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9. 14.
차라투스트라는 또 병에서 치유되고 있는 자가 자신이 만든 환상을 그리운 듯이 바라보고 한밤중에 자기 신의 무덤 주위를 몰래 서성거릴지라도 성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눈물은 나에게는 여전히 병이고 병든 육체일 뿐이다.
허구를 만들어 내면서 신을 동경하는 자들 가운데는 언제나 많은 병자가 있었다. 그들은 인식하는 자와 아울러 덕들 가운데서 가장 젊은 덕인 정직이라 불리는 것을 증오한다.
그들은 항상 암흑시대를 되돌아본다. 그 시대에는 물론 환상과 신앙은 지금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성의 광란은 신적인 것이었고, 의심하는 것은 죄였다.
나는 신과 닮은 이런 자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를 믿어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의심이 죄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그들 자신이 무엇을 가장 많이 믿고 있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진실로 그들은 배후세계와 구원의 핏방울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육체를 가장 많이 믿는다. 그들 자신의 육체야말로 그들에게는 그들의 물자체(物自體)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육체란 병적인 것이고, 그리하여 그들은 살가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따라서 그들은 죽음의 설교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배후세계를 가르친다.
형제들이여! 차라리 건강한 육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이것이야말로 더 정직하고 더 순수한 소리다.
건강한 육체, 완전하고 단정한 육체는 더 정직하고 더 순수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지의 뜻에 대해 말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박찬국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아카넷, 2025. 07. 25.),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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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동경하는 자들 가운데는 언제나 많은 병자가 있었다”는
니체의 말은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이들의 특징은 정직을 증오하고, 배후 세계를 말하며, 자신이 만든 환상에 젖는다.
그런데 니체의 날카로운 관찰처럼 사실 이런 모든 행위는 병든 육체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헛된 신이 아니라 건강한 육체일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죽음의 설교자들의 레파토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오히려 니체가 말한 건강한 육체, 완전하고 단정한 육체,
대지의 뜻을 드러내는 생명력에서 드러나야 할 것이다.
- 향린 목회 68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