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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말씀과 진리 | 김희헌 | 2022-01-23

by 김희헌 posted Jan 23, 2022 Views 12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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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1-23

말씀과 진리 (8:1~3,5~6,8~10, 고전 12:12~31a, 4:14~21)

2022.01.23. 주현절 3.

 

[다시 소환된 두 단어, 말씀과 진리]

지난 주일 정기공동의회를 대신하여 당회와 목회운영위원회 연석회의를 가졌습니다. 작년을 결산하고 올해를 계획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교회를 위한 소중한 손길과 정성이 많이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신앙공동체를 위해서 힘써주신 교우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해를 계획하며 기억할 일 가운데 하나는, 안병무 선생의 신앙 유산을 새롭게 이어가는 것입니다. <심원안병무선생기념사업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안 선생님의 제자들 중심으로 20여 분이 활동합니다. 이 단체에서 금년 안 선생님의 탄생 백 주년을 맞아서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기념학술대회를 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올해에는 국내대회를 하고, 내년 우리 교회건축 후에 3층에 위치할 <안병무 도서관>의 개관식에 맞추어, 국제학술대회를 열자는 의견이 모였습니다.

이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판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올해 국내대회를 민중신학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진보적인 신학 단체가 함께하여, 안병무의 정신으로 새롭게 한국신학을 펼치는 기회를 만들자는 의견이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국내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17개 단체가 힘을 보태겠다고 모였습니다. 민중신학을 비롯하여, 여성신학, 통일신학, 생태신학, 퀴어신학, 노동신학, 과학신학, 종교철학, 종교 다원주의, 사회적 영성과 기독교 사회운동 그룹까지 함께 안병무의 신학적 유산을 계승한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기로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제 맘속에 드는 물음이 있습니다. 안병무의 정신은 무엇일까? 저는 그것을 예수의 말씀으로 공동체를 세워가는 실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안병무 선생은 교회를 사랑했지만, 교회주의자는 아니었고, 신앙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헌신했지만, 종교의 장벽을 넘어서는 사상을 펼쳤습니다. 우리 교회를 비롯하여 네 개의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47년 일신교회, 1953년 향린교회, 1975년 갈릴리교회, 1987년 한백교회), 그 교회의 주요 설교자였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가 얼마나 예수의 말씀을 진지하게 추구하였고, 거기서 발견된 진리에 철저했는지를 압니다.

그를 기억하며 뽑아낸 두 단어가 말씀진리’, 오늘 하늘뜻펴기의 제목입니다. 하지만, 이 낱말은 너무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그 의미가 쉬이 퇴색되곤 합니다. 특히, 최근 탈근대주의라는 인문학의 파고를 지나면서, ‘진리라는 말은 과거의 절대적인 성격을 잃고, 개별적이고 상대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주장의 수단일 뿐이지 헌신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저마다 진리를 주장할 뿐,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헌신의 동력은 옅어졌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는 진보신학도 사람의 영혼을 불러일으켜 세우는 힘을 잃은 듯합니다. 사회적 영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교회도 종교 본연의 멋과 맛을 우려내기보다는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에 집착해서 오합지졸이 되어가는 것 같은 자괴감도 듭니다. 위기의식이 깊었기 때문인지, 이번에 안병무의 이름으로 호출을 받은 많은 신학 그룹이 호응하고 있습니다.

안병무는 정치적인 이유로 두 번 강제 해직되어서 (19756~19802, 1차 해직 / 19808~19847, 2차 해직), 9년간 강단에 서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시기에 더욱 그의 신학이 민중론을 기반으로 활짝 피어났습니다. 그의 사상에는 종교와 정치가 깊은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말씀을 붙들기 위한 종교적 분투와 진리를 펼치기 위한 정치적 책임이 서로 균형을 이룬 것입니다.

흔히 정교분리, 정치와 종교는 분리돼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억압적인 종교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근대국가의 정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삶이 연결되어 있듯,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같은 것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정치가 외적으로 펼치는 운동을 일컫는다면, 종교는 내면적 성찰 운동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석헌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정치가 썩을 때 구원하는 것은 종교요, 종교가 시들 때 건져주는 것은 정치이다. 인간사회를 간교한 종교의 손에서 건진 것은 현실주의 정치였다. 만일 민족주의 정치의 반항이 없이 로마 가톨릭교회 그대로 내려왔다면 서양은 어찌 됐을까? 또 반대로 허다한 폭군의 발밑에서 인간을 건져낸 것은 종교다. 잔인무도한 그들의 가슴과 눌리는 민중의 가슴에 정신의 불을 지른 종교가 아니었다면 인간은 짐승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정치와 종교” 1959, 함석헌 저작집 2:89)

정치와 종교가 각기 고유한 과제를 갖고 있지만,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결합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표층에서 연결되면 부패의 온상이 되기 쉽고, 심층에서 결합하면 변혁의 동력이 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종교,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치에는 말씀이 살아있고, 진리가 약동합니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진리의 기점 / 누가복음 414~21]

오늘 복음서 본문은 예수께서 어떤 말씀을 붙들고 살았는지, 그가 진리의 기점으로 삼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가서, 회당에 들어가 펼친 가르침을 담은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서 세 곳 모두 나옵니다. (13:54~58, 6:1~6). 그런데,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18~19절에 인용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고향 나사렛에서 발표된 이 예언의 말씀은 나사렛 선언또는 나사렛 강령으로 불립니다. 예수 운동의 핵심정신을 알려주는 이 강령은 종교적 고백만도 아니요, 정치적 선언만도 아닙니다. 삶에서 종교와 정치가 어떻게 함께 가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선언은 본래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던 공동체에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인용한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기를 마치고 돌아온 귀환 공동체에서 활동했던 제3이사야의 예언(61:1~2)입니다. 이 예언은 그 이전 시대부터 전해져온 예언에 뿌리를 둔 것으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이루어 낼 종에 관한 노래’(42:7)와 이어집니다. 이런 예언의 도도한 흐름이 예수에게 와서, 하나님 나라 운동의 방향을 알려주는 좌표가 되었습니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이 이야기를 복음서의 앞부분에 배치하여 취임설교형식으로 전합니다. 그것은 예수운동의 출발점, 그가 살아간 진리의 기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에서 그 말씀과 진리는 시련을 겪습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고향 사람들의 반대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에게 기적의 정치를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핍이 즉각 충족되기를 원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기적의 종교힘의 정치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나사렛 선언>은 걸림돌이 됩니다.

모든 공동체 운동은 구체적인 삶의 무게를 안고 진행됩니다. 신앙공동체 운동에서 예수의 선언은 좌표가 되지만, 또한 시련을 주기도 합니다. 성서 속의 신앙공동체는 어떻게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갔을까요?

 

[말씀 앞에서 / 느헤미야서 81~3, 5~6, 8~10]

느헤미야서는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귀환 공동체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현실은 불안정과 갈등으로 파편화돼 있었고, 미래는 불투명했습니다. 이때 공동체를 이끌던 느헤미야는 온갖 어려움을 뚫고 오십여 일만에 성벽공사를 마칩니다. 그리고 나아갈 길을 찾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였을 때, 또 다른 지도자 에스라는 율법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서 진리의 길을 찾자고 제안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두가 광장에 모여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에스라가 읽는 토라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그 말씀으로 감동하여 울었습니다. 이런 모습에는 그들의 고단한 현실이 담겨있고, 미래를 향한 갈망이 겹쳐있습니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불일치로 인해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나아가야 할 진리의 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날은 주님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맙시다.’ 비록 현실이 힘들고 버거울지라도, 주님의 날에 기쁨을 찾고 힘을 내자는 격려입니다. 느헤미야 역시 이렇게 권면합니다.

돌아들 가십시오. 살진 짐승들을 잡아 푸짐하게 차려서, 먹고 마시도록 하십시오. 아무것도 차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먹을 몫을 보내 주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의 거룩한 날입니다. 주님 앞에서 기뻐하면 힘이 생기는 법이니, 슬퍼하지들 마십시오.”

이 말씀은 고난의 현실을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씀에 힘입어서 공동체를 세워가자는 권면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공동체는 말씀 앞에자신을 세우고, 거기에서 오는 힘으로 살아갔습니다.

또 다른 공동체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공동체의 삶 / 고린도전서 1212~31a]

고린도전서는 분열의 아픔을 겪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바울의 격정적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인 12장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먼저, 각 사람이 지닌 다양한 재능을 열거하고, 그것을 성령의 은사라고 말합니다. 저마다 지닌 다양한 재능과 소질을 축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로 주어진 이 다양성은 더욱 중요한 목표를 향해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 ‘공동 유익을 위한 것’(7)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의 삶을 몸과 지체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 바울은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합니까? 몸과 지체의 비유는 해방을 지향하는 평등공동체의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 해방공동체에 관한 바울의 사상이 13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로마 제국이 이룬 차별과 폭력의 체제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려는 교회의 꿈을 말하는 것이고, 그 꿈의 기원은 나사렛 강령에서 시작된 예수의 말씀일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고통의 현실을 지나고 있습니다. 서로의 관계는 갈라져서 세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고전 1:12)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것은 공동체 안의 갈등상황입니다. 대부분 공동체가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바울은 그 갈등상황을 몸의 각 지체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발이 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하고 말하면서, 서로 거부하는 상황을 지적합니다. 또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하고 말하면서 대립하는 현실을 보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전환적 문제의식을 던집니다.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각각이 서로 지체라면,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은 스스로 대답하기를, ‘각각의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 생각이 중요합니다. ‘지체와 몸의 관계에 관한 믿음이 사라질 때, 공동체에 문제가 나타나고, 이 생각이 분명해질 때 문제의 해결책이 보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삶에서는 늘 풀어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지체와 몸의 관계를 말하면서, 억압적인 기존 질서를 정당화하는 경우입니다. 몸을 위해서 각 지체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더 약한 지체를 요긴하게 여기고, 덜 명예스러운 지체에 더 풍성한 명예를 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를 더 아름답게 꾸며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요, 그것이 공동체를 지켜가는 정신이라는 것이지요.

볼품없는 지체를 공동체에서 잘라내는 일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 몸을 죽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두 가지 규칙을 제안합니다. 하나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분별하고, 서로 관계 속에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28~30) 다른 하나는 더욱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는 것입니다. (30a), 이 일은 말씀과 진리 안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큰 은사를 구하면서 자라나야 합니다.

여러 모양의 공동체가 존재합니다만, 기독교 신앙공동체는 민감한 개인의 결단과 공동체 감각으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신념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각 사람은 자신의 결단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는 각자가 판단하여 받지만, 받고 나서는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속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몸을 이루며 사는 삶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영화 대사를 마지막으로 나누며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한 사람이 묻습니다. 우리가 아는 영어의 평범한 인사입니다. How are you? (어떻게 지내세요?) 상대방이 대답합니다. “I try to live better.”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에요) 말씀과 진리 안에서 더욱 자라나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파송사]

우리에게 예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진 기쁜 소식입니다. 그 가르침을 따라 살아간 신앙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더욱 큰 성령의 은사를 구하면서, 예수의 말씀을 진지하게 추구하고, 공동체가 함께 가꾼 진리를 따라 풍요롭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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