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열넷째주일
교회교육주일
“기쁜 마음”
(대상 28:14-17; 고후 9:7; 마 25:40)
유영상 목사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빕니다.” 우리 교육부 어린이푸른이는 어른을 향해서, 교우님들은 어린이푸른이를 향해서 서로 손 흔들며 인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교회교육주일을 맞아 한데 모여 서로 인사하고 함께 웃을 수 있어 기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고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 되길 바랍니다.
[여름들살이 ‘봉헌’]
이번 여름, 교육부 세 부서는 여름들살이를 다녀왔습니다. 교우님들의 기도와 응원 덕분에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영상을 보며 우리 어린이푸른이들이 무얼 배우고 어떻게 추억을 쌓았는지 보겠습니다(영상 재생).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면 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할 수 있을까?’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교사 충원을 꼭 해야 한다’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놀이는 역시나 빼놓을 수 없는 진미였고, 오랜만에 온 친구들을 볼 수 있어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금세 의젓해진 푸른이들을 볼 때면 뿌듯했고, 물놀이와 부엌 놀이에 함박웃음을 짓는 유아유치부 아이들을 볼때면 정말이지 기뻤습니다. 또 세 부서가 함께 붙들었던 주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봉헌’입니다.
왜 봉헌을 들살이 주제로 선정했을까요? 바로 ‘의미’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의미'를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뜻을 알지 못하면 금세 따분해집니다. 그렇게 싫증이 나지요. 특히 그게 매번 반복되는 일이라면, 어린이푸른이가 느끼는 답답함은 훨씬 클 것입니다. 슬프게도 아이들의 눈에 비친 예배가 딱 그렇지 않을까요? 왜 매주 아침마다 피곤함을 뒤로 하고 교회에 가야 하는지, 투정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교회에 친구 만나러 가라고 하지요. 근데 친구는 교회 바깥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눈만 뜨면 볼거리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눈을 감고 귀에다 아직 말 한 번 해주지 않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 그 재밌는 게임을 참아가며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의문투성이일 것입니다. 그토록 관심 가는 게 많은 시기에 아이들이 그저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학생 때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를 다녔지만 스무 살 어른이 되면 당장 교회를 떠날 역모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가장 반복되는 순서들, 반복되는 만큼 가장 중요한 순서들, 그런데 반복되는 만큼 양으로 승부하려다가 그 의미를 순간 놓친 순서들의 의미를 설명과 체험 활동을 통해 교육하고자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들살이에서는 기도, 겨울들살이에서는 찬양, 이번 여름들살이에서는 봉헌이었습니다.
우리 어린이푸른이들이 완벽히 이해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이번 들살이의 목표가 봉헌의 깊은 뜻을 납득시키는 데 있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제 막 아이들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을 심었을 뿐입니다. 이번 들살이는 그 깊은 의미를 알아가는 첫 걸음이었습니다. 교육과정 속에 배치하여 아이들이 이 내용을 꾸준히 익히게 하고, 잊힐 때쯤 다시 환기해 주는 방식으로 세심하게 이끌어갈 계획입니다. 참된 교육은 이렇듯 평생에 걸쳐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이니까요.
[큰 사랑]
오늘 읽은 제1성서 역대지상 말씀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내 것을 하나님께 선물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중 일부를 떼어서 돌려드리는 겁니다. 여기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대단한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떻습니까? 요즘 많은 것들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곧 나의 것이 될 대상들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봉헌은 이 세상은 누구의 것이냐? 라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내 것을 떼어 드리는 이 헌금은 급진적인 행동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를 고린도후서 말씀처럼 기쁜 마음으로 낼 때 그 의미가 되살아 납니다. 이처럼 봉헌은 물건이든, 돈이든, 봉사든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를 이웃에 대한 실천으로 연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약한 자에게 한 것이 예수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니, 흥미롭지 않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규진이에게 엄청난 사랑을 베풀어 주셨어요. 규진이는 너무 고마워서 예수님께 보답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러지 말고, 여기서 가장 작은 유아유치부 규영이에게 도움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아하지요?
우리 교회 많은 교우님이 이번 여름에 연변에 다녀오신 줄 압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난 겨울에 연변을 다녀왔습니다. 제 숙소가 연변을 가로지르는 하천 부근에 있었습니다. 너무 추워서 하천이 꽁꽁 얼어 있었어요. 거기서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그때 저 멀리 십자가가 보이더군요. 그냥 문득 “아 중국에도 교회가 있구나!”, “그렇지 중국에도 교회가 있지”, “가 볼까?" 이렇게 생각이 들어 무작정 하천을 따라 갔습니다. 교회 바깥에서 사진도 찍고 구경을 하다가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선어 성경책을 팔더군요. 사고 싶어졌습니다. 조금 지나자, 안에서 사찰 집사님처럼 보이는 분이 나오셨습니다. 자신을 집사로 소개했고 성함을 말씀해 주셨는데 성이 조 씨인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서울에서 왔습니다.” 그랬더니 조 집사님이 “아 저도 한국에서 잠깐 살았어요.” “어디서 사셨어요” “동두천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둘러본 저에게 물었습니다. “구경은 잘 하셨어요?” “네. 혹시 성경책을 살 수 있을까요? 조선어 성경책을 사고 싶습니다” 그러자 지금 성경책이 다 나가서 없다고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가려던 참에! 조 집사님이 절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책을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이 동두천에 있을 때 교회로부터 너무나 큰 도움을 받았다고, 그래서 제게 보답하고 싶다며 조선어 성경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저는 조 집사님을 이날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마치 저에게 은혜를 입은 분처럼 저에게 ‘보답’을 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오늘 수요 예배가 있으니 예배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했고 ‘감사합니다’만 몇 번 반복하며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도 보답을 하고 싶어서 작은 선물을 들고 조 집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제가 이 분을 다시 만났을까요, 만나지 못했을까요? 네, 만나지 못했습니다. 보답하지 못했죠.
저는 여전히 이것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제가 준 것도 없는데 그분은 ‘보답'을 한다고 합니다. 그날 제가 받은 것은 무엇일까? 되뇌게 됩니다. 조 집사님 안에 가득 차 있었던 어떤 사랑이 느닷없이 저에게 온 것입니다. 이 좌표 없는 사랑이 이제 저를 지나 어디로 향할까요?
[우리는 어떻게?]
저는 이 사랑을 누구에게 보답할 수 있을까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도 어린 시절 자라오시며, 그리고 사회에서 성인으로 살아가시며 크고 작은 사랑을 주고 또 받으며 살아오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회 교회학교에서 그러셨겠지요. 생각나는 선생님들, 선배들이 한 명쯤은 있으실 겁니다. 여러분은 그분들께 받은 사랑을 어떻게 보답하셨습니까? 아마 보답하셨더라도, 그 분께 받은 사랑이 너무도 커서 아직 보답을 못 하셨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럼 이제 여러분 어떻게 보답하시겠습니까? 보답할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 향린교회에서 함께 하십쇼. 먼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와 연대하십시오. 일꾼이 되어 교회를 섬기십시오. 그리고 가장 작지만, 소중한 우리 어린이푸른이를 섬겨주십시오.
오늘 하상우 집사님이 목회 기도에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소개해 주셨지요. 그렇습니다. 마을이 필요합니다. 마을이 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우물이나 냇가 같은 공유 공간, 이웃 사이의 관심 그리고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공통적으로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킵니다. 교우 여러분, 어린이푸른이의 곁을 지켜주십시오. 모두 교사가 되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가장 작은 자에게 하라고 말씀하신 그 위대한 신앙, 우리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주십시오. 인생에 걸쳐 축적된 사랑을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보답합시다. “하나님,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시 ‘마을’이 될 수 있을까요.” 함께 실천하는 향린교회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합니다.*
*파송사*
사랑합시다.
마을을 이룹시다.
자라나는 어린이푸른이를 보듬고 함께 자유인으로 삽시다.
그렇게 내 안에 충만한 사랑을 기꺼이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