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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가장 따뜻한 나의 하나님 | 김정원 | 2021-06-20

by 백찬양 posted Jun 25, 2021 Views 15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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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1-06-20

가장 따뜻한 나의 하나님 (삼상 17:32~49, 고후 6:1~13, 마가 4:35~41)

성령강림절 5, 성정의주일, 남북화해주일 (210620)

 

1. 오늘 하늘뜻펴기는 사실상 세 개의 꼭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먼저는 청년들이 준비한 노래가 그것이고, 둘째는 제가 준비한 하늘말씀, 마지막으로는 동화입니 다. 가장 처음의 순서인 노래 두 곡을 먼저 소개합니다.

 

매년 4월이 되면 청소년 성소수자였고, 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육우당의 삶과 죽음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리는데요. 이제 듣게 될 두 곡 모두 올 해 추모제에 헌정되었던 노래입니다. 첫 번째 곡은 우리 교회의 감성 장인인 임다운 님이 작 사/작곡 한 노래, 나를 비춰줘요입니다. 함께 부른 친구는 향린이 키워서 다른 교회로 파송한 김정현 님이에요. 개인적으로 재주 많은 두 분의 조합을 고대해 왔는데, 올 봄 합을 맞춘 모습을 보니 감동이 두 배인 것 같습니다.

 

두 번 째 곡은 새청과 청신에 속한 청년들이 모여 부른 노래 차별 없는 세상’ 입니다.가볍지 않은 제안에 기꺼이 마음을 모아 준 청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두 곡의 가사 모두가 성정의를 지향하고 있기에 다른 모양의 하늘뜻펴기가 되 리라 생각됩니다.

 

(찬양 영상)

 

2. 기쁜 소식이지요. 차별금지법제정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10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평등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국회의 결 단만이 남은 상황입니다. 21대 국회가 제발 분발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별, 장애, 나이, 성적지향 그 어떤 것도 차별은 정당화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인종, 제 큰 키, 제 성별, 제 학력, 제 나이, 제 자산, 제가 남성을 사랑하든, 여성을 사랑하든,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등 이 모든 요소들의 전부가 저라는 존재이기에 그것으로 인해 차별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처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래선교연구위원회 내 퀴어-페미니즘 선교팀은 성소수자, 여성, 혹은 남성, 그리고 청년들의 일상을 주제로 한 잡지를 약 열 명의 청년들이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올 가을이면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중 성정의주일을 맞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장르는 동화이고, 역시 정현 님의 글입니다. 이 동화가 시사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함께 귀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동화이니만큼 맛깔나게 전달할 전달자가 필요했습니다. 이쯤 되면 향린에서 고정 듀오가 된 듯 한데요, 임솜이, 오완석 님을 모십니다.

 

(임솜이, 오완석 님 등단)


3. 어떻게 들으셨나요? 이 동화가 가르켜고 있는 것은 차별 없는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동화적 언어 속에 감추어져 있었지만, 주인공 모모가 지우개로 지우고 싶었던 것들은 실상은 나의 형편과는 다른 존재들, 약자,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동화는 암묵적으로 약자들을 차별하고 있는 우리네들에게 잔잔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양성이란 말은 사실 빨주노초파남보가 함께 있다기보다는 모두가 빨간색인데, 그 속에 하나 있는 노란색을 눈 여겨 보는 것입니다. 빨간색 속에 숨어있는 노랑색의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양성이란 말은 결국 다수 속에 포함된 소수를 존중하기 위해서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즉, 큰 것 속에 작은 것, 힘이 센 것들 중에 약한 것들을 위해 우리 사회에 등장한 언어인 셈이지요.

 

주지하시듯, 다름은 우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다양성 존중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빨간색이 점하고 있는 우위를, 빨간색이 만들어 놓은 위계를 포기하는 행위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구멍난 양말을 결정하는 것은 구멍일까요? 양말일까요? 하얀 캠퍼스에 찍힌 점 하나. 그 그림을 결정하는 것은 하얀 바탕일까요? 눈에 띄는 점 하나일까요? 그냥 양말인 것 같지만, 구멍이 작게 났다면- 우린 그것을 구멍 난 양말로 인식합니다. 전체 속에 생긴 틈과 균열인 그 구멍이 그 양말의 정체성이 된 것이지요. 큰 캔버스가 흰 색으로 꽉 차 있더라도, 그 까만 점 하나. 그 점 하나가 그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란, 빨주노초파남보를 수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전체 속에 점 하나, 굳건한 것 속에 작은 구멍 하나. 그 약한 존재들을 들여다보고, 살피고 보듬어 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를 비롯한 향린에서 시무하는, 혹은 시무했던 목회자들이 어느 자리에서든 향린의 목회자로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교인들이 우리의 하나님을 약자들의 신이라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라 가늠해봅니다.

 

약자들의 신, 즉 약자들의 사건 속에 함께 머무는 신. 신학자 카푸토는 이를 약한 신학이라 명하였습니다. 약한 신학이 말하는 하나님은 물리적인 혹은 영적인 거대한 힘을 가져서 상과 벌을 주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원인과 결과의 하나님이 아니란 말이지요. 로또를 당첨되게 하고, 부동산 가격을 올리거나, 죄인으로 낙인찍어 지옥불을 경험하게 하는 하나님도 아니겠지요. (제가 가끔 하는 농담이 있는데요. 우리 청년들이 비교적 예배 참석률이 낮은지라, 자꾸 그렇게 교회 안 나오면 지옥간다~라고 너스레를 떨 때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 청년들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헐, 오늘도 시작된 목사님의 지옥마켓팅이라 말하며 되받아치곤 합니다) 이 말은 곧, 그네들이 고백하는 하나님이 상벌의 지평이나, 인과관계의 지평에 있지 않다는 의미겠지요. 그들이 성숙한 신앙을 가졌기에 할 수 있는 농이었을 것입니다.

 

약한 신학의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기다리고, inviting 초대하고, calling 부르고, appealing 호소하는 분이십니다. 강한 신학의 하나님이 권력의 신이이라면, 약한 신학의 하나님은 강한 신학이 배제한 과부와 고아, 이방인의 하나님입니다. 성서 속의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은, 현대에 와서는 여성, 어린이들, 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 법의 질서 속에서 배제당한 소수자들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카푸토가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왕국 없는 왕국, 지배하지 않는 통치, 약자와 어리석은 자들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땅을 말합니다. 약함으로써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으로써 경직성을 뛰어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약한 신의 왕국은 오히려 약함으로써 힘을 얻는 것입니다.(김민아)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하나님을 약한 신학을 기반으로 읽어봅시다. 골리앗을 상대하러 나가는 다윗에게 사울은 놋투구와 갑옷과 큰 칼을 내어줍니다. 몇 걸음 걸어보더니 두 볼이 빨갛고 몸집이 작았던 어린 다윗은 그것을 벗어두고는 목동의 지팡이와 작은 돌멩이 몇 개를 주머니에 넣고 골리앗을 상대하러 나갑니다. 칼과 창과 투창의 강함과 작은 돌멩이의 약함이 대결합니다. 약자와 어리석은 자들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무한한 권력이 넘어지고, 힘없는 자를 선택한 하나님이 힘없는 자를 초대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카푸토가 밝히는 calling 부르심은 불가능성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질서를 빗나가는 가치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불가능성의 도래를 열망하는 것이요, 세상을 운영하는 논리와 질서를 전복하는 것으로서의 불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마가복음서의 말씀은 그 불가능성을 붙잡고 나아갈 우리에게 희망을 전합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타고 있던 배 안으로 파도가 덮쳐 들어와 배 안에는 물이 가득 차 버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다야, 고요하고, 잠잠해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왜이리 무서워합니까? 여전히 두렵습니까? 아직도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절대권력의 신, 무한한 힘의 신이 아닌, 세상에서 아파하며 절망 속에서 두려워하는 이들의 상황 속에서 읽어봅시다. 차별과 배제와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 속에서 탈락할까 두려워 떠는 약한 존재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평안의 메시지로 가져와 봅시다. 약함으로써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으로써 경직을 뛰어넘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내가 그대들의 하나님이요, 그대들과 함께 힘없는 자리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 곁에서 계속해서 여러분들을 부르며, 폭풍이 고요해지고, 잠잠해질 때까지 함께 싸울 것입니다.

 

오늘 하늘뜻펴기의 제목을 가장 따뜻한 나의 하나님이라고 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애타게 찾는 청년들이 감사하게도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이들의 삶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사랑이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도덕과 질서 속에서 자신을 죄인이라 규정하며 잠이 들다, 아침이면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찬 상태로 기도를 부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믿음이는 취업을 위해 서울에 상경하여, 통장의 잔고를 보고 또 보다가 내일을 염려하며 잠이 듭니다. 소망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들킬까 노심초사 하며 다수자들처럼 페르조나를 쓰고 매일을 살아갑니다. 기쁨이는 좀 많은데요,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가족들도 모르게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경쟁사회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내 약한 존재들에게 겸손히 전합니다. 힘없는 하나님이 힘없는 행위를 통해 힘없는 자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차별과 배제의 틈바구니에서, 여러분들의 주머니에 물멧돌을 넌지시 넣어주며 괜찮다, 그 작은 돌을 던져라! 괜찮다, 힘을 내라!라고 말하며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가장 따뜻한 하나님이 그대들에게 편지를 썼다면, 이렇게 적지 않았을까요? 이 편지를 끝으로 하늘뜻펴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오 나의 약한 존재인 믿음소망사랑기쁨이들아~

더는 악몽을 꾸지 말아라, 죽지도 말고, 죽을 생각도 말아라.

다윗처럼 작은 친구야. 물맷돌을 쥐어라.

그대들 안에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약한 하나님이 들어차 있다.

물살이 거세어 그대들이 탄 배가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더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그 배에 함께 타 계신다.
파도도 잦아들고, 물살도 약해지고, 바람도 약해진다.
가장 따뜻한 하나님이 그대들을 부르고 그대들에게 호소하며 눈물과 공감으로,
약한 바람처럼, 잔잔한 파도처럼 함께할 것이다.
우리 약한 존재들아, 힘을 내라.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파송사>

약한 존재들을 기다리고, 초대하고, 부르고, 호소하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이십니다. 사랑과 평화와 정의가 우리들 안에, 그리고 차별과 배제와 자본의 질서에 목소리를 잃은 자들 속에 약한 하나님이 계십니다. 가장 따뜻한 하나님을 간직하며 절망의 어제가 아닌, 가능성의 오늘을 살아갑시다.

 

이제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서로를 축복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시는 친교가 우리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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