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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서로, 사랑 | 이민하 | 2023-08-27

by 이민하 posted Aug 29, 2023 Views 9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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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08-27

서로, 사랑

(요 13:34-35)

2023.08.27. 성령강림 후 열셋째 주일/교회교육주일

 

8월의 끝자락에서 교우 여러분께 평안의 인사를 건넵니다. 모두 안녕하시기를 빕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처서가 지나니 마치 마법처럼 공기가 달라지는 것이 참 경이롭다가도, 이토록 빠르게 변해가는 기후 상황에, 절기가 언제까지 자신의 때를 지킬 수 있을지 씁쓸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교육부의 세 부서는 지난 7-8월 동안 여름들살이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번 여름들살이의 주제는 “서로 사랑해요”였습니다. 주제에 맞춰 채택된 본문이, 아까 우리가 함께 읽은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서, 예수는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새 계명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고민을 가지고 들살이를 풀어냈는지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영상)

 

들살이를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습니다. ‘서로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세 부서에선 각 연령에 맞춰 이것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해서, 영상으로 보신 프로그램 몇 가지를 설명해드리려 합니다.

 

유아/유치부는 아이들이 만지고, 맛보는 등 감각을 통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들살이를 구성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의 순례길’이라는 프로그램인데요. 향우실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한 가훈을 토대로 부채를 꾸미기도 하고, 도서관에서는 여러 주스를 마시고, 음미하며, 아이들이 사랑이 무슨 맛인지를 상상하게끔 했습니다. 또한, 옥상에서는 볼링 게임을 통해 맛있는 과자들을 받으며, 아이들이 넘치는 사랑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 만들기입니다. 이전 프로그램에서도 보셨듯, 아이들뿐만 아니라 평소에 예배를 함께 드리는 양육자분들도 들살이에 함께 해주셨지요? 아이들은 자신과 또 가족의 소원, 다짐을 모아 십자가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서로의 십자가를 보며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는 세족식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장면이 등장하지요? 유아/유치부에서도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발을 씻겨주며, 그 섬기는 사랑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번 어린이부 들살이에는 협동 활동이 많았습니다. 어린이들은 손에서 손으로 물을 옮기면서, 자유자재로 흐르는 물을 느껴보았습니다. 손에서 손으로 물을 옮기면 정말이지, 물이 줄줄줄 흐릅니다. 그를 통해 마음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그렇지만 합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준비해주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들은 힘을 모아 탁구공을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옮겨보기도 했고, 같이 공을 던져 넣으며 협동심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같이 물감 거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다채로운 색과 모양을 띠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색깔들이 섞여들어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세족식과 애찬식, 축복식을 진행했습니다. 어쩌면 글이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강렬한 힘을 가진 듯합니다. 누군가의 발을 씻겨보고, 또 다른 사람의 입에 빵을 넣어주는 일이 처음인 어린이들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찬양을 부르며 마음을 연결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청소년부는 조금 더 심도 깊게 ‘사랑’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던 듯합니다. 영화 ‘원더’를 ‘서로 사랑’의 관점에서 보고, 또 생각을 나눴는데요. 사랑의 모양은 어떠한지, 그리고 사랑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다음날은 조별로 간단한 연극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1-12절을 중심으로 한 연극이었는데요. 한 조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반성, 도전, 용기’ 이렇게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해석해 연기했고, 또 다른 한 조는 친구와의 약속과 신뢰가 깨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사랑으로 극복해나가는지를 연기했습니다.

마지막은 짝기도인데요. 이는 청소년부 구성원들이 일대일로 만나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으로, 매해 들살이마다 진행해왔던 나름의 전통적인 행사입니다. 약 3분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기도합니다.

 

각기 형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부서별로 치열하게 사랑을 고민했다는 걸 느끼셨을까요? 정말이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들살이가 마냥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린이부에서는 서로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그러다 마음 상해서 울기도 하고, 저는 그 가운데에서 상한 마음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 절절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그렇게 마음 상해하다가도 어린이들은 다시 웃었습니다. 물풍선을 날리며 웃고, 큰 소리로 찬양하며 웃고, 같이 놀면서 웃고. 토라지고, 삐지고, 다시 웃고, 또 싸우고, 다시 놀고, 또 괜찮아지고.

 

교육부에 있다 보면 때때로 무언가를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물론, 방향은 중요합니다. 소위 말해 ‘명확한 답’을 아이들의 입으로 꼭 말하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서로 사랑’이라는 주제를 어린이들에게서 발견합니다. 어린 동생을 돌보는 정현이에게서, 친구들 사이를 중재하려고 애쓰는 태오에게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열심히 활동에 참여하는 별이와 달이에게서 사랑을 봅니다. 비록 제가 유아/유치부와 청소년부 들살이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림1.jpg

 

여러분, 이걸 해석할 수 있으신가요? 아까 알록달록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작품을 보셨지요? 어린이들이 그 종이를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모양대로 오려서, 이모티콘을 붙여 ‘서로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건 절대 해석할 수 없지요. 그런데 가끔은, 아니 실은 해석할 수 없어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게 말은 좋지만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지 이미 아시지요? 단 한 사람만 사랑하려 해도 고난이 시작됩니다. 나도 당신도 서로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조금 알 것도 같았습니다. 어쩌면 사랑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서로의 입에 빵을 넣어주기보다, 서로 알록달록 섞이기보다, 타인을 해석하는 일에 더 치중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말과 글을 통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함께 빵을 떼는 마음, 발을 씻겨주는 마음, 손잡고 같이 기도하는 마음. 나를 나누고 너를 듣는 그 마음이 우리에게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고백합니다.

 

‘서로’라는 단어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안에 수많은 마음, 소중한 마음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지체, 한 지체가 몸을 이루기 위해, 다시 말해 ‘서로, 사랑’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이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새 계명 ‘사랑’을 말하는 예수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이곳에 자리하는 이들 가슴 깊이 자리 잡기를 바라며,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가득한 우리, 향린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어떠한 글로도,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드높은 벽마저 무너뜨립니다. 입 안에 굴려지다 마는 모호함일지라도, ‘서로, 사랑’의 마음은 선연하고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이제 서로를 잇는 모험에 우리를 내던집니다. 주님, 지금 여기 함께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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