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24.
사람들이 품격을 위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와 존엄을 위해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를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에서는 그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가 실재(진실)를 공유한다. 그 공유하는 실재 위에서 서로가 서로의 연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대등하게 퍼포먼스에 참여한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만 아이가 없는 대학 동기 앞에서 육아가 화제가 되었을 때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친구,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족 앞에서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하는 가족들, 카페 옆자리에서 시끄럽게 소음을 내는 자폐 아동에게 무관심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책으로 눈길을 돌리는 대학생, 이들은 모두 서로의 연기가 품고 있는 의도를 공유한다. 친구가 나를 배려해서 화제를 돌리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기에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저녁 식탁에 마주 앉는다. 자폐 아동의 부모는 소란 속에서도 태연히 책을 읽는 대학생이 무관심한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안다.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상호작용은 실재를 공유하면서 그 존중을 강화한다. ~~ 타인이 나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나를 존중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존중하게 된다. ~~
반면 품격을 위한 퍼포먼스에서는 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실재를 공유할 필요가 없고, 서로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상호작용이 필요하지도 않다. 품격 있는 권력자의 고매한 태도를 연출할 때, 의전을 수행하는 실무자는 그 무대에 굳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 장애인, 노숙인, 빈자들이 권력자의 도덕적 선량함을 빛내는 데 동원되지만, 그때에도 동원된 이들의 반응은 무대에 반영되지 않는다.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목욕을 도와주는 정치인의 얼굴을 드러나지만, 장애인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이 없다면 반응할 수 없다. 얼굴이 없는 존재, 익명화된 존재, 기호화된 존재는 오믈렛과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상대방의 반응에 반응하지 못하며, 반응하더라도 상대는 그 반응을 무시하기 일쑤다. 품격에만 초점을 두는 퍼포먼스는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1인만을 위한 무대가 되기 쉽고, 나머지 사람들은 오로지 그에게 맞춰 움직일 뿐이다. 명품 가방은 당신의 품격을 높일 수 있지만, 더 값비싼 명품이 등장하면 그 최고가 명품의 품격을 위해 복무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 출판사, 2020. 1. 2. 1판 11쇄), 6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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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나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고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하라.”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정초>에서
“목적들의 질서에서 인간은 목적 그 자체다. 다시 말해 인간은 결코 순전히 수단으로만 사용될 수는 없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수단이 되고,
또 남들을 수단으로 삼아 자기 삶을 유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사물화되고,
한낱 생산 수단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방식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굴러가게 마련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지 않는 한 인간의 수단화는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한다 하더라도,
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는 세상에서 과연 인간의 수단화를 피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을 한낱 수단으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
수단이 되는 사회에서도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이 서로를 그 자체로 존엄성을 지닌 자율적 인격체로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요청된다. 이런 노력들이 계속 병행될 때만이 우리 사회가 그래도 살만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44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