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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주님의 열심 | 김희헌 | 2022-12-25

by 김희헌 posted Dec 26, 2022 Views 12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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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12-25

주님의 열심 (9:2~7, 2:11~14, 2:1~14)

2022.12.25. 성탄절, 송년주일

 

성탄과 함께 맞은 송년주일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지요? 성탄의 기쁜 소식이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해를 되돌아보니 보람을 느낀 일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기억도 많습니다. 긴 코로나 사태로 인한 불안정한 사회적 환경,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하는 국제질서, 재발하는 참사와 가난한 이들의 죽음으로 인한 사회적 고통에 대한 기억이 지나갑니다. 이런 외부적인 어두움만이 아니라, 각자의 말 못 할 슬픔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보내고, 공들인 계획이 좌절되고, 뒤틀린 관계로 인한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삶이란 고통의 바다인가도 싶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이 지나고 나면 어두웠던 시간이 주는 교훈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고통이란 언제나 홀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 고스란히 있기에, 낭만적으로 신비화될 수 없는 엄연한 아픔의 무게가 있습니다. 특히, 해결하기 힘든 절대적 어둠을 동반하는 고통은 우리를 삶의 비애 속으로 끌고 가기도 합니다. 이런 삶에 성탄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어떤 답을 주실까 하는 고민이 생깁니다.

성탄은 분명히 고통 속에 희망을 주는 무엇일 것입니다. 성탄은 안정적인 삶에 또 하나의 자족을 제공하는 일이 아니요, 반대로 고통으로 파괴된 삶에 또 하나의 무게를 더 하는 잔인한 진리도 아닐 것입니다. 성탄이 구세주의 탄생이라면, 그것은 고통의 세계에 던져진 하늘의 진실에 관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성탄의 의미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의 문화가 만들어 낸 현상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정치와 경제가 얽혀 구성된 힘의 세계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멸시를 당하고, 고통당하는 이웃과 함께하는 행동은 위험한 일로 여겨집니다. 성서는 그것을 가리켜 힘으로 세워진 로마의 평화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의 성탄은 승리주의 이데올로기 위에 건립된 평화는 아닙니다. 하늘이 주는 평화는 고난받는 자리에 피어나는 평화, 버림받은 광야와 같은 삶에 동트는 평화라고 성서는 가르칩니다. 그것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가 된다고 말합니다.

 

위태로운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 이사야는 어둠 속에 비치는 빛을 구했고, 그것이 올해 성탄절에 함께 읽은 말씀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9:2) 같은 시대를 살던 농부 예언자 미가도 지금은 어둠 속에 있지만, 주님께서 곧 나의 빛이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7:8)

전쟁과 폭압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희망이 된 것은 하늘의 평화였습니다. 그 평화가 임하면 압제의 몽둥이가 꺾이고, 침략자의 군화와 군복이 땔감으로 불에 탈 것이라고 구체적인 모습을 말합니다. 이사야는 그 평화의 상징이 될 한 아이의 탄생을 예언하고, 이 아이가 새로운 시대, 공평과 정의의 나라, 하늘의 평화를 이루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전쟁의 참화와 압제의 어둠을 뚫고 비치는 빛을 볼 수 있을까요?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요? 이런 물음이 들 때, 이사야는 그 대답으로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저는 이 말씀에서 성탄을 가능하게 하는 실제적인 동력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열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키낫 야훼’(qinat Yahweh), 이사야는 이 주님의 열심에서 자신이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지고한 존재인 하나님이 이 세상의 문제에 굳이 관여하시려는 것일까요? 왜 전지전능한 존재가 열심을 내야 할까요? 왜 자기 완결적인 존재가 세상의 고통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는 신()이라면 열심을 낼 필요도 없고 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서는 야훼를 가리켜, 정의와 공의에 목마른 존재, 평화와 사랑에 불타는 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에 관한 이런 생각은 우리의 마음을 바꿉니다. 하늘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주님의 열심은 절망 속의 위로요, 어둠 속의 빛이 됩니다.

누가복음이 전하는 성탄의 소식이 그러합니다. 그 이야기는 황제의 칙령으로 이루어진 호적등록에 관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고향으로 가야 할 때, 가난한 젊은 부부가 여행 중에 첫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인 장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이라는 설정, 아이의 보금자리가 가난과 비천의 상징인 구유이고, 아이의 탄생 소식은 들에서 밤을 지내던 목동들에게 주어집니다. 이런 신학적 장치들은 하늘의 평화에 관한 성서의 이해를 반영합니다. 이사야의 말을 따른다면, ‘주님의 열심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천사가 목동들에게 전한 소식은 한 아이의 탄생 소식이었는데, 그 내용은 이상하기 그지없습니다. 구세주로 오신 분이 짐승의 밥그릇인 구유에 누였고, 그것이 메시아에 관한 하늘의 표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하늘의 평화를 보여줍니다. 세상의 열심은 위로 올라가지만, 하나님의 열심은 아래로 흘러갑니다. 성서는 그것이 하늘의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가 되는 성탄의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탄의 소식을 얻은 사람들의 믿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디도서는 그 성탄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은 우리를 교육하는 은혜라고 일러줍니다. 이 은혜는 세상의 정욕(worldly passion)을 버리게 하고, 대신 삶을 신중하고(σωφρόνως, discreetly), 의롭고(δικαίως, righteously), 경건하게 (εσεβς, piously) 살도록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열심을 본받아 살아가는 삶에 관한 것입니다.

디도서 본문은, 그 삶이 성탄으로 오시는 분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신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내어주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로 삼으시려는 분이라고 디도서는 말합니다.

성탄은 기쁜 소식이요, 이 기쁨은 변화를 기대하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먼저 자신을 새롭게 하여 삶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준 첫 번째 과제는 회개하라(μετανοετε)”는 것이었습니다. 성탄을 기다린 사람들이 귀담아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 역사는 파괴와 정복의 시대를 너무 오래 지나왔고, 우리 삶은 이 질서에 익숙합니다. 성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는, 역사 앞에, 이웃 앞에, 자연 앞에 참회해야 합니다. 성탄의 말씀 앞에 바로 서기 위해 우리 삶과 존재가 믿음이 되도록 다시 힘을 내어 나아갑시다.

한 해를 마감하는 우리 삶에, 어둠의 빛이 되는 성탄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평화의 소식으로 오시는 주님의 열심이 우리의 희망이요, 고난 많은 이 땅에 주어진 하늘의 선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파송사]

어둠 속 빛으로 오시는 분을 기다린 이사야는 하늘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들판의 추위와 고통 속에서 목자들은 땅에 임할 평화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통과 아픔을 위로하는 하늘의 평화가 우리에게도 오시기를 빕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는 하늘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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