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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ㅣ 홍근수 목사님 10주기 ㅣ 김경호 목사

by 김지목 posted Oct 14, 2023 Views 8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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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10-07

10주기를 맞이하시는 홍근수 목사님을 생각하며 목사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중심으로 목사님을 다시 만나보겠습니다.

 

1. 화해의 목회자, 민족의 목회자

저는 홍목사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처음 제게 하신 말씀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나는 한국에 반공 때려부수러 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그 해에 유성환의원이 국회의 연설문에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귀절 때문에 의원직에서 제적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당시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머리칼이 설 정도의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면책특권도 있는 국회의원이 국회 안에서 행하려던 연설문으로 인해 동료의원들에게 제적을 당할 정도인데 목사님은 면책특권도 없는 분이 국회도 아닌 거리에서, 교회 강단에서, 거리 집회에서 이런 말씀들을 쏟아내셨습니다.

 

심야토론에서도 목사님의 주장이 이어졌습니다. “남쪽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사상의 통행금지가 해제되어야한다. 자유민주주의라고 말은 하지만 자본론의 출판인을 구속하거나 주체사상에 관한 글을 대학신문에 기고했다고 편집인을 구속하는 것은 부장하다. 북의 주체사상도 자유롭게 논의되고 대학강단에서 자유롭게 말할 있어야한다. 남쪽 사회는 종속근성을 가득차 있는 반면 북쪽 사회는 자주민족정신으로 가득차 있다. 북한을 바로알고 그 사회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TV 공영파 방송 토론에서 이런 주장이 전국에 방송되자 큰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 날 모든 신문 1면에 홍목사님의 토론 장면이 담기 사진과 내용이 실렸습니다. 교회로 수많은 협박전화가 쇄도했고, 그 이후로 홍근수 목사는 공식적인 빨갱이 목사로 낙인찍혔습니다. 가족몰살, 교회폭파, 예배 훼방 등의 무수한 협박전화와 편지가 당도했습니다.

 

홍목사님께서 주장한 화해는 물론 갈라진 민족의 화해이고 통일에 대한 열망입니다. 목사님은 단지 한교회의 목사가 아니고 민족의 목회자였습니다. 그분의 모든 말씀은 통일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결혼식 주례사에도 신부 신랑은 연방제 부부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연방제 부부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연대하는 부부를 말합니다.

 

2. 미국의 실상을 알게 하심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여당이든 야당이든 철저히 함구하고 있고, 성역화된 것이 미국과의 문제입니다. 특히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도록 했습니다.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실상을 전해주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이 절대로 말 못하는 미국의 리얼한 얼굴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셨습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밀가루 전해주는 선한 이웃이 아니라 한반도 분단과 분쟁의 근본 원인이며 자국의 이익을 알토란처럼 챙기기 위해 우리의 분단을 조장하고 즐기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셨습니다.

 

3.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활동

홍목사님은 통일 운동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손을 늘 잡아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아픔을 당하는 노동자, 고난이 있는 현장이면 가리지 않고 달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약하셔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온갖 활동과 단체에 장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을 위한 투쟁단체의 장까지도 맡으셨습니다. 김 영 목사님께서 홍목사님 장례식 중에 유가족 인사를 하시며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냐 무슨 놈의 대표란 대표를 그렇게 많이 맡느냐?”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목사님께서 무슨 명예욕이 있어서 장을 맡으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김영 목사님도 잘 아십니다.

 

말이 대표고 위원장이지, 그 심각한 공안정국시대에 누가 장을 맡으려 하겠습니까? 돈이 생기는 자리도 아니고 책임만 지는 자리입니다. 묘한 것은 그것이 나중에 돈이 되는 자리로 변하면 재빠르게 다른 사람들이 차고 들어와서 서로 맡으려고 하고 그것으로 정부의 언저리에 무슨 무슨 장자리를 얻어서 가려고 치열해집니다. 그러나 홍목사님께서 맡으신 장자리는 그런 영예나 목적을 가진 자리들이 결코 아닙니다. 정말 목사님 개인에게는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자리들을 꼬박꼬박 감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가 홍목사님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4. 홍목사님의 활동의 큰 그림은 민족의 통일입니다.

목사님은 오직 통일을 향한 일념이었습니다. 홍목사님께서 주도적으로 만드신 단체들이 있습니다. 평통사도 그 중 하나이고, 평통사가 오늘 한국사회 최첨단에 서서 여러 시민 단체에 귀감이 되는 훌륭한 역할을 감당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평통사를 창립하시기 전에 홍목사님께서 주도해서 만드신 두 가지 단체가 또 있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 한국사회윤리학회 입니다. 두 단체 모두 홍목사님께서 대표를 하셨고 제가 서기로 항상 목사님의 심부름을 맡아서 했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 총무는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재정 신부였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가 도대체 뭐하는 단체인가?

 

당시의 통일 운동은 범민족대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판문점에서 남과 북, 해외의 인민들이 만나서 범민족대회를 갖자는 투쟁입니다. 가자 북으로는 언제나 철통같은 봉쇄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투쟁이 자리 잡게 된 것은 사실 해외에 있는 통일꾼들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북을 드나들며 북의 실상을 알리는 글이나 책을 써서 발표하였고 당시 북을 바로 알기 운동이 남쪽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동근 목사의 미완의 귀환일기를 비롯해 미국의 양은식, 양성철, 박한식 등이 수차례 북을 방문하여 북의 실상을 알리는 글들을 썼고, 이런 보고서들은 그동안 우리가 반공이란 렌즈를 통해 본 북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홍동근 목사는 이미 당시 김일성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에는 당시 기독교신학자로 선우학원, 함성국, 독일의 이영빈 등 북이 수없이 북과 접촉하여 길을 연 분들로 그런 노력들이 북이 문호를 열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백두산에 올라 성화를 채취하고 국토행진을 통해 평양을 거쳐 판문점으로 평양에서 대규모 환영, 환송을 받으며 남으로 오는 장면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습니다. 반면 남쪽에서는 한라산에서 성화를 채취하여 국토 종단하여 북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독립문에서 전투경찰들에게 막히자 눕자 행동을 했습니다. 수만 명이 독립문에서 서대문까지 이르는 길에 누워버리는 행동이었는데, 경찰은 누워있는 군중위에 최루액을 살포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사지를 들어서 트럭에 내동댕이치고 난지도 부근에 가져다 버렸습니다. 이런 생생한 장면들이 전 세계에 중계되어, 북은 통일을 원하지만 남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 이후도 매년 범민족대회를 성사시키는 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때 이미 남쪽에 의해 악명 높은 반민족주의자들로 낙인찍힌 해외통일꾼들을 불러들여 한국내의 통일꾼들과 만나는 자리 만드신 것, 그들과 연대하여 통일의 역량을 드높이는 작업을 해나가신 것이 한국의 통일신학동지회 결성입니다. 몇 차례 해외에서 입국 가능한 인사들을 한국에 방문케 해서 통일신학동지회 학술대회를 개최하셨고, 몇 권의 회지 발간 등을 주도 하셨습니다.

 

통일신학동지회가 보다 전선에 선 단체라면 저변을 넓히고 영역을 확장시키는 역할로 보수교단을 포함해서 교계와 학계의 지경을 넓히는 조직으로 사회윤리학회를 만드셨습니다. “한국사회윤리의 동향이라는 책도 발간했습니다.

 

당시 범민족대회중심의 통일 운동에서 아주 중요한 만남의 자리를 홍목사님께서 주관하셨고 잘 소통되지 않았던 남쪽의 통일꾼들과 실제로 북과 수없이 접촉해서 당시 북이 문호를 개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해외 통일 꾼과의 연대를 통해서 민족 통일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신 것이 목사님의 그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연구되고 조사되어야 한다. 이런 작업은 향린교회나 평통사가 나서서 해야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홍목사님은 활동하시는 동안 불꽃과 같은 삶을 사셨지만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습니다. 세상인심이라는 것이 현직에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을 다 내어 줄 듯 하다가도 은퇴하거나 사임한 후에는 곧바로 남남이 되기 일수 인데 평통사 회원들과 향린교인들은 남달랐습니다. 목사님께서 편찮으신 기간 동안,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목사님을 돌보셨습니다. 목사님께서 혼자 계신 밤 동안에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봐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서 함께 숙박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미 전임목사이고 갈 길이 먼 운동단체에는 방해일 수도 있었습니다. 향린교회와 평통사는 모두 홍목사님의 땀과 사랑과 눈물이 담겨진 단체입니다. 이들은 우리사회와 역사에서 진보적 가치들을 실현하는데도 앞장서있지만 한사람을 만나고 그를 가장 존귀하게 여기고 온 마음을 다해서 서로를 존경하고자하는 점에서도 모범이 되는 진보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다운 진보의 목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흔히 보다 선명한 진보성만을 중요시 여기기에 운동할수록 사람을 잃는데 이 두 단체는 홍목사님의 투병기간을 통해 참다운 진보의 가치, 인간의 얼굴을 한 진보를 실현해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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