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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외로움의 습격

by phobbi posted May 11, 2025 Views 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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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5-11

2025. 05. 11.

 

두려움에 떨면서도 주변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된 상태’, 이것이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외로움이었어요.

 

시대적 맥락에서 볼 때, 셰익스피어가 <코리올레이너스>에서 묘사한 외로움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홀로됨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어요. 이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홀로 있음을 뜻하는 표현은 ‘oneliness’였거든요.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죠. 당시 ‘oneliness’, 홀로됨은 어떤 부정적 의미도 담고 있지 않았는데 이때만 해도 중세의 영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에요. 한 인간에게 홀로됨은 오히려 신을 더 가깝게 느끼고 마주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신이 존재하는 한 홀로됨은 외로운 게 아니라 오히려 은혜로운 기회였던 거죠. 그렇기에 외롭다는 것과 홀로된다는 것은 전혀 관련이 없는 문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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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대해 정치철학사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이는 한나 아렌트예요.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 마지막 장에서 전체주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외로움에 주목하고 있죠. 아렌트와 일반적인 역사적 분석에 따르면, 유럽에서 외로움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이에 따른 도시화가 진행되면서부터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외로움이 본격적으로 개인을 넘어 집단적인 문제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사이였어요. 이런 일이 발생한 주된 이유는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15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폭발적인 인구 성장 때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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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력이 모자랐기 때문이에요. 노동력이 부족하니 당연히 아이들을 많이 낳기 시작했는데, 19세기 중후반부터 이게 문제가 되기 시작해요.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만큼 일자리가 따라 늘어나지 않았거든요. 당연히 대규모의 실업 위기가 발생했는데, 유럽 각국에서 처음으로 실업이라는 용어가 사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에요. 이때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빈곤했기 때문에, 평범한 이들에게 실업이라는 말은 인간의 가치를 상실한다는 의미나 다름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가치에 대한 경멸 속에 과잉화된존재로 전락하는 일이 일어났어요. 결국 많은 이들이 이 세계에서 있을 자리를 잃고, 마침내 불필요한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에 휩싸이게 되었죠. 아렌트는 수많은 유럽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이 느낌을 뿌리뽑힘(uprootedness)’쓸모없음(superfluousness)’이라 정의하며 유럽에서 있었던 완전히 새로운 현상(an entirely new phenomenon in Europe)”이었다고 설명해요. 더 자세히 살펴보면, ‘뿌리뽑힘타자들이 인정하고 보장하는 장소가 이 세계에 없다는 의미이고, ‘쓸모없음이 세계가 속할 곳이 없다.”는 의미라고 아렌트는 정의하고 있어요.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삶의 터전을 잃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죠.

 

김만권 지음, <외로움의 습격>(혜다, 2024. 5. 30.), 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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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종교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고독과 연결 짓는다.

 

개화된 인류의 상상력 주위를 맴도는 위대한 종교적 착상들은 고독의 표현들이다.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사막에서 고뇌하는 마호메트, 명상하는 부처, 십자가에 매달린 저 고독한 인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에 의해서조차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종교적 영혼의 내면적 본질에 속한다.”(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지음/문창옥 옮김, <종교란 무엇인가>(사월의 책, 2015. 8. 20.), 37.)

 

인간은 자기를 반성하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군중 속에서도 홀로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외로움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홀로 있음이 신과 마주하는 거룩한 체험이 될 수도 있고,

사무치는 외로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외로움을 사회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자면 단순히 심리적으로 외로운 감정이라기보다 실업 등으로 인해 이 세계에서 있을 자리를 잃고 마침내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라는 저자의 말이 깊이 다가온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이 외로움의 시대가 된 것은 능력주의, 디지털의 급격한 발전, 편견에 사로잡힌 빅데이터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인간이 원래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오늘날의 상시적 외로움은 바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게 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외로움의 밑바닥에는 버림받았다는 깊은 상처가 존재하는데,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외로운 시대에 교회는 작은 피난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향린 목회 18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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