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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구하는가 ㅣ 2026-09-06 ㅣ 한문덕

by phobbi posted Sep 06, 2026 Views 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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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9-06

무엇을 구하는가

(삼하 13:11-19, 5:16-26, 10:35-45)

 

한문덕 목사

 

[남신도 주일을 지키면서]

 

   오늘은 우리 향린교회가 남신도 주일로 지킵니다. 우리 향린교회는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되어 있고, 교단 소속 개교회는 노회와 총회라는 더 큰 단위의 기구와의 연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선교사업을 확장합니다. 전통적으로 교단 안에 각각, 여신도회, 남신도회, 청년회 전국연합회가 있고, 이 단체들은 우리 교단의 역사와 한국 개신교의 선교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런 선교 사역을 이어가고자 우리 교단은 매년 여신도주일(13), 청년주일(32), 남신도주일(93)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여신도주일과 청년주일은 함께 지켜왔으나, 남신도주일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청년남신도회, 희년남신도회, 장년남신도회의 친목과 연대뿐만 아니라, 교단 내에서의 역할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앞으로 매년 남신도주일도 지켜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지형이 갈수록 개교회주의로 흐르고 에큐메니칼 연대가 약화되고 있지만, 우리 향린교회는 사회의 다양한 단체들뿐만 아니라 교단 내에서 감당해야 할 선교 사역들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공교회 정신을 따르고자 한다면 노회와 총회를 통해서도 참된 하나님 나라 운동이 펼쳐지도록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서양 사회를 막론하고 옛날에는 남자들의 위세가 등등했습니다. 대대례기(大戴禮記)에 보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가지 조건, 흔히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고 불리는 것이 나옵니다. 결혼한 여자에게 일곱 가지 내칠 수 있는 것이 있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내치고, 아들이 없으면 내치며, 음행을 하면 내치고, 투기를 하면 내치며, 나쁜 질병이 있으면 내치고, 말이 많으면 내치며, 도둑질을 하면 내친다.(婦有七去, 不順父母去, 無子去, 淫去, 妬去, 有惡疾去, 多言去, 竊盜去.)(대대례기(大戴禮記) 본명(本命)〉》)

   송나라 유학자 주자(朱子)소학(小學)을 편찬하면서 이를 인용한 뒤로 칠거지악은 유교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없거나 병이 있다는 이유로, 또 말이 많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아내를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은 현대적 감각으로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조선 시대에 칠거지악을 이유로 이혼당하는 사례는 드물었지만, 이런 조항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전통 사회가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우위의 사회였음을 부정할 수 없게 합니다.

   그런데 한때 인터넷에 유행했던 유머를 보면 요즘 남자들의 신세는 이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제목은 쫓겨나는 남편들입니다. 20대는 반찬투정하면 쫓겨나고, 30대는 아침밥 달라고 하면 쫓겨나고, 40대는 아내가 외출하는데 어디 가냐?”고 물으면 쫓겨나고, 50대는 나도 따라가면 안 되냐?”고 하면 쫓겨나고, 60대는 아내가 그냥 화가 나서 쫓겨나고, 70대는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고 쫓겨난다고 합니다. 80대도 있는데 차마 설교에서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80대는 아침에 눈 떴다고 쫓겨난다.) 힘으로 세상을 호령하던 남성상이, 이제는 우스갯소리 속에서 무너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 우스개 소리 뒤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오늘의 현실이 있습니다.

 

[오늘 한국 남성들이 서 있는 자리]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3.6, 남성은 80.6, 여성은 86.6세입니다. 그런데 올해 국가데이터처 조사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이 실제로 일하고 싶어 하는 목표 근로 연령은 평균 73.6세인데, 정작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평균 연령은 53.0세에 불과합니다. 희망하는 나이보다 무려 20.6년이나 일찍 일터를 떠나는 것입니다. 은퇴가 빨라지면서 부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은 길어지는데, 여기에 잘 적응하지 못해 갈등을 겪는 부부들이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체 이혼 건수는 88,130건으로 6년 연속 줄어드는 추세인데, 유독 60세 이상 부부의 이혼만은 오히려 늘어나 13,743건으로 1990년 통계 작성 이래 최다치를 기록했습니다. 전체 이혼에서 황혼이혼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213.4%에서 지난해 15.6%로 역대 최대치까지 커졌습니다.

   상당수의 남자는 사회생활 경력이 길어질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져 회사와 집밖에 모르는 처지가 됩니다. 은퇴하면 그동안 누렸던 사회적 지위도 경제활동도 사라지기에 위축되고 우울해지는 은퇴증후군이 찾아오고, 이는 잔소리나 신경질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시집살이라는 말과 더불어 남편살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삼시 세끼를 집에서 챙겨 먹는 은퇴한 남편을 삼식이라 부르는데, 일본도 이런 남자들을 지칭하는 말이 있습니다. 1. 와시모 이쿠족(わしも いく 나도 따라갈 테야족) 2. 누레오치바족(젖은 낙엽족) 3. 소다이고미족(そだいごみ 대형 폐기물족)입니다. 특히 소다이고미족은 돈을 지불해야 가져가는 폐기물처럼, 돈을 줘서라도 처분하고 싶은 존재라는 뜻이니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런 말까지 생겨날 만큼, 은퇴 후 남성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은 이미 2025년에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젖은 낙엽족현상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은퇴한 남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창 사회활동을 하는 4, 50대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4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암을 제치고 자살(고의적 자해)로 나타난 것입니다. 남성의 자살률(41.8)은 여성(16.6)2.5배에 달하고,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습니다. 40대 한국 남성이 세계에서 가장 위태로운 자리에 서 있는 셈입니다.

   한국의 40대 중후반, 50대 초반 남성은 경제활동의 주역이며 가정의 중요한 일원인데, 동시에 가파른 변화에 가장 먼저 치이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무시무시한 경쟁을 뚫고 살아왔지만, 오로지 경력을 바라고, 죽을 만큼 일하다가 그만 몸은 병들고 마음은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아직도 권위적이며 위계질서가 뚜렷한,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상사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해고가 쉬워진 노동시장에서 오늘 당장 가장 먼저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앞으로 올 고령화 사회에 제대로 준비와 채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앞뒤고 옆이고 돌아볼 겨를 없이 내달아 왔기에 성숙한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올바른 의식도, 튼실한 자아 정체성도 갖추지 못한 채 더욱 흔들리고 헤매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돌아보고 짚어보고 새롭게 만들어갈 인간관계나, 스스로의 속내를 다듬고 돌보고 매만지는데도 무척 서툽니다. 빠르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매몰되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다움의 욕구는 멀어지고, 왜곡된 욕망과 물질적인 성공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과오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고통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한국 남성들은,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구하며 살아왔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무엇을 구하는가: 암논과 야고보·요한]

 

    오늘 사무엘하 본문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선 미숙한 성인, 암논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에게는 여덟명의 아내에게서 최소한 열아홉 아들이 있었고(대상 3:1-9), 암논은 첫째 아들로서 왕위를 이을 가장 강력한 후보였습니다.

   다말은 다윗의 또 다른 아들 압살롬의 여동생으로, 궁궐 안에서 호위무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어 암논이 만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사촌 요나답의 간교한 술수로, 암논은 병든 체하다가 아버지 다윗을 통해 다말을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본문의 성폭력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강제로 추행하려는 암논에게 다말은 뛰어난 분별력을 잃지 않은 채 차분하지만 간곡하게 말을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어기는 일이며, 자신을 욕보이는 것은 옳지 않고,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이런 방식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부부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이 소용없었습니다. 암논은 완력으로 다말을 제압하고 욕보인 뒤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며 내쫓아 버립니다. 17절을 보면 암논은 하인에게 어서 이 여자를 내 앞에서 내쫓고, 대문을 닫고서 빗장을 질러라.”라고 명령하는데, 히브리 성경에는 이 여자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여자가 아니라 이것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암논은 다말을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본문은 이성과 힘이 대치하는 장면입니다. 다말은 끝까지 이성적으로 사태를 풀어가려 하고, 암논은 오직 육체의 욕망과 힘으로 행동합니다. 발달심리학자 맥아담스(Dan P. McAdams)는 사람이 자기 삶을 이해하고 이야기로 엮어가는 방식에 크게 두 가지 축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주체성(agency)’을 중심으로 삶을 서사화하는 방식으로, 힘과 성취, 통제와 지배를 통해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다른 하나는 공동체성(communion)’을 중심으로 삶을 서사화하는 방식으로, 사랑과 친밀함, 관계와 소속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이면 누구나 지닌 삶의 결이지만, 우리 사회는 유독 남성들에게 어려서부터 주체성의 서사만을 익히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어려서부터 힘을 가진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남성다움이라고 배워온 사람들은 관계와 공동체성의 언어를 익힐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자기보다 약한 존재는 지배하려 들고 강한 존재에게는 굴종하는 데에만 익숙해져, 진정한 관계 맺음에 실패하기 쉽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힘으로 정복한 뒤 곧바로 회피해 버린 것이 바로 그 전형입니다. “사내 대장부 콤플렉스”, “온달 콤플렉스”, “성적 과시와 외모·학력 콤플렉스에 이르기까지, 힘을 기준으로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재는 문화 속에서 정작 힘을 갖지 못한 남성들은 서로를 경쟁 상대로만 여기며 무척 외롭고 쓸쓸한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마가복음 본문에서도 똑같은 질문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던져집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 말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달라고 말입니다(10:35-37). 다말 앞에 선 암논처럼, 여기서 야고보와 요한이 구한 것도 결국 지배의 자리요, 힘이요,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10:38) 그리고 다른 열 제자마저 이 일로 분개하자, 예수께서는 그들 모두를 불러 놓고 완전히 다른 힘의 질서를 선포하십니다.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지으십니다. “너희 가운데서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10:42-45)

   암논은 다말 앞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너희에게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너희는 무엇을 구하느냐?” 지배하고 군림할 자리인가?, 아니면 섬기고 돌보는 자리인가. 오늘 이 질문은 2천 년 전 갈릴리 호숫가의 두 제자에게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향린교회 남성 교우들에게도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성숙성과 성령의 열매]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육체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를 대조합니다. 육체의 욕망 자체는 가치중립적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졸리면 자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육체의 행실은 왜곡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욕망을 가리킵니다.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려 있는가, 강도의 손에 들려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쓰이듯, 힘도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의 열매로 사랑과 기쁨, 화평과 인내, 친절과 선함, 신실과 온유와 절제를 말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여주신 섬김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열매들입니다.

   이 열매들은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말한 성숙성과도 연결됩니다. 성숙성이란 자신보다 어린 이들을 이끌어주고(guide), 돌보고(care), 성장시켜 주는(nurture) 것을 말합니다. 중년의 시기가 되면 남을 이기려는 경쟁 심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가족과 친구,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세상을 향해 나누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이 땅에 남기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고, 자기중심적 삶을 넘어 보다 보편적이고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제 저를 포함하여 우리 향린교회 남성 교우들에게 몇 말씀을 구체적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바울 사도의 조언에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애쓰시기 바랍니다. 이 열매를 가정에서, 혹은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이로서 맺으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둔 분들에게는 아버지의 자리가,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곁에 있는 이웃과 동료, 후배를 돌보는 자리가 곧 그 열매를 맺는 자리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토머스 울프(Thomas Wolfe)인간의 생명을 깊이 연구해 들어가면 결국 사람들은 자기의 아버지를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힘과 지혜, 사랑, 사상, 신앙은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됩니다. 둘째 성령의 열매를 지니고 주변의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결혼 여부나 가족 형태와 상관없이 중년의 남성에게는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전한 놀이터가 필요합니다. 셋째, 성령의 열매는 이웃과 사회 속에서 맺어야 합니다. 그동안 받아온 많은 선물을 이제 사회로 다시 돌려줄 때입니다. 넷째, 아직까지 맺지 못한 성령의 열매들을 맺으려고 애써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중장년이 되었다고 해서 스스로를 퇴물로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소중한 미래가 있고, 꿈과 희망이 있고, 이루고 싶은 일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좀 더 진실하게, 좀 더 진지하게, 좀 더 높고 깊은 차원을 갈망하고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냥 아재가 아니라 아재의 깊이를 보여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은퇴 후의 소외도, 4, 50대의 위기도, 실은 힘 있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구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기 어려운 까닭은, 남성이 이 구조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 때문이며, 또한 많은 남성이 이런 자신의 처지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가장 못하는 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I hurt, I need, I can't입니다. “나 상처 받았어”, “지금 내게 도움이 필요해”, “이건 내가 할 수 없어”. 우리 향린교회 교우들은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위로도 받고 도움도 받을 줄 아는 사람들입니까? 사실 저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가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돌봄과 보살핌의 위기이며, 이를 풀 가장 현실적인 실마리는 남성들이 돌봄에 나서는 것, 그것도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2014년 향린교회의 부목사를 사임하고 2년간 무임 목사로 있으면서, 두 아이와 온전히 지낼 기회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집안을 치우고 밥을 해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숙제를 봐주고 함께 놀고 씻기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힘도 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돌보고 보살피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 필요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무엇보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저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 인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남성을 돈 버는 기계로, 먹잇감을 찾아 눈에 불을 켜는 사냥꾼으로 살게 하지만, 우리는 계속 돌보고 가꾸는 정원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물으셨던 그 질문을 우리에게도 다시 물으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하느냐?” 오른쪽 자리, 왼쪽 자리, 영광의 자리인가, 아니면 섬기는 자리, 돌보는 자리, 정원사의 자리인가.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겉 사람은 비록 쇠하여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우리 향린교회 남성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맞는 남성들의 자기 변혁을 기대하며 박노해 시인의 시 하나를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박노해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겆이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 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 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 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표창장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 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 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 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모두 섬기고 돌보는 일에 전문가가 됩시다.

땅의 것만을 보지 말고 하늘의 것을 구합시다.

우리가 모두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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