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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기다려주는 마음

by phobbi posted Oct 01, 2026 View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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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10-01

2026. 10. 01.

 

우정은 타자에게 그의 고유한 “광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공간을 제공한다. 우정은 “서로의 잘됨을 기뻐하는 존재가 자신에게로 해방[각자 자신을 찾게]”되도록 이끈다. 인내는 친구인 타자에 대한 주의를 표현한다. [타자의 잘됨을 기뻐하는] 저 근원적인 마음은 “타자가 그의 본질을 발전시켜 자기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마음이다.

 

오늘날 누가 친구를 마음에 품고 사는가? 누가 그의 내면에서 친구의 음성을 듣는가? 헤테로스 아우토스로서의 친구를 상실하면 머지않아 완전한 존재론적 고립에 떨어진다. 이제 우리는 존재를 나누지 않으며, 더 나아가 함께 나누지 않는다. 그런 존재는 함께-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타자에 대한 주의를 상실하고, 친구의 목소리에 대해 귀를 닫는다. 무언가에 귀 기울이는 능력, 경청의 능력이 사라진다. 즉, 우리는 타자에 대한 존재론적인 개방성을 상실한다. 친구인 타자의 음성의 상실은 함께 존재를 위험에 빠뜨린다. 요즘은 누구나 단지 자기의 말소리만 듣는다. 나르시스적인, 자기애적인 듣기는 결코 경청이 아니며, 타자에 대한 주의를 파괴한다. 그것은 우리를 서로 고립시키고 격리한다. 공감의 결핍이나 불안 같은 현대의 병리적 현상은 존재론적 귀먹음, 타자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타자에 대한 존중은 우정에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친구는 다른 나(ein anderes Ich), 나의 연장, 타아(他我)가 아니라, 다른 자기(ein anderes Selbst), 헤테로스 아우토스, 존중받아 마땅한 타자이기 때문이다. 존중은 친밀함과 가까움의 피안에 산다. 존중은 거리를 요구한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우정을 존중에 기초해서 이해한다.

 

“존중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philia politike’, 즉 일종의 ‘정치적 우정’이어서, 가까움과 친밀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존중은 인간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지만, 동시에 그 인간을 세계 공간이 우리 사이에 벌려 놓은 멀찍한 거리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때의 경의는 그 사람의 경탄할 만한 특성이나 탁월한 성취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타자는 그의 타자성에서 존중된다. 무존중은 정치적 문화를 조야하게 만든다. 정치적 우정으로서의 존중은 민주주의의 정수(Essenz)이다.

 

한병철 지음/정창호 옮김, <존중 없는 사회>(간디서원, 2026년 10월 5일 초판발행일), 8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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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不可近, 不可遠),

신중하고 조심하면서 거리를 두는(敬而遠之),

사귐이 깊어져도 존중을 잃지 않는(久而敬之)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한다.

 

상대(相對)는 대상(對象)이 아니다.

내 인식 작용에 의해 파악된 것으로만 상대를 이해해선 안된다.

타자의 타자성이란 언제나 움켜쥔 내 인식작용에서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보이는 것만큼이나 아직 보이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사실,

현실보다 가능성과 잠재성이 더 풍부하다는 것,

언제나 타자의 파악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겸손한 자세로 무엇보다 경청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향린 목회 69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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