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망상을 벗겨준 향린교회”
(창세기 1:1-10, 누가복음서 9:10-17, 베드로전서 2:9-10)
장익근 목사
국민학교 6학년 때에 6.25를 맞아, 탱크로 쳐내려오는 인민군들의 총소리, 대포소리를 뒤로 들으며, 대전으로 대구로 빠른 걸음으로 부산으로 도망쳐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많은 폭탄을 한국 땅에 퍼부었는데도, 그것을 한 번도 목격한 일이 없이 밤낮 없이 걸어 내려왔습니다. 1953년 휴전을 맞아, 비가 새던 부산 영도의 천막 교실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부서진 학교 건물에서 벽돌을 나르며 공부했습니다.
폐허가 된 서울 도심 천막교회에 들어서면, 전쟁에서 가족을 잃고, 팔다리가 잘려나고, 절규하고 통곡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눈물 속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설교 모두가 물리적 사태로부터의 삶의 안정을 찾아가기 위한 근거 없는 망상의 언어로 가득 찼었습니다.
성서 속에 숨어있는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끌어내어, 삶의 깨달음과, 생명의 근원을 일깨우기에는 목사들의 자질이 너무 빈약했었습니다. 그 당시 신학교 모두가 인원 미달이어서 누구나 입학했었고, 피어선 성경학교를 비롯하여 많은 성경학교는 고교 졸업장도 없이 아무나 들어가 연수만 채우면 목사가 되던 때였습니다.
"천국에 가면 길가에 사과나무가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라고 소리지르는 부흥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중학생이었던 저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슬픔 안에서 가난을 이겨가며, 생존을 위해 밤낮 없이 뛰어다녔어도, 주일날이면 근본 문자주의 부흥 목사들의 즉흥적 망상의 설교를 듣고도, 용기를 갖고 새출발하던 때였습니다.
1955년 고등학교때 박태선 장로가 신앙촌 전도관을 짓는데 돈이 필요해서, 남산에서 철야기도 부흥집회에 며칠 철야를 해봤었는데, 안수기도 받아서 척추후만증 환자가 허리를 폈다느니, 기도해서 폐병이 완치가 됐다고 X-Ray사진을 보여주며 소리소리 질러대면, 90%가 속아넘어가 헌금하던 때였습니다.
통일교가 청파동에서 처음 시작할 때 부흥 집회에도 몇 번 가보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받는다는, 결국 축복의 노예로 만드는 구약의 소명기 신학을 되풀이하는 설교였습니다.
평양 시내 유년 주일학교 때부터 듣고 또 듣고 되풀이한 설교들이 마음속 깊이 울림이 오지 않아서 방황하던 혼란 속에서, 좀 더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없나 하고 찾아다니다가, 미국 유니온 신학교 출신 강원용 목사가 경동교회에 부임했다는 소식에, 첫 설교를 듣고 교회 등록했습니다. 성가대도 돕고 세례도 받았지만, 일년 지나고 보니까 한 말 또 하고 또 해서, 세월만 허송했습니다.
다행히 오후 2시에 시작하는 대성빌딩 예배모임에서 함석헌의 설교를 듣고 나서야, 비로써 성경의 지혜를 깨우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박 태선 신앙촌, 문선명 통일교 모두가 문자주의에 집착한 망상의 광신도 언어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967년 포항에서 제대하고 서울에 오니까, 남대문 시장 한가운데, 원금순 산부인과 옆에 자리한 향린교회에서, 독일에서 돌아온 안병무가 설교하고, 오후 2시에 허혁이 성경공부 한다는 소식 듣고, 출석 첫날 교회 등록하였습니다. 1977년 이민 떠나기까지 10년간은 저에게는 교회생활의 황금기였습니다.
허혁의 현대신학 강의를 처음으로 들어보는 생소한 내용에 적응을 못하던 소수의 청년들의 불만의 말을 듣고, 허혁은 뜨거운 마음으로 경청하고, 열광하던 많은 청년들을 버리고 향린을 떠났습니다.
예배시간에 청년들이 특별송으로 기타로 팝송을 불렀더니, 거룩한 교회 안에서 세속의 노래 부른다고, 나쁜 소문이 장안에 들끓었었습니다. 이처럼 제도와 습관에서 자유로웠던 향린교회였습니다. 제가 봉사부장을 할 때에 장로님들 모두 한 30명 점심 초청을 하였는데, 저희 아파트 마켓의 맥주가 동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향린에 와서 주량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한신대학 정원에서 야외예배를 봤었는데, 점심시간에 저 구석에 장로님들 몇 분이 "장 집사 이리와!" 해서 갔더니 담배를 피우더라고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같이 담배를 피우니까 통지애를 느꼈습니다. 60년 전 일입니다.
창립자들의 높은 이상과 꿈은 교단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평신도 교회였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목회자처럼 주체적으로 직점 참여하는 베드로전서 2장 9절 만인 제사장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황성규목사는 사회만 보고, 주로 안병무가 설교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장로들이 돌아가며 설교하였습니다. 예배 후에는 아래층 신호다방에서 청년들이 모여 설교에 대한 감동과 비판의 소리, 자기 것을 다 들어내 놓고 토론하는 뜨거운 열정의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향린교회는 "College Christian 공동체"로 소문이 났었습니다.
교인 수가 200명이 넘게 되니까, 변화에 적응 못하고 유연성이 부족하고, 습관에 사로잡혀, 고정관념 안에서 안주하려는 교인 수가 늘어나,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1974년 안병무는 떠나고, 이화대학 대학교회에서 안병무가 한 달에 한 번 설교할 때는, 향린 청년 십여 명은 그쪽으로 몰려갔었습니다. 그때 안병무의 친구였던 김흥호목사가 말씀에 목말라하던 향린 청년들을 모아놓고, 격려하고 기도해 주시던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창립 때의 높은 이상과 꿈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교회 창립 21년 만에 독립교회로서의 특성을 포기하고, 직업으로서의 목사 김호식을 청빙하여, 평범한 교회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함석헌 모임에서는 인간학에 심취했었고, 향린교회에서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독일의 현대신학을 배웠습니다. 공개적인 설교나 성경공부 시간에는 두 교수는 부활, 재림, 사영리 같은 기본 교리는 조심해서 피해 갔지만, 개인적인 사적 만남에서는 2백 년 전통의 독일 현대신학을 충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망상의 언어로 20여 년간 세뇌되어 썩어 있던 나의 뇌를 깨 버리고, 상식적인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준 향린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배화여고에서 10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다가, 1977년 이민은 떠났지만, 매년 한국을 방문하여 안병무, 허혁, 함석헌, 김흥호님들을 찾아뵈어서, 개인적인 학습을 통해 익혀온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대신학 언어들이 생소하고 당황스러워 더 견딜 수 없어서, 1991년에 70%가 향린교회를 버리고, 성북구 동소문동에 "예담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는 아직도 "천당가면 영생한다"는 천 년 전의 망상의 꿈을 꾸고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두 교수는 저희들에게 우선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이집트 등 3천 년 전 신화집을 찾아보라 하였습니다. 저는 즉시 도서관에 처박혀 자료들을 검색하였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는 신화들, 처녀 탄생한 위인들을 30명이나 찾아냈습니다. 플라톤, 석가, Zoroaster 등 모두가 처녀 탄생 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을 흙으로 빛어 만들어져 신들을 섬기게 한 것,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Saigon 1세를 어머니가 대나무 바구니에 실어 Euphrates 강에 띄워 보내는 모세 신화 등, 마치 구약성서의 원본을 읽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버드의 Cox교수는, 유대교의 문자는 고유한 것 하나도 없고 모두 이웃에게서 베껴온 것이라 하였습니다.
1) Babylon 평지에 흐르는 Euphrates강이 있고 산악지대에 흐르는 Tigris강이 있습니다. Tigris란 뜻은 빠르게 흐른다는 뜻입니다. 산악지대에서 물이 빨리 흐르니까, 하구에서는 자주 홍수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 지방에 떠돌던 노아 방주 설화를 끌어 다가, 창세기 6, 7, 8장을 만들었습니다. (LA의 탈봇, 풀러 신학교는 노아 방주의 실제 크기를 재현하는 모형을 한 학기 그리고 있습니다.)
2) "예수가 재림하여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라는 사도신경 원시 언어들을 여러분들 정말 믿고 고백하십니까? 20만 년 동안 Homo Sapience가 죽은 인간들 2천억 명과 지금 살아 있는 80억 명, 2,080억 명을 심판하러 오신다? 기가 막혀서 정신병자들도 웃을 겁니다.
2천 년 전에 로마의 학정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리고 가해자 로마 놈들을 지옥에 보내려는 분노와 울분을 주님에게 호소하며 울부짖던, 옛날 어느 구석 유대 민족의 사소한 전설들입니다. 우리와 아무런 관계없는 멀쩡한 한국인들이 왜 지금도 AI 시대에 사도신경을 고백하여야 합니까?
성서의 신비한 기적 표적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신비한 기적은 죽음을 이겨내는 부활을 예견한 메시지입니다. 물에 빠지면 누구나 죽지 않아요? 허구한 많은 망상의 언어들을 정리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존경하는 안병무의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권에서 주술과 망상에 사로잡혀 통치해 오다가 탄핵이니 뭐니 혼란스러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혼을 잘 붙들면 온 우주가 우리를 도와준다, 혼 없는 인간은" 하면서 1,000년 전 주술적 무속 언어에 4년간 묶여 있다가, 5년 후 또다시 주술적 정신병자들 밑에서 3년을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망상의 뿌리가 기독교의 환상의 언어에 있습니다. 그 책임은 원시 언어들을 지금도 중얼거리며 청산하지 못하는 우리들 기독교인들에게 있습니다. 반성은 커녕 제발 남 탓하지 마십시오.
한국 감리교단에서는 서구 현대신학이 200년 전에 이미 선포한 "성경은 부분만이 진리다"라는 사실을 1955년에야 처음 받아들였습니다.
3) 3천 년 전 고대 중동의 우주관의 그림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10절까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천 년 전에는 비가 어떻게 오는지 모를 때였습니다.
"고대우주관 설명"
구약성서에서는 6천 년 전에 우주가 창조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990년에 지구궤도로 발사된 Hubble 가시광선 우주 망원경은 우주 나이가 138억 년이라고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허블보다 10배 이상 성능이 뛰어난 James Webb 적외선 우주 망원경은 2021년 12월에 태양 궤도로 발사되어, 우주 나이가 270억 년으로 밝혀냈습니다.
3천 년 전에는 6천 년이었던 우주 나이가 270억 년으로 450만 배가 늘어났습니다. 3천 년 전에는 태양이 지구보다 두 배가 크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태양의 실제 크기는 지구보다 백삼십만 배가 더 큽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3천 년 전의 세계관 안에서 쓰여진 구약 안에 묶여서, 그리고 1700년 전에 만든 유치한 니케아 종교 그늘 아래서 노예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신학자들의 책을 이단이라고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Martin Heidegger(1889~1976)가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인간이 있기 전에, 우주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우주, Cosmos의 어원은 질서를 뜻합니다. 인간이 있기 전에는 그 질서가 있다 해도 그 질서를 보는 시야는 인간에게만 있기 때문에, 하이데커는 인간이 있기 전에는 우주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있으므로 '대자실존'으로, 메타인지로 우주 전체에 질서를 지웁니다. 질서가 있다 해도 그 질서 Cosmos를 볼 줄 아는 '대자'가 없는, '즉자' 즉 동물만 지구에, 개만 살면 우주의 존재를 모릅니다. 사람이 살기 전에는 우주는 '즉자존재' 자연일 뿐, 내가 없으면 세상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화성 넘어있는 목성이 지구보다 1,300배나 더 크기 때문에, 지구로 돌진해 오는 무수한 무거운 혜성들이 중력이 지구보다 1,300배나 큰 목성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 지구가 안전합니다. 우주 안에 백억분의 일의 행운으로 돌고 있는 아름다운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백억분의 일의 영광으로 태어난 이 소중한 짧은 나의 생명은, 천억분의 일의 영광된 행운을 안고 지금 숨을 쉬고 있습니다.
마가 8장 36절,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우주의 주인입니다. 내가 죽으면 온 우주가 멸망합니다. 왜 나만 죽어야 되냐며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중한 우리들 생명을, 평등과 자유로 지켜내려 했던 2천 년 전 예수의 오병이어 기적의 설명으로 마치겠습니다.
4) 예수가 주장 해오던 핵심은 무엇입니까? 평등과 자유입니다. 기원전 4세기경 민주주의 뿌리라고 소문난 평등과 자유의 상징 아테네는, 인구의 30%만이 평등과 자유를 누리는 시민권자였습니다. 70%는 여자와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9장에, 예수를 따르는 남자만 오천 명,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만 명이, 넓은 빈들에 오십 명씩 둘러앉아서, 100%가 평등과 자유를 누리며 식사를 나눈 2천 년 전 기적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의 놀라운 가르침에 감화받고 따르던 사람들 중, 며칠씩 굶으며 따르던 사람들, 며칠 양식을 가지고 다닌 사람들, 극심한 빈부의 양극화 무리들이었는데도,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같이 앉을 수 있다는 사실, 더구나 식사를 같이 나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였는데도, 예수의 따뜻한 축사 기도로 감명받아, 서로 나누어 먹은 기적 사건입니다. 자유 평등 기본 질서라는 인류사에 유래가 없었던 새로운 혁명의 길을, 예수는 실천했습니다. 현대 기본헌법의 핵심을, 이미 2천 년 전에 실현한 놀랍고 자랑스러운 오천 명이 같이 식사한 위대한 혁명적 예수의 자유와 평등 사건입니다.
오천 명이 서로 나누어 먹은 그 놀라운 기적이, 2천 년이 지난 지금, 작년 12월 4일 한국의 땅 여의도 광장에서, 12월 21일 남태령 언덕에서, 함께 고통을 감내하는 훈훈한 사랑으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선결제"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서로에게 따뜻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예수의 평등과 자유의 염원을 우리가 경험했습니다.
추운 겨울, 젖먹이를 안고 달려온 젊은 여성들의 수유를 위한 난방버스 선결제, 커피 천 잔 선결제, 따끈한 설렁탕 오백 그릇 선결제, 경쾌한 K팝 떼창을 함께 부르는 주변 모든 커피숍, 식당들이 모두 공짜였습니다. 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싸 가지고 온 먹거리들을 서로 나누며 떼창을 함께 부르며, 형형색색의 응원봉은 다양한 우리들의 아름다운 빛깔이었습니다. 언제 우리가 세대 간 갈등이 있었는가? 언제 우리가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다투었는지? 양극화된 각박한 사회 안에서, 상대가 죽어야 사는 극한 경쟁사회에, 언제 우리가 매몰되었는지? 그 모두를 잊어버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예수의 사랑 나눔이, 오천 명 기적이,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되살아났습니다. 눈물 흘렸던 그 당시 감격이 지금까지 내 가슴 속에 희망으로, 자긍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자존심 그 희망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남북 간의 사랑 나눔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망상의 언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문자주의 기독교 광신도들, 뇌가 썩은 기독교인들은 반통일 역적들입니다. 세계 유일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분단국가에서, 망상의 언어들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예수의 자유 평등의 정신으로 무장한 기독교인들이, 민족의 자존심을 살려,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위대한 "선결제 문화가 평양에 국수공장, 원산에 라면공장, 선결제하여 통일 운동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하신 주님, 한민족의 건전한 신앙과, 계몽의 빛으로 이끌어온
안병무의 민족 사랑의 얼을 이어받은 향린교회의 앞날을 축복하소서.
향린에서 예배보는 소중한 생명들의 밝은 미래를 축복하소서.
강대국들이 한민족이 몸을 70년 동안 두 동강이로 찢어 놓고 있는
우리 불쌍한 우리 동포들에게 위대한 선결재의 뜨거운 운동으로
통일의 서광이 비추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 이름으로 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