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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홍근수, 통일의 사도 민족의 목회자 | 김경호 | 2023-10-08

by 이민하 posted Oct 13, 2023 Views 8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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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10-08

홍근수, 통일의 사도 민족의 목회자

(예레미야 9:23-24, 빌립보서 3:12-14, 마태복음서 5:22-24)

2023.10.08. 창조절6/고 홍근수 목사 10주기 추모예배

 

향린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시간은 목사님 구속의 기간이었습니다. 사실 향린이 투사가 된 것은 목사님의 구속으로 인해서입니다. 목사님은 구속되었지만 향린이 가장 성장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역사의 사건이 사람을 만들어가고 교회를 교회되게 한다는 것을 생생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향린이 여러 역사 가운데 가장 향린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간 향린에 여러 목회자들이 있었지만 홍목사님은 그 여러 목회자 중에 한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은 홍목사님께서 도대체 어떤 일들을 하셨는가를 중심으로 그분을 살펴보면서 홍목사님을 만나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 통일의 사도, 민족의 목회자

저는 홍목사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처음 제게 하신 말씀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나는 한국에 반공 때려부수러 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그 해에 유성환의원이 국회의 연설문에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귀절 때문에 의원직에서 제적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당시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머리칼이 설 정도의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면책특권도 있는 국회의원이 국회 안에서 행하려던 연설문으로 인해 동료의원들에게 제적을 당할 정도인데 목사님은 면책특권도 없는 분이 국회도 아닌 거리에서, 교회 강단에서, 거리 집회에서 이런 말씀들을 쏟아내셨습니다. 

 

심야토론에서도 목사님의 주장이 이어졌습니다. “남쪽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사상의 통행금지가 해제되어야한다. 자유민주주의라고 말은 하지만 자본론의 출판인을 구속하거나 주체사상에 관한 글을 대학신문에 기고했다고 편집인을 구속하는 것은 부장하다. 북의 주체사상도 자유롭게 논의되고 대학강단에서 자유롭게 말할 있어야한다. 남쪽 사회는 종속근성을 가득차 있는 반면 북쪽 사회는 자주민족정신으로 가득차 있다. 북한을 바로알고 그 사회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TV 공영파 방송 토론에서 이런 주장이 전국에 방송되자 큰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 날 모든 신문 1면에 홍목사님의 토론 장면이 담기 사진과 내용이 실렸습니다. 교회로 수많은 협박전화가 쇄도했습니다. 그 이후로 홍근수 목사는 공식적인 빨갱이 목사로 낙인찍혔고 가족몰살, 교회폭파, 예배훼방 등의 무수한 협박전화와 편지가 당도했습니다.

 

홍목사님의 모든 말씀은 통일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결혼식 주례사에도 신부 신랑은 ‘연방제 부부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연방제 부부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연대하는 부부를 말합니다. 목사님께서 주장한 화해는 물론 갈라진 민족의 화해이고 통일에 대한 열망입니다. 그래서 홍목사님을 통일의 사도, 민족의 목회자로 부르는 것입니다.

 

2. 미국의 실상을 일깨워 주심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여당이든 야당이든 철저히 함구하고 있고, 성역화된 것이 미국과의 문제입니다. 특히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도록 했습니다.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실상을 전해주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이 절대로 말 못하는 미국의 리얼한 얼굴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셨습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밀가루 전해주는 선한 이웃이 아니라 한반도 분단과 분쟁의 근본 원인이며 자국의 이익을 알토란처럼 챙기기 위해 우리의 분단을 조장하고 즐기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셨습니다. 

 

3.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활동

홍목사님은 통일 운동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손을 늘 잡아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아픔을 당하는 노동자, 고난이 있는 현장이면 가리지 않고 달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약하셔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온갖 활동과 단체에 장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을 위한 투쟁단체의 장까지도 맡으셨습니다. 김 영 목사님께서 홍목사님 장례식 중에 유가족 인사를 하시며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냐 무슨 놈의 대표란 대표를 그렇게 많이 맡느냐?”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목사님께서 무슨 명예욕이 있어서 장을 맡으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김 영 목사님도 잘 아십니다. 

 

말이 대표고 위원장이지, 그 심각한 공안정국시대에 누가 장을 맡으려 하겠습니까? 돈이 생기는 자리도 아니고 책임만 지는 자리입니다. 묘한 것은 그것이 나중에 돈이 되는 자리로 변하면 재빠르게 다른 사람들이 차고 들어와서 서로 맡으려고 하고 그것으로 정부의 언저리에 무슨 무슨 장 자리를 얻으려고 치열해집니다. 그러나 홍목사님께서 맡으신 장 자리는 그런 영예나 목적을 가진 자리들이 결코 아닙니다. 정말 목사님 개인에게는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자리들을 꼬박꼬박 감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가 홍목사님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 시대가 목사님뿐만이 아니라 향린교회 자체를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사회 보수의 보루인 한국교회, 그들과 달리 향린이라는 진보적 교회를 인식하고 함께 손잡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홍목사님은 단지 향린이라는 한 교회의 목사가 아니라 민족의 목회자였고 그 시대를 이끄는 목회자였습니다. 당대가 그를 불러 세운 것입니다. 

 

교회 들어오는 길목에 군고구마를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이분은 여름에도 군고구마를 팔았고, 목사님은 지나칠 때 마다 군고구마를 한 봉지씩 사셨습니다. 저는 목사님께서 고구마를 무척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별로 들지는 않으셨고 항상 사무실 차지가 되어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고구마를 불어가며 먹어야 했습니다. 목사님은 가난한 사람, 딱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성품을 가지셨습니다. 

 

4. 홍목사님의 활동의 큰 그림은 민족의 통일입니다.

목사님은 오직 통일을 향한 일념이었습니다. 홍목사님께서 주도적으로 만드신 단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평통사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평통사가 오늘 한국사회 최첨단에 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잘 아실 것이기에 평통사에 대해서는 거론치 않겠습니다. 그러나 평통사를 창립하시기 전에도 홍목사님께서 주도해서 만드신 두 가지 단체가 또 있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 한국사회윤리학회 입니다. 두 단체 모두 홍목사님께서 대표를 하셨고 제가 서기로 항상 목사님의 심부름을 맡아서 했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 총무는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재정 신부였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가 도대체 뭐하는 단체인가? 

 

당시의 통일 운동은 범민족대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판문점에서 남과 북, 해외의 인민들이 만나서 범민족대회를 갖자는 투쟁입니다. 가자 북으로는 언제나 철통같은 봉쇄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투쟁이 자리 잡게 된 것은 사실 해외에 있는 통일꾼들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북을 드나들며 북의 실상을 알리는 글이나 책을 써서 발표하였고 당시 ‘북을 바로 알기 운동’이 남쪽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동근 목사의 “미완의 귀환일기”를 비롯해 미국의 양은식, 양성철, 박한식 등이 수차례 북을 방문하여 북의 실상을 알리는 글들을 썼고, 이런 보고서들은 그동안 우리가 반공이란 렌즈를 통해 본 북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홍동근 목사는 이미 당시 김일성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에는 당시 기독교신학자로 선우학원, 함성국 독일의 이영빈 등 북이 수없이 북과 접촉하여 길을 연 분들로 그런 노력들이 북이 문호를 열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백두산에 올라 성화를 채취하고 국토행진을 통해 평양을 거쳐 판문점으로 평양에서 대규모 환영, 환송을 받으며 남으로 오는 장면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습니다. 반면 남쪽에서는 한라산에서 성화를 채취하여 국토 종단하여 북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독립문에서 전투경찰들에게 막히자 ‘눕자 행동’을 했습니다. 수만 명이 독립문에서 서대문까지 이르는 길에 누워버렸는데, 경찰은 누워있는 군중위에 최루액을 살포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사지를 들어서 트럭에 내동댕이치고 난지도 부근에 가져다 버렸습니다. 이런 생생한 영상들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고, 북은 통일을 원하지만 남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 이후도 남쪽의 통일운동은 매년 범민족대회를 성사시키는 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일들을 주도한 분들 중 해외의 목회자들이고 그분들이 통일신학동지회로 이미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회장은 홍동근 목사지만 그분 들은 이미 대한민국에는  절대 입국할 수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홍목사님께서 향린교회로 오신 이후에 한국에서 제일 먼저 통일신학동지회를 만드셨고 여러차례 국제 학술대회를 주관하셨습니다. 그리고 통일신학동지회 회보도 발행하셨습니다. 그 대회와 그 회지를 통해 가능한 한 이미 남쪽에 의해 악명 높은 반민족주의자들로 낙인찍힌 해외통일꾼들을 불러들여 한국내의 통일꾼들과 만나는 자리 만드신 것, 이미 북과 충분한 소통을 하고 있었던 해외통일꾼들과 남쪽의 통일꾼들이 연대하여 통일의 역량을 드높이며 민족 통일의 큰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목사님의 그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통일신학동지회 결성과 몇 차례의 통일신학동지회 학술대회에 대한 기록들이 통일신학동지회 회지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가 보다 전선에 선 단체라면 저변을 넓히고 영역을 확장시키는 역할로 보수교단을 포함해서 교계와 학계의 지경을 넓히는 조직으로 사회윤리학회를 만드셨습니다. “한국사회윤리의 동향”이라는 책도 발간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역할들이 연구되고 조사되어야 합니다.

 

이런 작업은 향린교회가 나서서 해야할 과제이고 향린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야할 몫이기도 합니다. 인간 홍근수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분이 하신 큰 그림을 통해서 향린교회의 꿈과 지평이 넓어지고, 향린교회가 가장 향린다워질 수 있는 향린의 소중한 역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향린교회는 6월 항쟁의 출발지입니다. 당시 집회가 엄격히 통제받던 때인데 어느날 새벽에 교회로 전국의 대표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6월 항쟁을 이끈 국민운동본부가 조직되고 6월 항쟁의 투쟁방법들이 결정되었습니다. 항쟁이 전국에서 불길처럼 타오르자 노태우가 나와서 직선제 수용등 6.29선언을 하였습니다. 온 국민이 환호하고 국민운동본부까지 승리라고 외치며 집회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당시 홍근수 목사님은 땅을 치면서 슬퍼하셨습니다. 이제 국민들이 벼랑끝 까지 몰고 왔는데 노태우랑 전두환이 무엇이 다르다고 여기서 멈춘다는 것인가? 한발만 더 밀면 아예 끝장 낼 수 있는데, 그리고 새로운 틀을 짜야 하는데 너무 답답하다고 한탄하셨습니다. 6월 항쟁은 불완전한 혁명이었습니다. 

 

6월 항쟁이 불완전한 혁명이었기에 청산되어할 사람들이 계속 권력을 잡고 심지어는 야권으로도 들어와서 혼선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 이후 36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가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홍근수 목사님은 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하셨지만 그를 통해서 기독교가 가야할 길, 참된 교회가 나아갈 길, 참 목회와 선교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신 스승이시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몸소 보여주신 선구자이십니다.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홍근수 목사님은 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하셨지만 그를 통해서 기독교가 가야 할 길, 참된 교회가 나아갈 길, 참 목회와 선교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신 스승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몸소 보여주신 선구자이십니다. 우리 모두 힘을 내어 목사님께서 가셨던 그 길을 힘차게 함께 손잡고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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