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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우리가 그의 나라 l 김지목 ㅣ 2021-11-21

by 김지목 posted Nov 26, 2021 Views 12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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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1-11-21

 

 

우리가 그의 나라 (삼하23:1-7,  1:4b-8,  18:33-37)

 2021.11.21. 창조절12

 

교회의 계절로 오늘은 9월 첫주로부터 시작한 성부의 계절, 창조절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주부터는 대림절로 성자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창조절은 생명과 정의와 평화라는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기억하고 그 섭리를 회복하는 것을 기원하는 그리스도인의 계절입니다. 신앙의 계절을 구분하고 지키려는 그리스도교의 기획은 신앙인의 1년의 삶이 성부, 성자, 성령을 기억하면서 신앙의 삶이 되게 하려는 목적을 겨냥한 것입니다. 곧 신앙인의 1년의 삶을 예배로 지켜지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오늘 창조절 마지막 주일에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한 가지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입니다. ‘하나님나라는 한 처음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라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악의 세력을 극복하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성취해나갈 목표라는 점에서 그리스도교 종말사상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악을 심판하시고 태초에 구상하셨던 생명, 정의, 평화를 온전히 회복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긴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 하나님의 의지를 믿고 오늘 겪는 고난을 이겨낼 힘을 얻으며 신앙을 지켜내는 소망의 근거가 되는 사상입니다.

 

오늘 제2성서의 본문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나라에 관한 단초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6절에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화두로 삼아 오늘 창조절 끝자락에서 하나님나라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환상과 묵시로 기록되어 있어서 요한계시록은 해석이 난해한 성서였습니다. 묵시문학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은유와 상징을 바른 코드로 해석하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묵시문학의 장르를 활용한 고대인들의 정서와 의도를 바르게 간파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성서입니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개인적인 계시 능력으로 해결하려는 잘못된 해석들이 난무했던 성서가 요한계시록입니다. 은유기법과 상징체계에 숨겨진 의미를 찾기보다 문자 그대로 환상적인 묘사 그대로 이해하려는 데서 잘못된 단추를 끼웠던 것입니다. 그런 해석의 권위를 정당화시키려고 해석자의 영적 능력을 강조하면서 점입가경으로 자기가 하나님이니 재림예수니 하는 수많은 사이비를 낳게 한 요한계시록의 불행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고대문학에 대한 이해와 성서의 삶의 자리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요한계시록을 대하는 기본 관점이 정립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주후 120년경 로마 제국주의로부터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자리에서 읽어야 합니다. 무소불위했던 로마의 제국주의를 극복하려는 그리스도교 사상사의 흔적으로서, 저항담론으로서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값진 의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사탄의 질서를 거절했기에 당하게 된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결연하고도 절박한 상황으로 들어갈 때 이 성서의 진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지켜내기 위해 박해받는 무거운 현실을 초극하고자 초현실적인 문학장르인 묵시문학을 선택했다는 점도 그때의 절박함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이 됩니다.

 

성서학자들은 그리스도교 경전으로서 지니는 요한계시록 의미, 세 가지를 규명해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첫째 제1성서의 예언자 전통을 완전하게 계승하고 있으며, 둘째 고난당하는 어린양으로 묘사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사상에 투철하며, 셋째 바울서신과 같이 그리스도교 초기 교회들에 전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건실하게 바로 서도록 가르치는 사도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규명은 우리로 하여금 어긋난 해석으로 빠지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예언자의 전통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학 안에서, 그리고 사도적 가르침인 공교회적인 문서로 이 성서를 이해해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흩어져 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사도 서신의 형태로 회람되면서 예언자 신앙을 공유하고, 십자가 고난 너머에 약속된 부활,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을 확신하는 문서로 읽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성서는 공동체가 드리는 예배 예전문으로서도 활용되었는데, 오늘 읽은 본문말씀은 예배 초반에 하나님께 드리는 공동체의 고백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매주 예배 서두에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시편을 교독하고 이어 영광송을 부르는 것과 같은 고백의 예전문을, 우리가 오늘 읽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예배전통에서 고백은 필수적인 순서입니다. 1성서 성문서인 시편의 대부분이 고백의 예전문으로 노래되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고백은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를 신뢰한다는 전제, 그리고 그분께 우리 삶을 정박하고 그 뜻대로 살기를 결단하는 우리의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의 저자 마커스 J. 보그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믿음의 의미를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믿는다는 말은 오늘날 신뢰하다는 의미로 주로 통용되고 있지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오히려 사랑한다는 말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인 것인데, 이러한 바탕에서 우리 믿음은 신뢰를 넘어 사랑하는 것으로, 보다 역동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신앙고백송으로 부르는 이 땅의 향기로운 이웃은 우리 교회의 신경입니다. 이 신경의 라틴어 어원(credo)의 뜻은 내 마음을 준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불교 용어로 귀의한다는 뜻과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지는 우리의 믿음이란 사랑의 행위이자 마음을 드리는, 역동적인 고백이라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고백의 예전을 통해 우리가 신앙하는 분을 인정하고 드높이고, 동시에 역동적인 신앙인 되기를 다져왔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고백의 예전에서 집중하고 싶은 대목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6절 말씀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는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시는 분이며, 그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겠다는 공동체의 고백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인간 존재가 어떻게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가능하기에 예수는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만드시는 분이라고 고백했을까요?

 

예수의 공생애 첫 번째 하늘뜻펴기(설교)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였습니다. “하나님나라는 공간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공간, 사랑과 자비가 가득하고, 생명 정의 평화가 완전한 그곳이 우리가 사는 이곳으로 내려오는 것을 뜻합니다. 땅이 하늘로 개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같은 공간적인 의미는 교회가 교회중심적으로 잘못 이용하면서 오해를 빚기도 했습니다. 아직 하나님나라가 도래하지 않은 지금의 시기에 공간적으로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대신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신성시하고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모아 그들을 하나님나라인 교회에 묶어두는 것이 교회의 선교라고 여겼습니다. 교회는 높아져만 갔고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이에 대해 반성하면서 하나님나라는 어떤 곳이냐, 다시 물었습니다. 공간적인 차원을 넘는 새로운 의미가 이미 성서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 즉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작동시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어디서든지 생명 정의 평화로 집약되는 하나님의 통치를 작동시켜 내는 것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나라의 공간적인 의미가 완전히 무시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인간 존재 자체가 시공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지 않은 이상,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작동시켜내는 선교와 함께 하나님나라의 공간적인 의미도 성실하게 지켜가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장단점을 긴장시키면서 상호 보완해나가야 할 요소들입니다.

 

여기에 오늘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하나님나라를 이루는/성취하는/오게하는 다른 방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바로 우리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장소가 되어야 하며,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작동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존재론과 관계론을 우리 안에서 동시에 성취시켜 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통치원리가 살아 숨쉬게 하는 것! 우리가 그의 나라가 되는 것! 이것을 위해 꾸준히 신앙을 고백하면서 나/우리를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향린 공동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에 대한 해법은 오늘의 요한복음서 말씀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께서 수난당하시기 전에 로마총독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시는 대목입니다. 이 본문을 오늘 우리에게 안배한 것은 대림절을 앞둔 창조절의 마지막주간에 대림절을 예비해주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본문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구절은 36절과 37절입니다.

 

예수께서는 빌라도와 다른 세계의 나라를 논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심문하는 빌라도의 최대 관심사는 예수가 스스로 왕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왕이라 사칭한다는 명목으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고발하기도 하였지만, 예수가 왕의 권위로 로마에 반역하는 반란을 도모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빌라도가 생각하는 나라와 다른, 자신의 나라에 대해 말씀합니다. 예수는 자신의 나라의 왕임을 감추지 않음과 동시에, 유대인이나 빌라도가 생각하고 있는 나라의 왕이 아님을 변증하였습니다. 더불어 자신의 나라의 작동방식이 빌라도의 나라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또한 강조합니다. 유대인과 빌라도의 나라에서는 왕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싸우지만, 자신의 나라에서는 진리만이 전부라고 답합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십자가 고난도 감내하는 것이 예수의 나라의 방식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십자가가 하나님나라의 작동원리라는 예수의 말씀에 기대어, 우리가 하나님나라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십자가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나라가 되게 하는 방편이 됩니다. 안병무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민중의 절규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신 안에서 민중의 절규가 공명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존한다고 보았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로부터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때 십자가는 비로소 신앙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단순히 기호나 표지로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신앙에 도전을 안겨주는 상징이 될 수 있도록 십자가를 바라보며 깊이 묵상하는 시간도 할애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이미 광화문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202370주년을 앞두고 교회를 건축하고 있고, 미래선교연구위원회에서 선교 과제를 연구하며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새 교회당이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고, 미래선교의 연구와 실천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위하여 모두 함께 조금 더 기도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와 향린의 신앙고백을 더 깊이 묵상하고 또 더불어 서로 소통하면서, “우리가 그의 나라가 되는, 광화문시대 진입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무엘기 하의 말씀에는 참 아름다운 표현이 있습니다. 4절 햇살과 햇빛에 대한 묘사입니다. 다윗이 유언으로 남겼다고 하는 오늘 사무엘기 하 본문은, 다윗의 유작이라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다윗을 끌어다가 하나님의 공의를 노래하는, 후대의 저작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공의로 다스리는 왕에 대해 칭송하는 내용을 마치 지혜시처럼 구성해놓은 것이 돋보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공경과 신뢰로 가득 찬 관계를 하나님과 맺었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이란 하나님나라가 된 신앙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햇살과 햇빛과 같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4구름이 끼지 않은 아침에 떠오르는 맑은 아침 햇살”, “비가 온 뒤에 땅에서 새싹을 돋게 하는 햇빛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의 나라가 될 때 맑은 아침 햇살처럼 희망차고 새싹을 돋게 하는 햇빛처럼 생동이 넘치는 존재가 된다고 하니, 가슴 떨림이 느껴집니다. 이 구절을 옮긴 시인의 감수성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제 버킷리스트에 적어두고 나중에라도 맑은 아침 햇살새싹을 돋게 하는 햇빛을 직접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향린 공동체 안에서도 하나님나라를 함께 체험하면서, 햇살과 햇빛으로 은유된 시인의 감수성을 충만히 체험하는 경험을, 앞으로 서로 나누게 될 날을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파송사]

 

하나님나라가 됩시다. 함께 이룹시다.

십자가를 품고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나라가 됩시다.

향린의 신앙고백을 드러내는 선교사업을 펼쳐나가며

하나님나라가 됩시다.

구름이 끼지 않은 아침에 떠오르는 맑은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비가 온 뒤에 땅에서 새싹을 돋게 하는 햇빛이 따스하게

우리 공동체 위에 내리쬐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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