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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유혹과 우리 시대의 시험 | 김희헌 |2022-03-06

by 김희헌 posted Mar 06, 2022 Views 19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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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3-06

광야의 유혹과 우리 시대의 시험 (26:1~11, 10:8b~13, 4:1~13)

2022.03.06. 사순절 (1)

 

[광야시험과 신명기의 고백]

오늘은 목회기도 대신 며칠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우리의 마음을 모아 세 분이 평화와 민주주의, 생태적 미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혼전을 거듭하는 대통령선거만이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중첩된 여러 상황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점을 지나고 있는 코로나 사태도 그러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한 내전이 1년 넘게 진행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전쟁의 여파가 지구촌 곳곳에 미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울진에서 시작된 산불이 주변에 크게 번져 근심이 큽니다. 사순절에 묵상하는 그리스도의 수난이 우리 삶에도 깊이 들어와 있는 것만 같습니다.

기독교교회는 사순절 첫째 주일에 예수의 광야시험에 관한 본문을 묵상해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서 세 곳 모두 나오는데, 그것은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 그 삶을 준비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은유에 가깝습니다. 악마의 세 가지 시험에 관한 예수의 대답은 모두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복음서 기록자는 무언가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봅니다.

오늘 제1성서 본문인 신명기 26장은 신명기 법전’(12~26)으로 불리는 내용의 결론에 해당합니다. 여기에는 고난의 시대를 거친 사람들의 원초적인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5~10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학대와 억압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왔다는 고백이요, 따라서 노동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고, 땀의 산물을 다른 민족과 함께 나누며 살겠다는 다짐이 이어집니다.

평온하고 순탄하기만 한 역사와 삶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혼돈과 실패 속에서도 진실을 찾아가는 역사, 유혹과 방황을 거치면서도 생명을 추구하는 삶에는 보람이 있습니다. 성서를 기록한 집단 가운데 그것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신명기 사가(史家)’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신명기서와 이어지는 역사서를 기록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나라의 패망과 포로기의 고통을 거치며 체득한 지혜로 역사를 해석합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내용은 오랜 시기를 거치며 형성된 집단적인 고백과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의 간략한 기록을 늘리고 잘 구성해서, 그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들려줍니다. 주목할 점은, 악마의 유혹에 맞선 예수의 대답을 모두 신명기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서 기자는 역사의 고비를 지나며 진주처럼 만들어진 신명기의 언어를 예수의 입술에 담아 악마의 유혹에 맞선 진리의 응답으로 구성합니다.

예수가 받은 시험은 삶에서 중요한 세 가지 유혹이었습니다. 첫 번째 돌로 빵을 만드는 것은 경제적 풍요와 연관되는 것이요, 두 번째 권세와 영광을 향해 절하는 것은 정치적 권력에 관한 것이요, 세 번째는 천사마저도 동원하는 기적은 사회적 능력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유혹을 이겨냅니다. 우리 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이런 유혹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광야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 복음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초연하게 극복하는 예수의 신적인 능력을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받은 시험은 어떤 신적인 존재만이 홀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받는 유혹이요, 또한 모든 사회가 맞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만일 광야시험에 나온 삶의 세 가지 근본문제와 인간을 향한 절대적 물음을 단지 종교적인 주제로만 여기고, 현실의 실제 삶이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만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을 도리어 과소평가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회적 영성에 관한 교육가인 파커 팔머는 그것을 가리켜 부족한 존재가 되려는 유혹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근본문제는 예수와 같이 위대한 분이나 감당하는 것이지 우리 몫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인데, 어쩌면 그것이 광야시험에 등장하는 악마의 유혹에 담긴 본질적인 의도라고도 하겠습니다.

저는 광야시험에 관한 본문을 묵상하면서, 대통령선거 국면을 지나는 우리 사회를 향하여 더욱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요청을 듣게 됩니다. 선거 결과를 며칠 앞두고 누가 이길 것인지 궁금합니다만, 이번 선거를 통해 과연 우리 사회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우리가 지지하는 후보를 통해서 무엇을 열망하고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시험 : 풍요의 능력으로 너를 증명해 보라]

악마가 던진 질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 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돌로 빵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해 보라는 이 말은 매우 강력한 유혹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능력을 끝까지 끌어올려서 자신을 증명해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악마의 이 유혹은 딜레마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증명해보라는 요구에 응답하는 순간, 증명되는 것은 자신의 참된 정체성이 아니라 악마의 요구에 순응해버린 자신만 남게 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너의 너 됨이라는 그 정체성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기준으로 악마가 제시한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그것은 그 시대가 욕망하는 가치 기준입니다. 그 기준으로 볼 때, ‘돌로 빵을 만드는 풍요의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을 거절합니다. 예수는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에 대해서 악마와는 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돌로 빵을 만드는 것이 그 자격요건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 대신,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이 대답은 철학적인 발언으로는 멋있게 들릴지 몰라도, 사회적 삶에서는 사실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가진 통념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로 비난받기 쉽습니다. 돌로 빵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세계에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는 말은, 마치 요구받는 것을 피해 가는 변명처럼 들릴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시대가 그렇지 않습니까? 만일 어떤 대통령 후보자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면, 그는 외면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가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자본주의 문명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무엇보다 빵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빵의 규모를 키우는 성장에 몰두하는 사회에서, 돌로 빵을 만드는 일은 찬사받을 기적의 재테크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왜 후보자로 저런 인물이 나왔을까를 탓하기에 앞서, 왜 그들을 두고 이 사회가 대결을 벌이고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국가의 장래를 겨루는 대통령선거에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보면서도 군축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기후위기 앞에서도 국민소득 5만 불의 약속만 다투어 내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해답이 없을까요?

돌로 빵을 만드는 기적이나 편법에 유혹당하는 사회의 대통령 후보자는 욕망을 대변하는 정치적 아이콘일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고 하는 목소리는 참으로 처연하게 들릴 것입니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사실은, 누가 돌로 빵을 만들 수 있는 기적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보다는, ‘돌로 빵을 만드는 기적보다 더 중요한 삶의 진실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회의감에 시달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살만한 세상이요, 정의로운 사회입니다.

 

[두 번째 시험 : 참된 의()에 이르려는 마음이 있는가?]

악마는 이어서 두 번째 시험문제를 냅니다. 나에게 절을 하면, 이 세상의 권력과 영광을 네게 주겠다! 이런 유혹은 권력만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달콤한 제안일 것입니다. 욕망에 눈이 멀어서 사회적 상식과 법규를 무시한 채 탈법과 조작과 야합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 어제 했던 말을 오늘에 바꾸고, 교활한 마음을 정의롭게 보이도록 포장하여, 자신의 영혼마저 속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태연히 저지르는 자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욕망의 사람들은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악마와 손을 잡으면 권력과 영광을 쉽게 얻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권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자들은 기이한 논리로 무장합니다. 세상살이에서는 진실을 추구하기보다 악마에게 의존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에게 명예와 권력을 악마가 줄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시민을 학살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한편에서는 그런 자들을 칭송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 의해 죽임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얼빠진 자가 있습니다. 진실의 시간을 살아보지 못한 자가 보이는 희극 같은 비극입니다. 그것은 비윤리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거짓의 망령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권세와 영광을 줄 테니 절하라는 악마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그것이 윤리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을 호도하는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악마에게 절을 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기에 앞서, ‘될 수 없는 것에 기대를 거는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는 삶에 필요한 명예와 권세는 하나님을 통해서만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신명기의 오래된 지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따라,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예수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고통스러운 세계가 지탱되는 것이요, 굴절 많은 역사가 지속하는 것이겠지요.

인생의 참된 명예와 권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오늘 로마서 10장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고백처럼,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는사람입니다. 의에 이르는 믿음을 심장에 담고, 구원에 이르는 고백을 입술에 담은 사람들, 그들이 얼마나 그립습니까?

바울의 그 고백 역시, 신명기의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30:14, 10:8b) 고백하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차별이 없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꿈도 꺾이지 않는 것이겠지요. (10:12)

 

[세 번째 시험 : 기적의 유혹에 대한 분별에 대하여]

세 번째 시험은 기적에 관한 유혹입니다. 악마는 이렇게 시험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하나님이 너를 위해 천사들이 지키게 하시지 않겠느냐?’ 이 유혹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마의 유혹은 사람을 하나님처럼 높이는 것으로서,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시험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모두 시험당하며 삽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유혹으로부터 시험당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은 자신을 모르는 것입니다. 불의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높이고, 불의의 시대일수록 기적의 약속에 더 쉽게 유혹당합니다. 사람은 유혹당하고, 시대 또한 시험당합니다. 왜 반복해서 시험을 당해야 하는지 묻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예수 역시도 시험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왜 이렇게 시험당하는지에 관한 의구심이 드는 선거국면입니다. 촛불 혁명을 거친 이 사회가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탄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시험을 당했다는 것, 거기에는 심오한 진실이 있습니다. 성령에 이끌린 사람이 광야의 시험을 당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4:1) 시험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자기 관념에 빠진 사람은 시대가 던지는 시험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가진 사람은 악마의 입을 통해서 표현되는 시험으로부터 면제되는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시험을 뚜렷하게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삶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유혹을 분별합니다. 예수의 광야시험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는다는 것은 안전하지 않고 위험하다는 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때때로 굶주림과 목마름과 두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파커 팔머, 일과 창조의 영성, 189)

굶주림과 목마름, 위기의 시대를 느끼는 두려움은 진실을 찾는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입니다. 문제는 그 속에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것이냐, 역사로 체득한 지혜로 헤쳐갈 것이냐 하는 선택입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시험이자 도전입니다. 선거공학이 주도하는 시간이 지나가면, 우리가 맞은 삶의 과제는 더 환히 보이겠지요. 사순절을 보내는 동안, 예수의 믿음과 고백이 우리 안에서 더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행진이 이어지기를 빕니다.

잠시 침묵합시다.

 

[파송사]

 

역사를 헤쳐온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을 들으십시오.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광야의 시험을 당할 때, 평화와 민주주의, 생태적 미래를 향한 과제는 더욱 간절합니다. 눈앞의 현실에 현혹되지 않고, 역사의 고비를 넘어오며 가꾸어온 믿음을 지키면서 힘차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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