 하느님의 결단을 내가 자발적인 나의 결단으로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나는 성령론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력종교지요. 요컨대 성령론적이라는 말의 초점은 구원의 사건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성령론적이라는 것은 실존론적이라는 것과 구별됩니다. 다시 말하면 본회퍼의 비종교화를 거친 정치적 해석을 뜻합니다. 실존론적 해석이라면, 성서에서 자기의 실존적 문제를 어떻게 읽느냐에 있지만 그렇지 못하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성령론적 성서해석이란, 2천 년 전에 쓰여진 본문을 지금 해석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것대로 성서해석학이겠으나 내가 선택·결단해야 할 지금의 사건 앞에, 예컨대 내가 어느 독재체제에 항거해야 할 것이냐, 안해야 할 것이냐와 같은 문제를 놓고, 어느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느냐를 결단하려고 할 때 거기에는 하나의 참고서가 요청되는데, 성서의 본문을 이러한 참고서로 받아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서를 지금의 참고서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과거의 사건이 그대로 지금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지금 하느님의 뜻에 맞게 결단하려 할 때, 모세는 어떻게 결단했고, 바울은 어떻게 결단했는가를 참고로 보자는 것입니다. 성령이란 항상 내재적(內在的)이고 지금 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이거든요. 지금의 성령 감동은 부차적이고 바울의 성령 감동은 원초적이라면 하느님은 과거의 하느님이지, 지금의 하느님은 못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금 살아 계신 하느님입니다.

 

서남동 지음/죽재서남동기념사업회 엮음, <민중신학의 탐구>(개정증보판, 도서출판 동연, 2018. 7. 20. 1쇄 발행), 2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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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B. Croce)모든 역사는 현대사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 history)”라고 말했듯, 우리의 신앙도 지금-여기에서의 신앙이다.

 

우리는 과거에 활동하셨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성서라는 텍스트를 삶에 적용하는 것도 의미있겠으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선택과 결단을 위한 참고서가 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지금-여기에서 만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안에 가두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그때-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참고하는 것이다.

 

지금-여기의 복잡한 삶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아니 그것이 먼저이다.

우리는 매 순간을 살기 때문이다.

 

서남동 선생님은 이런 관점들을 성령론적 입장이라고 하시면서

이제 막 싹트고 있는 생각이고 충분히 발전시키지는 못하셨다고 하는데,

나 또한 그동안 예수와 하나님에 대해 주로 관심을 두었기에

아직까지 성령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 향린 목회 52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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