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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세상을 뚫고 나오는 믿음 | 김희헌 | 2021-05-09

by 김희헌 posted May 09, 2021 Views 16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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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1-05-09

세상을 뚫고 나오는 믿음 (10:44-48, 요일 5:1-6, 15:9-17)

부활절 여섯째 주일, 어버이 주일 (210509)

 

[사랑이 향해가는 곳]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생명 세계, 그리고 가정과 교회를 헌신적으로 가꾸고 돌봐주신 이 땅의 모든 어버이께 고마운 마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어버이의 사랑은 크고 깊어서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마다 삶의 무게와 고통을 갖고도 자신보다는 자녀를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주십니다. 거기에서 삶에 필요한 사랑이 말없이 이어집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완고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이 완전히 무르익으면서 인생의 중요성을 보는 기준이 바뀌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직시할 수 있게 하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어른들도 많습니다. 작은 장벽에 막혀서 생명의 전진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머물지 않고, 드넓은 광장을 향해가라고 독려하는 지혜의 목소리를 물려주신 어른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께는 송구합니다만, 제가 오십 대 중반이 되고 보니 감정이 복잡해집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에 대한 연민은 깊어지고, 아이는 이제 다 커서 자기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상실감도 생깁니다. 기성세대로서 책임감과 초조함을 함께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문화적인 압박감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중압감은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가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물음이 올라올 때 생겨납니다. 오늘은 기성세대로서 느끼는 시대적 중압감을 조금 털어놓고자 합니다.

사회가 질곡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는 기성세대의 퇴행적인 현상과 관련됩니다. 한국사회의 기성세대로 진입한 86세대, 60년대 생으로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독특한 경험을 한 세대입니다. 젊은 시절에 진보적인 열기를 접하고, 역사의 변혁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그래서 진보적인 유전자가 후천적으로 각인된 세대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란 말 자체가 새로운 상상력의 고갈을 의미하듯이, 86세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이들은 젊은 시절엔 진정성의 시대를 거칠게 통과하고, IMF 이후에는 생존의 시대를 힘겹게 지나왔습니다. 적과 동지로 구분된 대결의 시대를 살면서 조화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관계윤리를 습득하지 못하였고, 생존의 막바지에서 버텨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것은 86세대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세계가 안고 있는 한계상황처럼 느껴집니다. 남과 북, 흑과 백, 노동과 자본 사이에 쳐진 적대적인 전선은 인류를 저마다의 게토에 고립시키고, 문명의 질곡을 풀어내기 위한 과감하고 창조적인 전진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진보적 비전을 만들어가는 협력적 관계 구성보다, 자기만의 진리를 반복하며 공전을 거듭하는 것 같습니다.

10년 전 한 사상가는 우리 세계가 하나의 독재 아래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대안이 없다는 생각의 독재라고 합니다. 그는 진보의 대안을 찾자고 제안합니다. 이 사상가는 불과 28살의 나이에 하버드대학 법대의 종신교수가 되고, 조국 브라질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198033살의 나이로 당시 군사정권에 맞서 일어난 <브라질민주운동당, MDB>의 정강/정책을 기초하고 훗날 Lula 정부의 각료로 활동한 로베르토 M. 웅거입니다.

그는 오늘날 진보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좌파를 두 개로 분류합니다. 하나는 세계화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반대하는 완강한 좌파’(recalcitrant Left),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자산 불평등과 시장경제를 불가피하게 여기고 그 현실 범위 안에서 소극적 개선을 추구하는 개혁적 좌파’(reformist Left)입니다. 웅거는 이 두 가지 방식으로는 미래를 열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Roberto M. Unger, The Left Alternative, 2009)

그는 진보적 정신을 재구성한 좌파(reconstructive Left)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그것은, 자본을 민주화하여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재조직하고, 소수의 독점이 아니라 다수의 자율적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사회를 구성해가는 운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정보통신의 첨단기술(ICT)을 장악한 소수집단의 부당한 특권을 해체하고, 승자독식의 세계를 재편성하는 것을 목표로 과감한 실용주의’(radical pragmatism)를 가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류가 쌓아온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의 성과를 소수의 기업이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차지하면서, 결과적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극심한 고용불안을 불가피한 미래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잘못된 전위주의’(vanguardism)에 맞서는 모든 상상력이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적이고 예언적인 비전을 신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비전은, 인간이란 이해관계 안에서 몰락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환경을 초월하는 신성한 능력을 자기 존재 안에 갖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R. M. Unger, The Religion of the Future, 2014)

과거의 틀에 갇히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 현실의 한계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서 과감히 나아가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질곡과 장벽에 갇혀 날개가 부러진 채 머무르지 않고, 사랑이 다시 작동할 수 있는 세상을 재구성하는 믿음의 행진이 필요합니다.

 

[이방인의 시대 / 사도행전 826~40]

오늘 사도행전 본문은 이방인의 성령강림절이라 할 만한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에 관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로마 군인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거기 있던 이방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일은 이제껏 예수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온 사람들에게는 탐탁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운동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율법(레위기 11)이 금지한 음식을 먹으라는 하늘의 명령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율법을 어기라는 그 명령을 혐오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 혐오의 근저에는 율법을 지키려는 성실하고 경건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먹을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그런데 환상은 계속되면서 그를 압박했습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아라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장벽에 갇혀있는 그에게 준 성령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폐쇄적이어서는 안 된다, 굳어진 계명을 깨뜨리고 사랑을 택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환상을 경험한 뒤 고넬료의 초대를 받습니다. 그리고 할례받은 유대인 몇 사람과 함께 그 이방인의 집에 가서 예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감동적인 연설을 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의 말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베드로는 스승과 함께했던 지난 시대의 위대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민중과 함께 살다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온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개입하여 그의 말을 뚝 끊어버립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아마 성령의 개입에는 이런 뜻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 그럼 그 말대로 산다는 것은 지금 무슨 의미냐?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옛 율법대로 사는 것이냐? 아니다! 내가 보여주마.’ 그러면서, 율법에서 제외되었던 장벽 너머의 사람들, 이방인 중의 이방인으로 여겨진 로마 군인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의 선물이 부어집니다. 새로운 시대, 이방인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거기 있던 유대인들,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어쩌면,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으니, 이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10:47)

여기서, 베드로는 새로운 시대의 예수 운동을 재해석합니다. 그는 이방인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유대인인 자신들의 사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자신의 위업을 과거에서 찾았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의 명령을 현재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예수의 명령을 밀고 가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예수의 한결같은 명령은 사랑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들의 사랑은, 식으면 교만이 되고, 불타면 증오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차가울 때는 각성이 되고, 뜨거울 때는 정의가 됩니다. 그것이 예수 운동의 동력이었습니다.

 

[사랑의 계명, 두 가지 모습 / 요한복음 159~17]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단 한 가지 사실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본문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슨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말한 계명으로서의 사랑은 엄청난 복선이 있는 말입니다. 말 자체가 음흉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세계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 이 계명(ἐντολή)은 양면적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담은 간결한 명령으로서의 계명은 삶의 좌표를 알려주는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계명이 실행되는 삶이 아니라 요구되는 주장이 될 때, 계명은 생명을 짓누르는 억압적 요인이 됩니다. 사랑의 계명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폭력과 위선의 통로가 됩니다.

바울은 계명이 가진 이런 이율배반적인 특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한 것이 나에게 죽음을 안겨 주었다는 말입니까? 죄가 계명을 통하여 내 안에 온갖 탐욕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7:8~13 / 순서 바꿈)

계명으로서의 사랑, 그것은 예수의 뜻을 이루어가는 통로이기도 하며, 우리를 죽음의 질서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문제는 계명의 형식이 아니라, 사랑의 타락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념과 명분, 그것은 사람을 억압하고 구속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현실의 무게를 압니다. 진정한 사랑은 현실의 비애를 짊어집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교착된 삶을 더욱 궁지로 몰고 가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다시 작동할 수 있는 생명력을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믿음, 낮은 곳에서 길을 여는 힘 / 요한일서 51~6]

교회 건너편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는 내일이면 꼭 1년이 되는 농성장이 있습니다. ‘아시아나 KO’라고 하는 아시아나항공의 하청의 하청인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장입니다. 지난 사순절에는 기장 교단과 NCCK 정의와평화위원회가 기도회를 진행하였고, 현재는 목요일마다 기독교대책위가 작은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년까지 5년간 노조 지부장을 맡았던 김정남 님은 지난 4월 말로 정년이 지났습니다. 정년이 되기 전에 복직을 시켜달라고 요구하며 시작된 단식은 이미 그 기한을 넘겨 오늘 27일째가 되었습니다. 회사는 오래전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는 노동위원회의 판결을 듣고도,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을 돈을 들여서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통해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파괴하는 자본의 악행을 가까이에서 보며 탄식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소리치는 약자들에게 조용히 하라며 그 입을 틀어막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공권력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게 됩니다.

오늘 요한일서 본문은 기독교적 믿음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5:4~5)

본문은 묻습니다. 이 세상을 이긴 사람은 누구인가? 돈과 권력을 잡은 사람인가? 아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이긴 사람이다. 세상을 이겼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믿음, 세상의 좌절과 허무를 뚫고 세워진 믿음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낮은 곳으로 향해가며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다.

이것은 기독교적 믿음의 골격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향린 신앙공동체가 지닌 정신의 특징, ‘세상을 뚫고 나오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 믿음은 독선이 아닙니다. 참된 평화의 갈망입니다. 이 믿음은 현실의 불안과 절망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용기에 호소하며 고개를 넘고 시내를 건너 새로운 마을로 나아갑니다.

이제 몇 주 있으면, 53년간 이곳 명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모든 시간을 마감하고 광야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다행히 지난 시대 선배들이 물려준 믿음의 유산으로 광화문 시대를 설계할 정신적/물적 자산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믿음과 사랑으로 과감히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돌아보니, 지난 수년 동안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이제는 땀을 흘리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저와 교우들 모두의 믿음을 붙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세상을 이긴 사람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허무와 좌절을 뚫고 나오는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낮은 곳으로 내려간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이 믿음의 유산을 잘 간직하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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