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뜻나눔

거룩함은 어디에서

by phobbi posted May 17, 2025 Views 308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5-05-17

2025. 05. 17.

 

소위 인문학적 소양이란 치열한 로부터 출발한다. ‘를 묻는다는 것은 비판적 사유와 분석을 필요로 한다. 현대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질문은 해답보다 심오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문학적 사유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간결함과 명쾌함이 아닌 불확실성과 모호성이다. 인문학적 사유는 이전의 익숙한 이해 세계를 뒤흔드는 내면적 불편함을 경험하게 한다. 한국의 대중매체에서 소비되고 있는 인문학의 상품화가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는 점이다.

 

~~

 

한 종교가 그 거룩성의 의미를 창출하게 되는 것은,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묻지 않았던 근원적인 물음들, 만나지 않았던 심층 속의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과 공간을 가질 때이다. 교회·성당·사찰에 단지 육체적 몸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종교적 거룩성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너와 나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등 우리 매일매일의 삶에서 묻지 않는, 못하는 물음들과 만나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존재로의 탄생성(natality)순간 경험하는 것. 이러한 홀로의 시간·공간 속에 자신을 집어넣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일상성 너머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된다.

 

심오한 근원적 물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조우하면서, 거룩성과 일상성·세속성은 대치되는 방식이 아니라 나선형과 같은 방식으로 이 삶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무관심·냉소성·이기성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끄집어내어 구원하게 하는 수수께끼 같은 생명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 거룩성과 일상성의 나선형적 춤. 이러한 삶의 춤이 가능한 공간 역할이 종교의 존재의미라고 나는 본다. 이기적 구원 클럽으로서의 종교는 자본주의화된 상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강남순 지음, <배움에 관하여: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동녘, 2017. 7. 31.), 282, 333.

 

======================================

 

육체의 게으름도 있지만, 정신의 게으름도 있다.

묻지 않는 것이다.

육체의 부지런함이 정신의 게으름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한편 종교는 묻지 않은 물음을 던짐으로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그 새로운 존재의 드러남에 탄성을 지르는 것인데,

그간 한국 개신교는 묻지 않았고, 물음을 억압했기에 타락하고 말았다.

도무지 새로움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을 수 있는 용기와

쉽게 답을 내지 않고 불확실한 모호성 안에서 견딜 수 있는 인내를 지녀야 한다.

 

 

 

 

- 향린 목회 195일차 

 


List of Articles
날짜 제목 조회 수
2026-07-30 엉뚱한 도전의 필요성 new 0
2026-07-28 신비적 관상적 침묵 new 0
2026-07-27 모든 감각을 아우르는 촉감 9
2026-07-26 원죄에 대하여 6
2026-07-25 나를 바라보기 6
2026-07-24 걸림돌인 복음 10
2026-07-23 진리를 향한 모험과 도전 11
2026-07-22 파편의 창 12
2026-07-21 바울이 말한 믿음 9
2026-07-20 미켈란젤로의 눈 6
2026-07-19 공적 기도란 14
2026-07-18 조주세발(趙州洗鉢) 12
2026-07-17 아낭케의 위력 12
2026-07-16 소학(小學)의 가락 14
2026-07-15 어김없이 씨를 뿌리지 8
2026-07-14 사랑인가, 집착인가 16
2026-07-13 자제력 9
2026-07-12 다양한 능력 9
2026-07-11 화해가 복음이다 11
2026-07-10 행복의 비결 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2 Next
/ 3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