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28.
사람들이 나에게 애정을 쏟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설령 그들이 자진해서 기꺼이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내가 사람들에게 그러고 싶은 욕망이 생기도록 만들었다면, 나는 그들을 속이는 셈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어느 누구의 목적도 될 수가 없으며, 또 그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곧 죽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그들의 애정의 대상이 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은근히 거짓을 설득하여, 그것을 기꺼이 믿게 만들고, 또 그 점에 있어서 사람들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 할지라도 나는 거짓을 믿게 만드는 죄를 범하는 셈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람들을 유인하여 나를 사랑하게 만들고 나에게 관심을 쏟도록 만든다면 나는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것으로부터 어떠한 유익이 생긴다 할지라도, 거짓에 동조할 태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나에게 애정을 쏟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해 주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만 하며, 신을 찾거나 또는 신을 기쁘게 하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만 되기 때문이다.
파스칼/김형길 역, <팡세>(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3. 25. 수정판 제1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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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는 서구 형이상학 전통에서 자라난
그리스도교의 위대함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주는 것 같다.
파스칼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애정을 쏟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이 궁극적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에 기대었다가 고통을 당하고 넘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이 아닌 일시적 존재이고, 그래서 궁극적 목적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 스스로도 그러한데, 남에게 기댄다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파스칼은 사람들에게 신을 찾거나 신을 기쁘게 하는 일에 관심을 쏟으라고 조언한다.
파스칼의 조언은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남을 이끈다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에게 의존하는 존재들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특히 종교가 심하고, 어떤 경우는 거의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한편 내가 곧 죽게 될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차원에서라면,
즉 인간의 유한성을 제대로 알고 수용하는 차원에서라면
서로 기대고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살이에서 서로 좋아하고 따르고 기대는 일들이
죄를 범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파스칼의 사유는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유다.
나에게 애정을 쏟지 말라고 경고하기보다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 향린 목회 20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