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05.
부처님의 본질을 접해 보지 못한 채 하루에 수백 번씩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던 어느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합니다. 그 여인은 부처님의 이름 부르는 일을 10년간 했는데도 아직 분노와 신경질이 가득했습니다. 이웃집 남자가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여인이 염불을 하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며 “아주머니, 문 좀 열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여인은 방해를 받게 되자 화가 났습니다. 목탁을 열심히 치면 이웃집 남자가 그 소리를 듣고 그만 돌아가려니 생각하면서 목탁을 더욱 힘껏 쳤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돌아가지 않고 계속 “아주머니, 아주머니, 내 말 좀 들어 봐요.”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 여인은 목탁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세차게 문을 열고 나가 “내가 염불하는 소리 못 들었어요?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이웃 남자는 싱글거리며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나는 지금 아주머니 이름을 몇 번밖에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주머니가 이처럼 화를 내는데, 아주머니는 부처님의 이름을 10년이나 불렀으니 부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을까 생각 좀 해 보세요!”
그리스도인들도 만약 그들이 예배의식을 기계적으로만 따르고, 기도도 마음은 딴 데 두면서 건성으로만 한다면 이 아주머니와 똑같은 일을 하는 셈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에서는 ‘마음의 기도’를 올리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수행에서 즐거움, 편안함, 느긋함, 쉼, 정신적 공간 같은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백년하청(百年河淸), 즉 백 년 해보아도 살아 계신 부처님, 살아 계신 예수님과 접할 길이 없습니다.
틱낫한 지음/오강남 옮김,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예수>(도서출판 솔바람, 2013. 04. 30.), 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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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한 아주머니의 염불처럼,
많은 그리스도인이 목이 터져라 통성(通聲) 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이다.
삶이 너무나 고단하고, 억울한 일들을 많이 당할 시절에는
통성기도가 꽤 효과가 있었다.
스트레스를 날리고 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래도 하루를 견딜 힘을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도는 기도의 중심에 오로지 내 사정만 있다.
하나님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인다.
이제 우리 한국 개신교도 어른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하나님 붙들고 징징거릴 생각인가?
고요히 멈추어 흐트러진 마음, 울렁이는 마음부터 잔잔하게 하고,
눈을 들어 주님을 보면서, 찬찬히 내 눈의 들보나 빼낼 일이다.
- 향린 목회 27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