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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아브람처럼 다시 길을 나섭시다 | 김희헌 | 2023-06-11

by 김희헌 posted Jun 11, 2023 Views 11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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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06-11

아브람처럼 다시 길을 나섭시다 (12:1~9, 4:13~25, 9:9~13, 18~26)

230611. 성령강림절 2, 입당 및 창립 70주년 기념주일

 

오늘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를 향한 발걸음이 어떠셨는지요? 입당과 창립 70주년 기념 예배에 임하는 모든 분이 감격스러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작년 6월 말 광야 생활을 시작한 후로 2년간 외부에서 예배드리다가 이렇게 완공된 예배당에 앉으니, ‘드디어 집에 들어왔다.’ 하는 안도감이 듭니다. 교회 매각을 결정한 2018년부터 5년간, 이곳 내수동 부지를 매입하여 건축에 착수한 2020년부터 꼬박 3년간, 교우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특별히 건축위원의 노고가 컸습니다. 위원장으로 수고하신 홍영진 장로님, 1기 실무위원장으로 많은 난관을 해결해주신 김창희 장로님, 2기 실무위원장으로서 준공 승인까지의 촉박한 일정을 추진력 있게 완료해주신 채운석 장로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외에도 감사드릴 분들이 많은데, 나중에 헌당 예배드릴 때 격식을 갖추어서 우리 마음을 전하기로 하고요. 오늘은 교회 창립 70주년의 의미를 생각하며, 이 새 예배당에서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향린교회가 지난 70년간 걸어온 길은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걸어왔던 길과는 달랐습니다. 기품 있는 신앙의 선배들이 세운 창립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정직한 믿음의 공동체를 갈망하며 분투해 왔습니다. 그 열망은 무엇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제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신앙인의 마음이었습니다. 제도와 형식(평신도교회, 독립교회)은 시간이 흐르며 변했지만, 기독교 신앙의 근본 의미가 무엇인지, 신앙공동체의 존립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려는 정신은 뚜렷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마음이 앞서서 몸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분투를 이어온 삶에 어떻게 허물과 얼룩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짐에 묶여 있기보다는, 이제 산 역사를 새로 써 가야 할 시기를 맞았습니다. 아브람처럼 다시 길을 나서야 할 때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람의 이야기는 새 역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신화와 전설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아브람이 등장하기 전 인류 역사는 낙원의 길에서 멀어지며 패색이 짙어졌습니다. 에덴동산의 삶은 파괴되었고, 형제살해로 시작된 인류의 악행은 점차 커지다가 결국 홍수를 통한 심판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둠은 걷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류는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속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의 역사는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분열된 세계의 무게를 그대로 짊어지고 길을 떠났고, 그가 찾아 나선 새로운 길은 인간 실험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 실험은 하나님의 부름을 듣고 떠나는 삶의 실험입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부름으로 시작됩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하나님의 이 명령은 아브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에 울리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 4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브람은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고, 그의 삶은 믿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에게 믿음은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길을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길을 떠납니다.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세겜으로, 베델로, 네게브로, 그리고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계속 길을 떠납니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아브람이 이렇게 길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면, 제단을 쌓고 예배드립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쌓은 그 제단에 머물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만난 장소라고 해도 그것이 현재 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뿐이면 미련 없이 길을 떠납니다. 자신이 만든 제단에 머물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나는 이유는 과거의 하나님을 추억하기보다는 오늘의 하나님과 동행하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선택은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그것은 과거에 쌓아놓은 것에서 영광을 누리기보다는, 오늘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람에게 내려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길을 떠나라는 명령과 함께 다음과 같은 축복을 약속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오해합니다. 아브람이 길을 떠난 이유가 더 큰 축복을 얻으려는 데 있다고 말입니다. 만일, 그렇게 본다면, 아브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성서가 말하려고 하는 가르침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 종교가 축복의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종교의 본질은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엇을 축복으로 여기는가에 따라 종교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아브람이 길을 떠난 동기가 더 큰 축복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었다면, 그가 자신의 마지막 여정이라 할 수 있는 모리야 땅에서 산을 오르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아들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아브람의 그 맘을 안 바울이 로마서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바를 능히 이루실 것으로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지난 70, 향린은 아브람처럼 길을 떠났고, 이곳저곳에 제단을 쌓아 왔습니다. 이제 내수동에 다시 제단을 쌓았습니다. 새 제단을 쌓기 위해 재개발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2013년부터 숱한 난관을 거치면서 10년 만에 마침내 새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서 주의 영광을 찬양하겠습니다.’라는 마음은 누가복음이 말하듯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9:33).

우리가 제단을 쌓았다면, 이제는 다시 길을 나설 때입니다. 우리에게 길을 나서라고 부르시는 분은 예수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마태에게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은 아브람이 들었던 것이요, 그가 제단에 머물지 않고 길을 떠나게 한 부름입니다. 마태는 그 부름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9:13)

우리가 앞으로 길을 떠날 때는 이 말씀을 깊이 간직했으면 합니다. 예수께서는 호세아 예언자의 말을 인용한 후, 그것을 배우라고 합니다. 배우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배우는 곳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이는 일차적인 이유는 예수의 길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자아를 실현하는 곳이 아니요, 세상의 지식을 갖고 와서 남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예수의 뜻을 배우는 곳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교회는 새로운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본문을 보면, 모두가 죽었다고 여길 때, 예수께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집에는 피리를 부는 사람과 떠드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습니다. 이미 죽었다고. 그러나 예수께서는 잠든 이의 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그러자 그가 일어납니다.

새 예배당을 짓고 아브람처럼 다시 길을 떠나려면, 거룩한 배움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야겠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라고 말씀하는 예수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나야겠습니다. 제단을 쌓고 다시 길을 떠나는 교우 여러분의 삶에, 일으켜 세우는 예수의 손길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파송사] 일흔다섯 아브람이 길을 떠납니다. “네가 살던 땅과, 네가 난 곳과, 네 집을 떠나,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라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듣고 길을 떠납니다. 창립 70주년을 맞은 향린이 다시 길을 떠납니다. 제단을 쌓고, 예수와 동행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며,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 힘차게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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