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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육신이 된 말씀 | 김희헌 | 2021-12-25

by 김희헌 posted Dec 25, 2021 Views 10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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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1-12-25

육신이 된 말씀 (52:7-10, 1:1-4, 1:1-14)

2021.12.25. 성탄절

 

[오늘의 성탄]

성탄절 아침,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은혜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성서는 예수 탄생에 관한 다양한 기억을 전해줍니다. 훗날 신학적으로 정리되기 전에 생겨난 아기 예수에 관한 전설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낮고 천한 자리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에 주목하면 놀라운 지혜를 얻게 됩니다. 구원의 길은 낮은 곳에 있으며, 평화는 낮아질 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점은 고통을 겪는 이웃과 함께할 때 분명히 느낍니다.

지난 목요일 밤 <416가족과 함께하는 온라인 성탄 예배>는 슬픔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8년 전 세월호 침몰사고가 났을 때, 유족들은 위로의 소리조차 들을 수 없고, 듣기도 힘든 슬픔에 놓였습니다. 그 절망의 자리에서 터진 울음소리는 이 땅에 태어난 아기 예수의 울음소리처럼 기억되고 있습니다. 촛불 정부 집권 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상조차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구원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가장 굳게 지켜지는 자리는 바로 유족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어제는 사회부가 주관하는 성탄 이브 행사로 서울 시내 투쟁현장을 돌아보며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고용노동청 앞에서 아시아나 KO 노동자들과 기도회를 드렸습니다. 코로나-19를 빌미로 부당해고를 당한 이들이 590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긴 투쟁과정에 정년이 지난 해고노동자는,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증언에서 추운 겨울 거리를 맴도는 비애를 느꼈습니다. 명동2지구재개발지역에 있는 교우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 을지OB베어를 차례로 들러서 성탄찬양을 불렀습니다. 바로 그곳에 오늘 우리 시대 예수가 탄생한다는 믿음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의 의미를 배운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평화의 왕이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평화는 외면받는 여행자의 고단함에 묻혀서 오고, 권력에 위협당해 쫓기는 모습으로 오며,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옵니다. 그것은 인류의 기억이자 바람인 것 같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기다리는 자리 / 이사야서 527~10]

오늘 이사야서 본문은 평화의 왕에 관한 오래된 예언을 이렇게 전합니다.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하는구나.”

이 예언은 훗날 시편에서 제왕시’(帝王詩)라는 장르로 발전한 유명한 본문(98:1~4)입니다. 이 예언을 권력에 대한 찬양으로 오해하지 않으려면, 그 배경이 되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이 예언을 전달받은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서 약속한 하나님의 구원이 오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52장은 포로기 예언자 제2이사야의 예언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포로기가 끝날 무렵, 오랜 포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은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하고 부르는데, 폐허가 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 하늘의 약속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7~10절은 구원의 약속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두 개의 명령문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먼저, 본문 앞에는 격려의 말씀이 나옵니다. “너 시온아, 깨어라, 깨어라! 힘을 내어라.”(1) 그리고 본문 뒤에는 촉구가 나옵니다. “너희는 떠나거라, 그곳에서 떠나 나오거라.” (11) 이렇게 오늘 본문은 고통받는 포로민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주어진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기다리는 자리는 고난의 자리, 낮은 자리입니다.

이 구원의 약속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성서는 엄격한 현실주의라고 할까요, 정복주의 철학에 관한 통렬한 패러디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제2이사야 예언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 뒤이어 나오는 고난받는 종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구원자의 모습에 관한 묘사로서, 역사에 화육하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원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제2이사야의 예언은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분에 관한 성서 전통을 다시 세우고, 그 약속의 말씀이 이후 신앙공동체의 좌표로 작동합니다. 그것은 정복주의 사상과는 다른 화해와 섬김의 전통입니다.

 

[화육의 말씀 / 요한복음 11~14]

지난달 새로운 성서번역본이 나왔습니다. <새한글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신약과 시편이 먼저 출간되었습니다. 구약은 현재 번역 중이라고 합니다. 김창락 목사님이 책임번역자로 참여하셔서, 지난주에 문소영 권사님을 통해서 한 권 전달해주셨는데요. 이 번역본은 원문에 충실하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쉽고 간결한 어휘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오늘 요한복음 본문 중 첫 다섯 절을 <새한글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하나님이셨다, 그 말씀은. 그분은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다. 생겨난 것 가운데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 어둠은 빛을 눌러 이기지 못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에 관한 재미있는 전설을 전해주는 마태와 누가와는 달리, 요한은 신학적인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철학의 언어를 빌어서 말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당시의 철학과는 방향이 다른 성육신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요한은 성탄의 의미를 로고스’(Λόγος)싸르크스’(σρξ)가 된 사건,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사건에서 찾습니다. 그것은 당시 지배자들의 억압주의 정신에 맞선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지배철학은 육신싸르크스를 경멸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천한 몸뚱이 싸르크스영혼의 감옥처럼 여겼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싸르크스를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며칠 전 모 대통령 후보가 했던 발언과 비슷합니다. 윤씨 성을 가진 그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자유를 모른다.’고 말했죠. 우리는 그 말이 인간의 깊이와 진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압니다. 권력만을 추구해온 사람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자리에 서서 입만 열면 스스로 화근이 됩니다. 그의 모습을 보면,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느냐를 판단하게 되기보다, 인생을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되지요.

요한은 9~13절에서, 말씀을 대하는 두 부류의 삶을 비교합니다. 먼저, ‘말씀을 알아보지도 맞아들이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맞아들이고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특권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이 아니라, 육신이 된 말씀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화육(化肉)이 된 말씀, 몸을 이룬 평화, 바로 이것이 요한이 전하는 성탄의 의미입니다. 말의 홍수 속에서 말씀의 중요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더욱 그리운 성탄의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 삶에 탐욕과 증오가 빚어낸 말들, 결핍과 갈증으로 어긋난 말이 있다면, 멈추고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빛으로 화육하는 말씀은 끝까지 지켜서 우리 삶을 밀고 가야 하겠습니다.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예배에 참여하신 분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있음을 압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는 거룩한 공간을 만들며, 한마음으로 걸어갑시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파송의 기도]

생명이신 주님,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생명이 되어 주소서.

참 빛이신 주님, 어두운 우리 맘을 환히 밝히시고, 주님을 모르는 어두움을 몰아내 주소서.

말씀으로 오시는 주님, 우리의 삶과 뜻을 통해서 피어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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