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16.
子思子曰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修道之謂敎
산간 벽지에서 자란 나는 유년기에 서당에서 중국고전 <소학(小學)>을 배운 적이 있다. 백발의 노(老) 훈장은 언제나 노래하듯 소리에 억양을 붙여 <소학>을 읽어 주었고, 아이들에게 그것을 수십번씩 되풀이해서 읊으라 했다. 구절에 담긴 뜻의 설명은 들은 것 같질 않으나, 읽는 가락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덕분에 사십 고개를 넘은 지금도 <소학>의 몇몇 구절은 이따금 가락을 붙여서 욀 수가 있다. 최근, 로스앤젤레스라는 뜻밖의 장소에서 나는 함께 그 서당에 다닌 두 죽마고우를 만났다. 그리고 오랜만에 함께 <소학>을 합창했다.
허나 그때, 이상하게도 습득하고 있는 <소학>의 음색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모두가 그 외딴 산골을 떠나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시공간(視空間)을 삶으로써 저마다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소학>을 갖게 된 것이리라.
먼 훗날, 어디선가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되면, 같은 구절을 읊으면서도 각자가 또 다른 <소학>을 보여주게 되는 것일까.
이우환 지음/서인태 옮김, <시간의 여울>(디자인하우스, 1994. 9. 27. 1판 2쇄 펴낸날), 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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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배운 것은 쉽게 잊히지만,
몸에 익은 것은 오래간다.
그리고 몸은 저마다 제 몸이기에 저만의 고유성을 갖는다.
<소학>이야말로 바로 그 몸의 훈련을 위한 책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필요한 교육은
아마도 시간을 들여 몸으로 익히는 교육일 것이다.
오랜만에 시간 내서 소학이나 읊어야겠다.
- 향린 목회 62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