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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그린 엑소더스, 탈-향의 공동체 | 윤상혁, 김희헌 | 2022-03-20

by 김희헌 posted Mar 20, 2022 Views 22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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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3-20

그린 엑소더스, 탈향의 공동체 (55:1~9, 고전 10:1~13, 13:1~9)

2022.03.20. 사순절 (3), <그린 엑소더스> 기도회

 

그린 엑소더스, 다른 삶은 가능하다

윤상혁 집사

그린 엑소더스인가

안녕하세요. 생애 첫 하늘뜻펴기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자기 삶의 공간에서 하늘 뜻을 펼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향기로운 이웃, ‘향린이라는 말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러니 저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나만의 하늘뜻펴기를 향린 교우들과 공유하고 서로를 권면하라는 의미이겠구나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에 이르고 보니 이제야 향린의 평신도 하늘뜻펴기의 깊은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럼 나는 왜 이 자리에 섰는가? 작년 530일로 기억합니다. 제가 감사기도를 드린 날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임은희 집사님께서 오셨습니다. 생태문화팀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구요. 제 감사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신 듯했습니다. 그때부터 생태문화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 감사기도를 임은희 집사님만 들으신 게 아니라 생태문화팀만 들으신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지금까지 놀라운 배움과 은혜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김지목 목사님께서 선교부와 생태문화팀에 한 가지 제안을 하셨습니다. 녹색교회 네트워크에서 <그린 엑소더스 릴레이 기도회>를 범 교단 차원에서 신청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도 선교부 특히 생태문화팀 주관으로 참여하면 좋겠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생태문화팀은 미래선교위원회의 한 분과로 참여를 했었고, 작년 생태문화팀에서 진행한 다양한 활동 가운데 5주 동안 25가지 생태 키워드를 중심으로 향린 교우들의 지구를 위한 마음을 모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린 엑소더스 릴레이 기도회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생각하는 그린 엑소더스의 의미를 향린 교우들과 나누어보겠습니다. 우리는 현재 향린교회 70주년과 광화문 시대를 준비하며 광야생활 중에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여 진행되고 있는 향린의 광야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생활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요.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백성의 수를 세고 하나님의 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의 현대적인 의미가 스스로를 점검하고 새 시대에 맞는 새 원칙을 세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향린의 광야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3가지 질문과 마주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코로나 팬데믹의 의미는 무엇인가. 둘째, 기후위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셋째,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이 세 가지 질문은 그린 엑소더스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팬데믹 시대의 교회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 이후 교회의 문이 굳게 닫히는 것을 경험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의 다스림에 대하여 성찰하게 됩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생명 그 자체를 위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섬김은 진정한 섬김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섬기는 비인간 존재들의 의를 강탈하여 나의 의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이 비인간 생명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코로나 시대 초기 많은 이들이 포스트 코로나뉴노멀을 이야기했습니다. 대부분 설레발이었습니다. 뉴노멀은 마스크가 일상이 된 사회, 그리고 줌과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게 된 현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가 과연 도래할까요? ‘포스트의 의미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이제 팬데믹이 우리가 결코 떨쳐낼 수 없는 트러블로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향린의 광화문 시대는 팬데믹 시대의 교회를 상상하고 모색해야 합니다. 트러블과 함께 사는 교회 말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

코로나 19가 발발하기 1년 전인 2018101일 인천에서 열린 제48IPCC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특별보고서가 채택되었습니다.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이하로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줄여야 하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2020년 대한민국은 세계 주요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2050 탄소중립선언을 발표했습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사실 교회는 탄소중립 넘어 생태적 전환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광야시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는 방법을 설명하셨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어떤 성막을 원하시는지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화문 시대의 향린이 석유와 원자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동물의 사체로 만들어진 석유와 원자를 인위적으로 분열시킨 원자력이 하나님 나라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히려 태양과 바람과 물의 의미를 향린의 새로운 성소에 각인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성서 본문 이사야서 559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생각이 과연 뭘까 생각하는데 10절과 11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태양과 바람과 물이 생태계를 순환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생각도 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저는 광화문 시대, 새로운 향린교회가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생각이 멈추지 않고 순환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생명의 근원인 태양과 물과 바람을 허투루 쓰지 않는 교회, 기후변화로 인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에 응답하는 교회, 그리고 지속 불가능한 산업문명을 넘어 지속 가능한 생태문명을 지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의 엑소더스

마지막으로 윤석열 정부의 탄생이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정유라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민들은 불행은 개인 탓이며 국가는 책임지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진 정유라 스캔들에서 돈도 실력이다라는 메시지를 접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박근혜 정부를 전복시켰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했을까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약속했지만, 이번 대선 결과에서 보다시피 국민들의 평가는 냉정했습니다. 이제 곧 야당이 될 더불어민주당은 조국내집이라는 기표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국 사태에 대하여 정시 강화정책을 내놓은 것이나 집값 상승에 대하여 대출 규제를 취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취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돌린 거죠. ‘당신의 불행은 국가의 탓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다른 엑소더스들이 존재합니다.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 서울 지역 대학 그중에서도 서울대. 저는 윤석열 정부의 등장이 서울대와 강남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사회의 지배적 질서에 투항한 것이라고 봅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새 정부를 지역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능력 중심으로 기용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서울대, 5060, 남성입니다. 완전히 과거로 후퇴하는 거죠. 게다가 탈원전 정책도 후퇴할 것으로 보입니다. TV토론에서 윤석열 후보가 ‘RE100이 뭔가요?’라고 물었던 것처럼 지속가능성 정책도 후퇴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린 엑소더스가 매우 어려운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엑소더스, 강남 엑소더스, 건물주 엑소더스 등과 그린 엑소더스가 함께 갈 수는 없습니다. 선거 운동 기간에 윤석열 후보는 이 정부와 반대되는 정책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그랬는데, 어쩌면 우리는 윤석열 시대의 가치와 반대되는 일들만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그린 엑소더스

누구나 좋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좋은 삶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성별, 국적, 피부색, 장애의 여부, 가정의 경제력과 사회적 배경에 상관없이 동등한 발달 기회를 통해 공정한 삶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좋은 삶을 함께 만들고 가꿔나가는 공유재가 아니라 소수의 능력자만 가질 수 있는 희소재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현대문명이 석유우라늄이라는 희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희소해지고 있는 기회, 그리고 이를 붙잡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이 소모되는 사회.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를 패자로 만드는 거대한 낭비의 체제. 여기서 버려지는 것이 종이컵만은 아닙니다. 수많은 인간-소수자들과 비인간-생명들이 종이컵처럼 버려집니다. 그린 엑소더스는 바로 이러한 체제로부터의 탈출이자 새로운 사회, 즉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의 발걸음입니다. 저는 향린교회가 광화문 시대에 녹색의 신명기를 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삶은 가능하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새롭게 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희헌 목사

세계교회는 30여 년 전부터 선교의 방향을 ‘JPIC’(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로 삼고 실천해 왔습니다. 그 대회가 열리기 몇 년 전, 장공 김재준 목사는 우리 시대의 화두를 세 가지로 압축하여 말했습니다. ‘정의, 평화, 생명입니다. 그 과제가 지금은 더욱 절실해졌고, 앞으로의 선교에서도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 오늘 성서 말씀을 묵상합니다.

 

[포로민의 고난과 희망 / 이사야서 551~9]

이사야서 55장은 포로기 예언자 제2 이사야의 마지막 예언입니다. 예언자는 삶에 지친 포로민이 눈을 들어 봐야 할 것을 촉구하며 말문을 엽니다. 포로로 사는 사람들은 목마르고 배가 고픕니다. 그럴수록 더욱 갈증과 허기에 찬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이때 이사야가 묻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의미 없는 노동과 헛된 수고를 언급하는 이 말은 단지 기원전 6세기 포로 생활의 비통함을 경험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절실한 호소로 들립니다. 이윤을 위해 자연을 소비하고, 전쟁으로 삶을 파괴하는 오늘의 문명은, 양식이 되지 못하는 것을 위해 수고하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이사야는 물질적인 양식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참된 생명의 양식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소합니다. “귀를 기울이고 들어라,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라!” ‘영원한 언약’(berit olam)은 포로기 예언자들이 강조한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61:8, 32:40, 50:5, 16:60) 그 말은 돌아가야 할 믿음의 본향, 길을 잃은 현재의 삶을 탈출하여 나아갈 방향을 가리킵니다.

험한 시대를 지나며 지쳐버린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과거의 기억, 이사야는 그 속에서 가장 강건했던 시대의 상징을 떠올립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았던 때입니다. 그 풍요롭고 안전했던 시대에 대한 회상은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된 현실과 극적으로 대비되어, 앞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향해가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이 그 상징일까요? 우리 공동체는 그 어느 때 강건한 좌표를 갖고 있었나요? 19901월 안병무 선생은 <살림>를 통해 글을 발표합니다. 그 제목은 -(-)의 인간사입니다. 그 시기를 보면, 세계교회가 서울에서 120개국 대표와 함께 ’JPIC 신학을 공표하기 위한 대회를 열기 두 달 전입니다.

안병무는 이 글에서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며, 인간은 -의 삶을 통해 자기 길을 개척해 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는 그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인간을 노예화한 산업 문명에 물들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살길은 분명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현실이 되기까지 -향의 길을 열어가는 것입니다. 안병무의 이 외침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성서와 역사는 -향의 공동체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이루었는지를 말해줍니다. 자신의 기대를 넘어서는 생명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은 것입니다. 마치 이사야 예언자가 5절에서 말하듯이,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르고,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오는하늘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어쩌면 향린도 그런 영광을 누렸는지도 모릅니다.

깨어있는 -향의 공동체는 자만에 빠지지 않고, 영혼이 소생하는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공동체는 만날 수 있을 때 주님을 찾고, 가까이 계신 주님을 부르며행진하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가는공동체, 삶을 돌이키는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의 공동체, 도덕적 반성을 넘어 존재의 결심을 하는 회개의 공동체’, 과거에 대한 참회만이 아니라 현재의 은총을 증언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 공동체를 꿈꾸며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목표로 둘 때 깨닫게 되는 믿음의 지혜입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삶을 열라고 하신 예수의 음성도 듣게 됩니다.

 

[광야세대가 주는 교훈 / 고린도전서 101~13]

고린도전서 본문에서 바울은 이집트를 탈출한 -향의 공동체’, 바다 가운데를 지나고 구름의 보호를 받던 광야세대를 떠올립니다. 성서에서 광야는 새롭게 거듭나는 장소와 시간을 상징하기 때문에, 바울의 이야기는 고린도 교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도 비춰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광야세대가 가진 특징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다.그 신령한 물은 그리스도였다고 말하면서, ‘-향의 인간사를 이어온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주목하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현실이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의 삶 속에는 현실적인 한계와 실패가 반복됩니다. 바울은 광야세대 역시 두 가지 실패를 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우상숭배요, 다른 하나는 간음입니다. 본문에서 우상숭배를 의미하는 표현은 먹고 마시고 춤추는 삶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사야가 말했던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는 삶과 겹쳐집니다. 목표를 잃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입니다. 다른 하나는 간음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욕망의 삶입니다.

바울은 그런 광야세대의 꿈과 한계가 고린도 교회의 본보기라고 말하며, 두 가지 권면을 합니다. 먼저, 삶을 불평하기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무리 현실의 고난과 시련이 클지라도, 하나님은 감당할 능력과 벗어날 길도 마련해주신다는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삶을 선택할까? / 누가복음 131~9]

바울보다 20년쯤 후에 활동한 누가 공동체는 자기 시대의 징표를 찾기 위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누가복음 본문은 두 가지 사건을 들어서 시대의 표징을 전합니다. 하나는 봉기를 일으켜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잔인하게 학살당한 갈릴리 사람들의 비극이요, 다른 하나는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 사람들이 죽은 예루살렘의 비극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북과 남, 농촌과 도시, 필연과 우연, 그 어디에서도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참상을 상징합니다.

예수께서는 그 비극에서 멸망의 징조를 보고, 회개와 깨달음을 촉구합니다. 3절과 5절에서 반복하여 말씀합니다.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그들이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예수의 이 말씀은 삶의 전환이 아니고선 시대의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가르침인데, 그것은 기후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의 인류에게 더 적합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예수께서는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말씀합니다. 이야기의 교훈을 찾기 위해서는 두 등장인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명은 포도원 주인이요, 다른 한 명은 거기서 일하는 포도원지기입니다. 대부분 주석서는 이 비유에서, 주인을 하나님으로 보고, 이 이야기를 열매 맺지 못하는 삶에 관한 심판의 메시지로 해석하지만, 저는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무화과나무를 대하는 두 가지 삶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첫 번째는 포도원 주인이 보여준 모습입니다. 그는 효율적인 투자를 위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도 심었습니다. 심고 나서 3년이나 흘렀는데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보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찍어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겠느냐?’ 투자자의 관점입니다.

포도원지기는 다르게 대합니다. 그는 직접 노동을 하며 열매를 일구는 사람입니다. 그가 지주에게 간청합니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가서도 열매 맺지 못하면, 찍어버리십시오.’ 노동하는 사람의 간절함이 담긴 호소입니다.

저는 이 비유에서 /향의 공동체가 살길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포도원지기의 모습입니다. 열매 맺기 힘든 땅에서도 희망의 노동을 하는 그의 모습에는 예수의 삶, 이사야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척박한 로마 식민지에서도 갈릴리의 푸른 바다를 마음에 담고 살아간 예수의 삶, 목마른 포로민의 삶에 영원한 약속을 담으려고 한 이사야의 꿈이 거기서 피어납니다.

우리는 이 예배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녹색 탈출’(Green Exodus)을 기도합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행진이 시작되고, ‘-향의 공동체로서 상상력 넘치는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주님께 돌아갑시다.

출애굽 공동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광야로 나아갔듯이,

우리도 -향의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갑시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생각과 길보다 높다는 것을 믿고,

예언의 말씀으로 주신 영원한 언약을 따라 힘차게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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