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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주님 안에 굳게 서십시오! | 김희헌 | 2022-03-13

by 김희헌 posted Mar 13, 2022 Views 14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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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3-13

주님 안에 굳게 서십시오! (15:1~12,17~18, 3:17~4:1, 13:31~35)

2022.03.13. 사순절 (2), 청년주일

 

[절망의 시간에 생각하는 예수의 길 / 누가복음 1331~35]

대통령선거 후 마음은 잘 추스르고 계시는지요? 초박빙의 접전 끝에 윤석열 씨가 당선되었는데, ‘시대의 불운이라는 느낌입니다. 그가 해온 행보와 말을 생각하면, 미래가 암울해서 마치 희망이 끊긴 절망의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국민 절반이 선택한 결정을 부정할 수 없고, 그렇다고 우리 삶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상황을 난감하게 느끼는 것은 저만이 아닐 듯합니다. 당분간 위로와 격려를 셀프서비스로 해야 하는 고약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절망이라는 낱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희망이 끊긴 상태를 의미하는 절망(絕望)이 있고, ‘간절히 바란다라는 의미의 절망(切望)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상반되는 듯한 이 두 가지 의미는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나는 시기도 이 두 의미를 함께 지닌 절망의 시대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어려워도 현실을 피해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되돌아보고, 삶의 자리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이때, 예수를 깊이 절망(切望)하는 사순절의 과제가 더욱 사무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이 살던 시대의 삶도 지금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 시대와 이천 년 전 당시를 함께 그려보는 제 맘에 떠오르는 두 개의 영어단어가 있습니다. reluctancerepentance입니다. reluctance는 내키지 않은 삶을 마지못해 살아갈 때 느끼는 감정이요, repentance는 새로운 방향을 잡고 삶을 돌이키는 다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로마 식민시대를 마지못해서 살아가기보다는, 옛 삶의 방식을 털어내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아가자고 격려합니다. 그 맥락에서 오늘 본문 누가복음 1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3장의 전체 주제는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가르침이 나옵니다. 첫째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비유로 삼아 삶을 성찰하도록 요구하고 (6~9), 둘째는 안식일 법에 매여 고통당하는 사람을 외면하는 종교적 무능과 위선을 비판하며 (10~17), 마지막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겨자씨와 누룩과 같은 삶,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을 제안합니다. (18~30) 그런 다음, 오늘 본문이 이어집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를 찾아온 바리새인의 말로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떠나가십시오. 헤롯 왕이 당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염려하는 듯이 말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해가는 당신의 진로를 멈추라고, 하나님 나라 운동을 관두라고, 그렇지 않으면 헤롯에 의해 죽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세례 요한도 앞서 헤롯에게 죽임당했으니 빈말은 아닐 듯합니다.

바리새인의 이 말은 예수를 위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실제 의미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먼저 이 말을 전달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제자도 아니요, 예수를 따른 민중들(오클로스)도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종교적 가르침에도 정통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삶에서도 건전하다고 여겼습니다. 모두가 자기들처럼만 산다면 세상이 더 좋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가는 그 길이 어쩌면 그릇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들을 향해, 자기기만에 빠진 회칠한 무덤이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도리어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 눈먼 인도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예수의 길을 멈추게 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을 향한 예수의 대답이 곱지 않습니다.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하여라.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예수는 헤롯을 가리키며,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라!’고 말합니다. ‘여우라는 말이 오늘날에는 교활한 사람을 의미하지만, 성서에서 여우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아가 2:15, 13:4)

헤롯이 누구인가요? 그는 헤롯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로서, 아버지 헤롯이 죽자 그의 유언대로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그를 왕으로 부르지 않고 영주’(tetrarch)로 낮추었기 때문에, 로마의 환심을 사려고 애를 썼습니다. 갈릴리에 수도 세포리스를 세우고, 황제의 이름을 본뜬 도시 티베리아스를 만들어서, 갈릴리를 로마화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책이야말로, 시대의 요구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대세력은 가차 없이 죽였고, 거기에 세례 요한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런 헤롯의 위협을 전하는 바리새인에게 예수는 말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겠다.’ 이 말은 오기(傲氣)가 아니지요. 그렇다고 초연함도 아닐 듯합니다. 그것보다는, 목표의 재확인이라 하겠습니다. 그 목표는 앞에서 언급한, 겨자씨와 누룩과 같은 삶,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그렇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의 관점에서 볼 때, 예루살렘은 죄가 많은 도시입니다. 그 도시에서 잘 사는 삶이란 로마로 가는 길을 잘 타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도시의 질서요, 사람들의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런 예루살렘을 향해서 예수께서는 탄식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만일 예수께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대통령선거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한마디로 기득권의 반격에 무너진 촛불 정신이라 하겠습니다. 촛불이 변한 걸까요? 서울의 표심은 집값대로 결정되는 부동산 민심이었고, 국민 대다수는 혐오의 정치와 힘의 동맹에 물든 일그러진 주장을 용납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은 벌써 미국 대통령 연락을 받고 만나러 간다는데, 가면 무슨 계약을 벌일까요? 이런 모습을 보면, 예수의 저주, “보아라, 너희의 집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사람들은 어떤 삶을 계획할 수 있을까요?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할 그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어쩌면 당분간 예수가 보이지 않는 시대를 살 것입니다. 언제까지일까요? 주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이 등장할 때까지입니다. 그때까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요?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시대를 살아냈는지 다른 성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 두려워 말라! / 창세기 151~12, 17~18]

가장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그 이야기는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바벨탑 사건으로 몰락해버린 절망의 시대에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듣고 길을 떠납니다. 그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기근을 만나고, 타향살이의 설움과 친족의 분열, 이방인과의 전쟁 등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고난의 시간을 지나는 아브라함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괜히 고향 바빌로니아를 떠났다고 후회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안고 계속 나가야겠다고 다짐했을까요? 아마 큰 번민을 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위기의 시간에 오늘 본문 창세기 15장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번민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은 환상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아브람의 현실은 이 약속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위태로운 삶 속에서 아브람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합니다. 대를 이를 자녀도 없는 삶, 끝없이 방랑하며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토로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네가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한 그 행진을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자손에 관한 약속이요, 땅에 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과 든든한 삶의 터전이 될 땅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징표를 보여줍니다. 다섯 종류의 희생제물을 반으로 갈라놓은 사이를 타오르는 횃불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쪼개진 제물 사이로 불이 지나간 것은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 그 약속에 참여한 당사자 역시 그런 운명에 놓일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준엄한 상징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계약 내용, 위태로운 아브람의 삶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자손과 땅에 관한 약속입니다. 예전에 저는 이 약속이 기복신앙의 한계를 지녔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고작 그런 가시적인 것에 위안을 받는다는 사실이 탐탁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훗날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자신들의 배타적인 선민의식으로 삼고, 땅의 약속을 명분으로 삼아 이방인에 대한 정복을 미화했습니다. 이런 잘못을 알고 있는 오늘의 독자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내용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후대의 어긋남을 아브라함에게 투사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래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하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고대세계에서 자손은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는 전승의 주체요, 땅은 그 삶을 지어내는 물적 토대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의 바람도 하나님의 약속도 공허한 것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이점은 믿음의 세계를 살아갈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사실입니다. 믿음의 세계가 말의 주장이나 꿈의 향연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을 준비하고, 터전을 짓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계약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희생제물 위로 지나간 불타는 횃불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사항은 6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변함없이 믿음을 고백하는 아브람의 모습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우리 삶이 어긋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해서 그 자리에 자신의 욕망을 두거나, 하늘의 은총 대신 자신의 결핍을 동력으로 삼을 경우, 자신을 채우는 것만이 삶의 목표가 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모든 믿음의 사람이 그러한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삼고 삶의 여정을 계속합니다. 자식을 바치라는 시험을 맞아 모리아 산을 오르기까지 위태로운 길을 헤쳐갑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삶 / 빌립보서 317~ 41]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시작하며,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얼핏 보면, 당돌하고도 오만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자기 고백과 타인에 대한 격려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의 이 고백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본문에 앞서 바울이 한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13절과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자신을 밀고 가면서 십자가를 붙드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과감하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공동모방자가 되어 자신을 배우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겉모양의 흉내가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을 몸에 익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치도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말로만 하고 삶으로 익히지 않으면, 십자가는 자기를 가리는 위선의 포장이 되거나, 남을 헐뜯는 무기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그분을 본받는 삶에 있습니다. 그것이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외롭기만 한 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위기 속에서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과 거룩한 영을 구하며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백이십 명을 남겨놓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각별한 관심입니다. 함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믿음의 동반자가 중요합니다. 그들과 함께하면, 삶이 쉽게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두 유형의 사람을 대비합니다. 한편은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것이요, 다른 한편은 하늘의 시민권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에 시민권을 두고 사는 사람은 위태로운 시대에도 굳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사람은 자기 배를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 생각합니다.

바울의 이 말은 누구에 대한 비난이기에 앞서 스스로 성찰할 문제입니다. 그것은 사순절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본받으라고 당당히 말한 바울은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3:10) 바로 이런 삶이 하늘에 시민권을 둔 사람의 삶일 것입니다.

이 믿음이 바울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의 위기를 길게 지나는 가운데, 역사의 고갯길을 다시 맞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바울의 마지막 권면을 들으면서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지친 사람들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성서의 목소리입니다.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파송사]

주님 안에 굳게 서십시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가슴에 새긴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밝힙시다.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 안에 다시 굳게 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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