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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ㅣ 김지목 ㅣ 2023-11-19

by 김지목 posted Nov 19, 2023 Views 7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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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11-19

 

하늘뜻펴기 20231119 창조절12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4:1-7  90:1-12  살전5:1-11  25:14-30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히브리 무리들은 모세와 아론의 인도 아래 야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인 가나안으로 탈출했습니다.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에 있는 시나이 반도를 지나는 데 40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노예의 실존에서 자유인으로, 그리고 야훼를 섬기는 이스라엘이라는 신앙공동체로 훈련한 기간이었습니다. 1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이 기간을 약 주전 1240년에서 1200년으로 추정합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입성한 히브리 공동체 이스라엘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탈향의 공동체는 이제 가나안 땅에 잘 정착해야 했습니다. 이주민에서 원주민으로, 광야생활을 하던 떠돌이에서 정착민으로 삶의 전적인 체질 변화를 이루어내야 했습니다. 한두 세대를 거쳐서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제국의 신이 아닌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로, 떠돌이에서 민족적인 삶의 양태를 바꾸는 일은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변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진통을 겪게 될까요? 이스라엘이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합의가 전제되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견과 다툼이 있었을까요? 이스라엘의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은 체질변화의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한 번 더 체질변화를 각오해야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삶의 체질을 바꿔야 하는 것은 광야생활을 하던 떠돌이의 삶에서 정착민의 삶으로 바꿔야 하는 과제만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원주민과 어울리며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른바 문화적 습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를 뒤따르던 이스라엘은 이렇듯 삶의 변화를 각오하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작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할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야훼사상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가나안 땅으로 떠나보내면서 야훼를 잊지말라고 거듭거듭 강조하며 공동체에 고별사를 남겼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1성서의 신명기입니다. 거듭자에 아로새길’. 떠돌이 때는 하루하루의 삶을 하나님께 의존했어야 했으니 야훼를 기억할 만한 일상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의 정착민으로 살아가면서도 광야시절에 훈련한 야훼사상, 약한 이들을 도우시는 하나님, 노예를 해방시켜 자유민의 인권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떠돌이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국의 힘의 질서가 아닌 야훼의 정의의 질서가 인류를 구원할 희망이었고, 그 희망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위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향린 공동체가 여기 광화문에서도 지난 70년 동안 이룩한향린정신을 잊을 수 없는 것과 같이, 가나안에서 새로운 체질로 변화할 것을 각오한 이스라엘은 야훼사상을 절대적으로 고수해야 했습니다. 어떤 힘에도 굴복되어서는 안될, 그 어떤 유혹에 습합되어서도 안될 야훼였습니다. 1성서에서 왕왕 표기된 배타주의적인 표현들, 예를들면야훼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는 말씀들은 야훼를 잊지말라!”는 절명의 명령으로만 유의미할 뿐입니다.

 

이러한 각오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만, 사실 가나안 땅은 이집트가 간접통치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이집트 본국에서 이집트 속국으로 탈출한 것이었습니다. 물이 귀했던 가나안의 사회는 우물을 중심으로 성읍을 형성한 사회였습니다. 우물에서 솟아나는 물의 양이 한정되어 있으니 대규모 성읍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물과 권력이 비례하는 사회였습니다. 우물에 가까울 수록 권력은 집중되고 권력의 횡포가 만연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회였고 성읍의 권력자는 자연스럽게 이집트 제국의 봉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의 첫 번째 관문은 이런 성격을 지닌 성읍에 어떻게 자리잡을 것인가 였습니다. 우물을 차지한 권력자의 성읍, 그러한 체제는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야훼사상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우물을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갑니다. 성읍에서는 곡식을 농사할 수 있었지만 산에서는 올리브나 포도와 같은 열매만을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 성읍보다 척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지금의 화장실에 타일의 원조가 되는 회벽처리 기술이 개발되어 산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습니다. 건기 때 물을 얻지 못하는 것이 산간지방 거주민들의 애로사항이었는데 우기 때 많은 빗물을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이상 성읍에서 권력자에게 굽신거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산을 선택했습니다.

 

산에 이미 살고 있던 가나안 정착민들은 주로 성읍 지배권력에 저항했던 세력이어서 이스라엘과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이집트 제국의 본고장에서 탈출한 이야기, 광야생활하며 고생한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야훼, 노예를 해방시키고 자유인의 인권을 회복시켜주시는 정의의 신에 관한 이야기는, 가나안 성읍의 권력자들과 저항해온 산간의 원주민에게 고무적이었을 것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해야 할 이스라엘의 두 번째 관문, 즉 원주민과 조화롭게 어울려야 하는 과제는 이렇게 해결하면서 야훼사상을 가나안 땅에 확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산간의 토착민 세력과 연합하고 야훼사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제도를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열두지파로 구획하고 지파간에 연합전선을 형성한 것이었습니다. 즉 야훼사상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비상시에 서로 돕고 책임져주는 연맹체가 되게 한 것입니다. 평소에는 각 지파가 포도원을 일구고 농사도 지으면서 안정적으로 살다가, 기근 같은 천재지변이나 외부세력의 침략이 있는 비상시국을 당하면 서로 힘을 보태어 고비를 함께 넘기는 연맹체제를 만든 것입니다.

 

여기에 왕은 없습니다. 왕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면 노예가 생겨나기 마련인데 이것은 이집트를 탈출하게 하신 야훼를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비상시국에는 사사가 등장해서 일을 해결하고는 다시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여 평민이 되었습니다. 사사는 세습하지도 않고 특정계급이 전담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사 에훗은 베냐민지파의 게라 가문의 아들이었습니다. 사사 삼갈은 아낫 가문의 아들이었고, 사사 드보라는 랍비돗 가문으로 시집을 온 여성이었습니다.

 

한 지파 내에서 해결할 일이든, 아니면 두세 지파 또는 모든 지파가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할 일이든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연맹체로서 범지파 간 의회와 같은 대책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 중에서 땅을 차지하지 못한 레위지파가 열한지파를 돌면서 협의체를 주선하였고 회의에 참여한 각 지파의 장로들은 회의의 결정사항을 각 지파에 전파하고 필요한 재원을 공급하면서 이스라엘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사사는 이런 회의 때 정당하게 평등한 절차에 따라 선출합니다. 이렇게 옹립된 사사를 두고 성서는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셨다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때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주전 1200년부터 약 200년 동안 유지되었던 사사시대, ‘평등공동체시대’(김경호)라고 합니다.

 

이때 각 지파는 다른 지파가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연대책임의 의무를 지게끔 되었습니다. 옆 지파가 다른 민족에게 침략을 당하면피의 복수로 참전하여 잃어버린 땅을 수복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주어야 했습니다. 다른 지파가 노예로 팔려갔다면 그 몸값을 대신 지불해서라도 실추된 지파의 지위를 되찾아주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지파간의 연대책임을 일컬어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의미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지파간의 연대책임과 같이 빚진 것을 속량받는 것, 그런 사회체제를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의 본질입니다.

 

이스라엘에 사사가 필요했던 때는 위기 때였습니다. 그 위기는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다"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진단합니다. 힘을 좇는 자, 평등사회를 신뢰하지 못하는 자는 권력을 집중시켜서 자신의 불안감을 없애려 합니다. 주변국이 왕권 강화로 위협해오는 현실에 대해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대처하려는, 믿음이 결여된 발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권력을 집중시켜온 문화적 바탕이 아니었으니 주변국에 대항할 만한 왕권을 축적할 경험이 부족했고 익숙하지 않은 그 상태로 대결했을 때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훼사상에 어긋난 일, 곧 정의롭지 않고 평등사회를 훼손한 결과 이스라엘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성서의 평가입니다. 힘이 없어서, 누군가 부덕해서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등을 훼손할 때 위기를 맞는다는 평가입니다. 이런 사상이 성서의 위대한 점입니다.

 

주변국에 패배를 하고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한 이스라엘은 그 삶이 고달파서 다시금 하나님을 찾으며 구원을 호소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가 등장하는데 사사의 등장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악한 일에서 돌이켜 회개한 시점입니다. 지파간 공의회를 성사시키고 지파간의 연대책임의 의무에 충실하면서 야훼사상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회복한 때입니다. 이스라엘이 합심 단결하여 사사를 중심으로 가장 잘 하는 산악 게릴라전으로 응전함으로써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 평등사회를 성취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다가 공의회로 모여 회개하고 사사를 옹립하고, 다시 야훼 평등사회를 회복하는 일이 200년동안 이스라엘이 경험한 사사시대였습니다. 김경호 목사님은 야훼사상이 실현된 유일한 시기라고 이 시대를 평가합니다.

 

이같은 사사시대, 평등공동체사회에 관한 이해 안에서 오늘의 드보라 사사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 드보라가 속한 스불론지파와 그에 인접한 납달리지파가 가나안 땅의 왕 여러 성읍을 장악한 야빈 왕에게 조공을 바치던 때였습니다. 야빈 왕은 시스라라는 군대지휘관을 휘하에 두고 이스라엘 지파를 점령하였습니다. 이때 드보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크고작은 재판을 맡을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던 여성이었습니다. 스불론지파와 납달리지파는 회의를 열어서 드보라를 사사로 옹립하고 가나안 왕 야빈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오늘의사사기 본문의 분량은 이 결정까지만 알 수 있게 7절까지만 읽었습니다. 사실 그 뒤는 읽지 않아도 사사 드보라의 활약으로 이스라엘 두 지파가 회복되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이 7절로 마무리된 것은, 제 생각에는, 드보라가드보라의 종려나무"에서 판결하는 사사였음에 주목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본문들 중 제1성서 사사기 본문은 재판관이었던 사사 드보라에 집중하게 됩니다. 종려나무 아래에서 그가 재판관으로서 발휘했을 판결의 지혜에 사람들이 탄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의 본문은 하나님의 지혜를 청원하는 기도시이고, 데살로니가전서의 본문에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우들이주님의 날"이 언제 어떻게 도래하는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쓴 내용입니다. 이렇게 배열된 내용을 알게 되니 오늘의 마태복음서의 달란트의 비유에서는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하는 26절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종합적으로 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네 본문은지혜"에 관한 것으로 읽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기대어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소사를 재판했던 드보라. 우주의 질서 속에 바른 신앙인의 삶을 희구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청원했던 시인. 빛의 자녀로서주님의 날"이 언제 어떻게 도래하는지 그 하늘의 비밀을 깨달은 데살로니가 교우들. 지혜가 없어서 하나님을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으로 착각한한 달란트를 받은 종’. 모두지혜"라는 키워드로 엮어진 본문들입니다.

 

1성서의 세계관에서 지혜란 1차적으로,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숙달된 능력, 정신적 육체적으로 통달한 능력을 뜻합니다. 이같은 상식적인 의미를 발전시켜서 지혜란, 자신의 삶과 공동체 생활에서 인과관계를 깨우치고 그 깨달음에 맞게 공동체적 삶을 일구어가는 살림살이의 능력으로 이해했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온전한 살림살이를 위하여 공동체의 조화를 도모하고 나 자신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지혜입니다. 성서는 이 지혜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승화시켜서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야훼사상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 공동체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니, 무엇보다도 야훼 하나님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참다운 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원리 안에 있는 나 자신을 바로 알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의 지혜서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혜는 하느님의 떨치시는 힘의 바람이며 전능하신 분께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티없는 빛이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찬란한 광채이며 하느님의 활동력을 비춰주는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보여주는 형상이다.”(지혜7:25-26) 그리고 이러한 유대문학의 전통을 제2성서에서는하나님의 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으로 나타나셨다"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본문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지혜자가 마땅히 실천해야 할 덕목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참 지혜자는 항상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깨어있음이란, 악한 생각에 젖지 않고 악한 구조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단속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서로 격려하고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원망스러움에 자신을 오래 노출시키고 영혼을 잠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11절 말씀을 깊이 다짐하는 사람이 깨어있는 자, 지혜자라고 사도 바울은 증언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마태복음서의 달란트의 비유를지혜"의 관점으로 읽게 된 것은 퍽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본능적이랄까요, 아니면 무의식적이랄까요. 이 비유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자본주의적인 바탕에서 읽으려니 이 비유의 본뜻을 오염시키는 해석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종에 대한 책망하는 비유이며, 하늘나라는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한 지혜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는 지혜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조금씩 이해해 가고자 우리는 기도하며, 주님의 날을 기억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일상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하늘나라에 초청받기 위함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늘 깨어있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이 우리의 과제가 되겠습니다. 이 과제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실험하고 훈련하고 성취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지혜의 장이 우리에게 활발히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를 지혜의 장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사사시대 때 실험했던 평등사회를 우리 공동체에서 재현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수세기 동안 평등사회를 이루기 위해 실험해온 그 경험이야말로 지혜 중의 지혜일 것입니다. 배우고 재현해야 할 지혜의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저는 오늘 공의회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신앙고백문인 사도신경 말미에거룩한 공회"가 언급됩니다. 그리스도교 전통과 역사는 공의회로 전수되었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최고 결정기구가 공동의회인 것처럼, 그리스도교는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고 당면한 문제를 해소하며 선교를 결의했습니다. 사사시대 지파간의 연대회의로써 평등공동체 공의회를 소집했고, 그 결정은 하나님의 뜻으로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출애굽 광야시절에도 있었고 사사시대 이후 왕정시대와 포로기시대를 거쳐 신약시대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입니다.

 

현대의 개신교는 세계교회협의회(WCC)나 아시아교회협의회(CCA),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같은 협의체로, 또 교단의 총회와 노회, 여신도회.남신도회.청년회연합회로 그 맥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내린 그리스도의 물과 피가 강줄기가 되어 세계에 많은 교회가 탄생했고, 그 은총으로 우리는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선교한다는 오랜 공의회의 전통 안에 모든 교회들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에큐메니칼의 어원이 되는오이쿠메네(oikumene)’ 사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국악찬송가의 예식문에 따라 성만찬예식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주여, 이 예식을 통하여 주님의 삶을 몸으로 살다 간 신앙의 선배들과 하나 되게 하시고, 앞으로 땅 끝까지 주의 뜻을 회복해 갈 세대와도 연결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불의한 세상 속에서 진리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세계에 흩어진 형제자매들과 한 몸으로 연대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교 공의회 전통은 이처럼 넓은 차원에서 의미가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공동체를 교회답게 유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회, 목회운영위원회, 공동의회를 통해서 교회의 공의회성을 건강하게 지켜내는 것은 교회로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들은 단지 민주적 절차를 위한 과정이나 수단일 뿐이 아니라 교회 존립의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공의회는 지혜자들이 함께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 교회의 지체라는 사실은, 우리가 저마다 하나님의 지혜자가 되어 공의회를 바르게 세워나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서로 덕을 세우는 지혜자가 되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우리 공의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면서, 사사시대의 평등공동체가 우리 교회에서 재현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지혜를 묵상하며 잠시 침묵합시다.

 

(침묵)

…...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시편 기자의 깨달음을 묵상하며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지혜로 이 공동체를 섬기기를 결단하는 우리에게  

지혜의 영이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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